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계시고 그 영이 보이는 육체를 입고 인간 하나님으로 오셔서 인류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신 후,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고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 함께 사시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며 창조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계21:1-4) 이같이 사람들과 함께 영생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보이는 인간 하나님이신 “실존 예수님”이 되셔야만 하는데, 하나님은 초림 때가 있고 재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초림 때는 말씀을 비유로만 주셔야 하는 관계로 영생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본래 하나님의 영계의 자리로 떠나가셨고, 오늘의 재림 때 마침내 지상천국을 이루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누이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초림 때는 천국건설의 시작이므로 알파이며, 하나님의 재림 때는 천국을 완성하신다는 뜻에서 오메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알파 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오메가 때도 예수의 새 이름이 하나님의 독생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직계가족으로는 아들(초림 주. 흙으로 돌아갈 첫 아담)과 딸(재림 주. 산 자의 어미 둘째 아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시대(알파 남성 시대)인 구약에서부터 신약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초림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하고 지금부터 향후 딸 시대(오메가 여성시대)인 재림 예수님도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어린양은 듣기 좋고 순결한 이미지로 불리지는 단순한 호칭일까? 아닙니다. “어린양”이라는 단어에서부터 그것이 곧 우리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며 우리의 골수를 파고드는 진리임을 표방하고 있다 하겠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양”이라는 짐승 자체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 제물로 예표 되었습니다.“양”이라고 하는 그 희생제물은 초림 주와 재림 주를 예표한 제물인데 왜 하필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희생제물을 “어린양”이라고 하는가?
어린양은 하나님의 2세와 3세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어미 양이라고 한다면 초림 주와 재림 주는 그 어미 양의 2세와 3세인 새끼 양을 뜻합니다. 예 컨데 산 자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표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듯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어미 양이라고 한다면 이삭과 야곱은 어린양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어미 양으로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 우상의 도시 갈 대아 우르였습니다. 이는 일위 하나님의 근본이 우상의 도시 갈 대아 우르와 같다는 뜻입니다. 창조세계는 빛 되신 하나님이 열 으셨으나, 그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속신앙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헛된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빼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2세인 이삭과 3세인 야곱을 칭하여 어린양이라고 하게 되는데, 어린양은 구시대 아브라함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 시대의 새 창조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이 낳음을 받았다는 뜻은 아브라함 자신을 새롭게 거듭나고 있음을 뜻하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다는 뜻은 이삭 자신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신 뜻도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이 일위에서 이 위로 거듭나고 다시 삼위로 거듭나서 창조는 완성되는데, 거듭나는 자리마다 어린양이 되는 이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그러함이 아니고, 인간인 나 자신으로부터도 내가 거듭나고 다시 거듭나야 하는데 이렇게 거듭나는 자리마다 곧 어린양의 뜻이 됩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이나 피조물인 인간이나 거듭나고 다시 거듭나야 하는 삼위일체의 이치는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과 우리의 근본이 지고지순하다든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닌, 선악이 함께 싸우는 갈등과 대립 구조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탈피하여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선 거듭나야 함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 거듭남의 명칭이 곧 “어린양”으로의 귀결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이라든가 “어린양”의 개념은 빛 밝은 진리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피 흘리는 창조를 뜻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체이시고 우리 인간은 창조의 대상으로서 말입니다. 일위 하나님의 근본(어미 양)이 빛이라고 하지만, 그의 삶의 처소는 우상의 도시 갈 대아 우르이므로 빛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흑암의 하나님도 되는 카오스(혼돈)이고, 그 카오스를 벗어나기 위한 피 흘리는 작업이 창조인데, 그 창조 작업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초림 예수님이 어린양으로서 자기를 죽이는 희생제물이 되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부활하여 그 부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먼저 카오스 하나님이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온 하나님은 아직은 진정한 참 하나님이 아니고 이처럼 카오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세상 또한 혼돈의 물결로 흉흉한 카오스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선악 간 세상의 모습이고, 긍정과 부정의 빛과 그림자가 널 부러진 세상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 컨데 하나님이 악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는 하나님 자신 속에 있는 흑암 부분을 멀리하고 우리 자신 속에 있는 흑암의 악을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 따로, 하나님 따로 가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 진행 속도와 세상의 진화 속도는 같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하나님은 처음부터 흠이 전혀 없는 거룩한 광명 체인 줄 알지만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금자 동이 은자동이 옥동자들만 낳는 줄 알지만 하나님의 본디 모습은 창조 때부터 빛과 흑암이 섞여 있는 음녀와 같은 자이므로 우리에게 초림주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카오스 하나님을 먼저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베일에 완전히 가려진 카오스 하나님을 온 인류에게 초림 예수님을 통해 베일을 벗겨내어 알려주셨다는 점에서 초림 예수님의 창조는 아주 위대하며 새롭게 세상을 밝히는 어린양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어린양이란 과거 구닥다리가 아니고 미래지향적 새로운 신세대의 창조를 뜻합니다.
초림 예수님이 온 인류를 상대로 비유로 카오스 하나님을 알려 주신 그 자체로 위대한 어린 양이 어린양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 하신 재림 때의 예수님은 어떤가? 초림 예수님은 근본 되신 일위 카오스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비유이며, 비유이므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카오스 하나님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혼돈 가운데 다만 하나님의 존재성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를 열고 카오스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는 그 자체만으로 초림 주는 새 창조의 어린 양인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고차원의 어린 양이 됩니다.
재림 예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카오스 하나님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시키고 질서와 조화의 완전한 하나님으로 발굴해내고 최상급 하나님으로 자리 이동시켜낸 신동중에 신동이다. 그러므로 재림 주는 새 창조의 어린양 중에 어린양인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무수히 기록된 어린양의 피의 제사는 곧 그 중심 무게가 초림 주가 아니라 재림 주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창조란 과거, 혹은 현재에 만족해 하는 것이 아니고 휴식 없이 비전이 있는 미래지향적 창조요,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도래를 원하는, 우주의 신세대를 위한 신세대에 의한 신세대의 대 혁신적 천지개벽의 새 창조이므로 당연히 재림주인 그 주인공의 이름이 구닥다리 어미 양이 아니라 참신한 “어린양”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분을 따라 물로 거듭나고(초림 때의 거듭남) 다시 성령으로 거듭나는(재림 때의 거듭남) 어린양들이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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