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11절, 예수님께서는 이 하늘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위의 하늘도 없어질 것이다. 죽은 자들은 살아나지 못하고, 산 자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죽은 자를 먹던 날들 동안에 너희는 그것을 살게 하였느니라, 너희가 빛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을 하느냐 너희가 하나였던 그날에 너희는 둘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둘이 된 즉 무엇을 할 것인가,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은 “하늘”은 없어 질것이며 그 위에 있는 “하늘”도 없어질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하늘”도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진 “하늘”이 다시 나타난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모두 “비유비사”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도마복음”에서만 아니라 신구약성경도 모두 안팎으로 “비유비사”로 기록되어 있음을 기독교인들은 아시고 그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일반용어로 기록 되어 있으나 모두가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문자 성경”을 그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은 모두 “비 진리”라는 것을 먼저아시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안팎”(계5:1)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장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은 무엇을 말하며 또 그 위에 있는 “하늘”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늘”이라 하면 “하늘”에 있는 창공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이나 “땅”은 “육안”으로 보이는 “하늘”이나 “땅”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은 “삼층 천”으로 분리된 신앙의 세계 즉 “애급, 광야, 가나안”을 말하는데 “첫째하늘, 둘째하늘, 셋째하늘”이를 “삼층 천”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방주가 “삼층”으로 지어졌고 예루살렘 성전이 “삼층”으로 되어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머물고 있는 “하늘”의 세계와 영적인 차원의 따라 “삼층 천”으로 분리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비몽사몽간에 “삼층 천”인 “셋째하늘 천국”을 다녀왔다고 말합니다(고후12:1-4) 이와 같이 “첫째하늘”은 “애급”이라는 오늘날 기독교 세상교회를 말하며 “신학”교리와 기복으로 신앙생활 하는 오늘날 기독교를 말하며 “둘째하늘”은 세상이라는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해서 “광야”의 율법과 표적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첫째하늘 애급”(기복신앙)은 없어 질것이며 하늘위에 있는 “둘째하늘 광야”(율법신앙)도 없어져야 진리와 생명이 존재하는 “셋째하늘 가나안”에 이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하늘”이 떠나가지 않고는 “둘째하늘”이 올 수 없고 “둘째하늘”이 떠나가지 않으면 “셋째하늘”이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첫째하늘”인 “애급”과 “둘째하늘”인 “광야”와 “셋째하늘”인 “가나안”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루속히 “출 애급”(탈출)해서 “애급”의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광야”의 “율법신앙”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 “진리와 생명”으로 거듭나는 길, 곧 좁고 협잡하여 찾는 이 조차 적은 길을 “생명의 길” 혹은 “십자가의 길”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 “출애굽기”말씀을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표상과 그림자로 거울”과 같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약성경 “출애굽기” 말씀을 읽으시고 깨닫게 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희미하게 자신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말씀에 예수께서 “죽은 자”는 살아나지 못하고 “산 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나지 못하고 “산 자”가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를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로 말씀하십니다. 마 8:22 예수께서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지금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려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에서 “산 자”란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모두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말씀에 너희 “산 자”가 “죽은 자”를 먹는다는 의미는 “산 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말하며 그 예수님이 “죽은 자”인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여주어 살린다는 말씀을 “산 자”가 “죽은 자”를 먹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 “비유”로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 자”들이 먹는 양식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 4:31-34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수가 성 여인”과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중에 제자들이 음식을 가져와서 예수께 잡수시라고 드리니깐 예수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하니깐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벌써갖다 드렸는가? 라고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이 먹는 “양식”은 “수가 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이 먹어야할 “양식”이 되고 “수가 성 여인”이 먹어야 할 “양식”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것이 여인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먹는 것이 “양식”입니다. 또 사도행전에도 이와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0:9-46(본문생약) 사도행전의 말씀은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을 각종 짐승으로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실제 짐승들이 아니라 고넬료의 집에 모인 고넬료의 가족들을 “잡아먹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먹어야 할 “양식”은 죄 가운데 죽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거듭난 자들이 먹어야할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죽은 자”를 “산 자”가 구원시키는 것을 “잡아먹으라”라는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실제 거듭난 “산 자”들은 지금도 “죽은 자”들인 기독교인들을 구원하여 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잡아먹어야할 “양식”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어 살리는 것이 “실존예수님”의 “양식”이 되고 오늘날 “죽은 자”들인 기독교인들이 먹는 “양식”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죽은 자”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필자인 “새사람”도 매일 저의 불로그를 통해 글을 올리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 “양식”을 먹이는 것이 “새사람”이 먹어야할 “양식”이기 때문에 매일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계시록 3:2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같이 서로 주고 먹는 것이 성경의 기록된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5:27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같이 “죽은 자”는 “산 자”의 “양식”을 먹으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사도들이나 예수님이 먹어야 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산 자”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식사 때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셔서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의 뜻을 문자로 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매끼식사 때마다 식사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빛”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것은 너희가 “진리”가운데 있을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너희가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할 그날에 너희는 “두마음”(영과 육)이었고 이제 “두마음”이 된 너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이 진리로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