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교인들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제라늄A 2023. 11. 20. 17:06

누가복음 23:29 보라 그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목사나 교인들은 이 문장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 문장을 단도적인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상기의 말씀에 그 날이 이르면 이라고 했는데 그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말씀하십니다.  히브리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 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이같이 그 날이 이르면 즉 심판하는 날이 오기 전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기독교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자신이 배운 신학으로 을 먹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학으로 교인들에게 젖을 먹이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진리의 길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 목사님들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고 깨달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날이 이르면 목사와 교인들이 그 죄 값으로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그 광경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기독교 목사들과 그의 교인들은 그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지금 현생에서 회개하고 지금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기독교목사가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목사와 그 교인들은 오늘날 잘못된 종교생활에서 반드시 돌아서야 합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그 날에 땅을 치며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계시록 18:4-5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잉태하지 못 하는 이가 이 있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을 전하는 목사로부터 받은 신학으로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즉 잉태하지 않은 자가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받지 않은 자가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산하지 못한 배가 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 신학으로 교인들을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산(출산)을 하지 않은 즉 거짓자식을 낳지 않은 목사가 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유로 감춰있는 말씀이라 기독교인들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는 것은  거짓된 “신학”이라는 것을 알고 목사가 교인들에게 신학의 말씀을 먹이지 않고 교인들을 양육하지 않은 목사가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말씀 하십니다. 그 날에는 즉 심판하는 날에 아이를 잉태하게한 자들이란 것은 기독교목사들의 신학으로 교인들 몸 안에 거짓 말씀이 이루어진 즉 잉태된 자가 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젖먹이는 자들에게 가 있다는 것은, 거짓된 신학으로 교인들에게 (말씀)을 먹이는 기독교목사들에게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모두 둘째 사망인 유황불 못에 던져 질자들입니다.

이런 말씀은 기독교목사나 교인들이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무슨 말씀인지 도대체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필자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도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27 잉태치 못하여 생산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니라 이 말씀은 상기의 본문말씀과 비슷한 말씀으로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모두 비유비사로 깊이 감춰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여기 잉태치 못하여 생산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는 것은, 기독교 신학을 전하는 목사로부터 비 진리의 말씀으로 교인들 몸 안에 거짓 말씀이 잉태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의 말씀으로 내 몸 안에 잉태해서 기뻐해야 되는데 거짓 말씀으로 내 몸 안에 잉태 안 된 것이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 기독교 신학으로 거짓 말씀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많다는 단어가 한글 성경이나 원문성경에 나타나 있는 뜻이 모두 많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본문을 인용한 이사야서를 보면   이사야 54:1 잉태치 못하여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 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노래할 찌어다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이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에 기록된 말씀 역시 많음이라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이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다는 말씀에 많다는 단어를  원문에서는 갈라디아서는 폴루스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사야서는 라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모두 다 비유비사로 감춰있기 때문에 기독교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아무리 보아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다, 말씀하신 것이 실감이 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기록된 라브는 많다는 의미도 있고 가득 채워진 즉 알곡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본문에서 말씀하는 라브의 진정한 뜻은 가득 찬 즉 알곡이라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본문에 홀로 사는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다는 뜻은 알곡이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 바른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생명이 없는 남편 즉 기독교목사로부터 낳음을 받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이 없는 쭉정이 홀로 된 여인이 낳는 아들은 생명이 있는 알곡이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남편 있는 자의 여인이 낳는 많은 자식들인 쭉정이들보다  홀로된 여인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낳는 아들 즉 생명의 말씀으로 낳는 아들들인 알곡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홀로된 여인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낳은 이삭을 상징하며 남편 있는 여인은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상징하여 말한 것인데  오늘날 홀로된 여인은 멸망의 넓은 길인 기독교에서 벗어나 실존예수를 따라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 자들로서 오늘날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고아과부나그네를 말하며  남편이 있는 여인은 유대교와 오늘날 기독교가 만든 신학 교리적 거짓예수를 남편으로 섬기며 거짓 기독교목사들이 인도하는 멸망의 넓은 길을 따라가는 기독교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우상 하나님 다른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믿는 자들이며 또한 건물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착각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를 따라난 자들이 성령을 따라난 자를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2000년 전 유대교 때도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이단으로 핍박했듯이 그 옛날에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에도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를 이단으로 핍박하는 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