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기독교 안에 오실 수 없는 “실존예수님”

제라늄A 2023. 11. 5. 16:41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실존”으로 계셔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직접육신을 입고 “실존”(요1:14)으로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실존예수님”을 영접을 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2000년 전유대교 때나 오늘날 기독교에는 “실존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한탄하고 계십니다.  마 8:20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우라든가 공중의 새는 예수님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하찮은 미물이고, 예수님은 상천 하지에 절대적 지상자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거쳐할 곳이 없다고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이렇게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요 선민인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요1:14)을 입고 유대인들에게 직접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체를 입은 인간들을 직접적으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몸을 입고 유대인들에게 오신 분이 인간 “실존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의 “12제자이외는 모두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믿고 기다리고 있는 구원자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는 구원자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며 기다리는 구원자와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원자 예수는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시는 권능의 예수님인 반면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예수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천한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에서 예수님의 초라한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기 때문에 2000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아무도 그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죽인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질책하며 저주까지 하시며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하면서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든다고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나는 분쟁케 하려 왔고,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며  예수님께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신앙을 부정하고 질책하는 예수를 영접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살려두면 유대교가 망하기 때문에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도 시대마다 “실존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데 선포되는 말씀이 기독교 “신학”교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님과 똑 같이 오늘날 기독교도 말씀이 다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영접을 안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은 그전에도 계셨고 오늘날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오실 예수라고 분명히(1:8)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시대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의 “실존으로 계셔야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시대에만 계시다면 그전 세대나 후세대는 누가 구원을 시겠습니까?  이같이 현제 실존예수님이 계셔야 구원을 시키는 것이지 현제 구원자가 없이 2000년 전의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된다면 당시에 유대인들도 예수가 없어도 구원을 얻었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유대인들은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모두 멸망받고 “12제자만 구원받은 것을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아서 알듯이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의 “실존으로 육체를 입은 예수”(하나님)가 계셔야 구원을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에게도 한국인 실존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유대교 때의 예수님의 행차에는 언제나 많은 무리들이 좇아다니며 북적거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둘려 싸서 무리 지어 다녔는데 심지어 삭개오라고 하는 키 작은 세리는 위험을 무릎 쓰고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기 위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는 기지도 발휘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유력한 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나는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예수님은 이런저런 무리들에 둘러싸여 인기 충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잠잘 거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과 똑같이 오늘날 한국기독교 안에도 한국인으로 “실존으로 와 계신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기독교 안에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신 유대인들의 구원자 예수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구원자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인이 “실존으로 계신 예수는 영접도 안 하지만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하며 멸시를 하는 것입니다.  요 1:11-1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 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땅 즉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인에게도 오셨는데 자기 백성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님이 “12명”만 구원을 시킨 것과 같이 오늘날의 예수님도 아주 극소수의 무리만 구원을 시킬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축복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는 전혀 흠이 없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그들의 메시아를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 “실존예수”를 믿고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하고 핍박하며 결국은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경멸하며 바보같이 자기네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을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오늘날의 한국인 기독교인들도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날 실존으로 계신 오늘날의 구원자 한국인 “실존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필자가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분명히 한국에도 “실존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영접하는 독자님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 찌어다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