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제라늄A 2024. 2. 19. 01:45

마가복음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뱀(마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치유를 볼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셨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옳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다만 위의 말씀은 비유로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뱀도 비유로서 마귀를 뜻하고, 독도 비유로서 비 진리의 독을 뜻하고, 병든 사람도 비유로서 영적으로 병든 사람을 뜻한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란 비 진리에 함몰되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비유인 것이다. 이렇게 모두 비유로서 뜻풀이를 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아니하고 만일 문자주의를 고집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처럼 사람이 문자 그대로 독을 마셔보라, 당장 죽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병자에게 손을 얹어보라, 낫기는커녕 병자의 병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문자 그대로 뱀을 집어보라, 뱀에게 물리고 말 것이다. 모든 성경은 기록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 적기사였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서 믿음의 기폭제가 되었는데 그 유효기간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 성령의 역사는 그 같은 이적기사를 일으키는 초자연적 가시적인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예수께서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과 같이 오늘의 성령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속 내면에서 일어나는 신령한 것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이것이 본질적이므로 그 유효기간은 영원하다. 천지창조주 신령한 하나님과 대좌하고 성경을 상고하는 오늘의 우리는 누구인가?  오늘의 신령한 하나님과 대좌할 수 있는 우리라면 우리 또한 신령한 개체들로서 성경의 문자를 독파하고 비유를 깨달아 진리로 자유한 자들임을 전제하고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고 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진리로 자유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곧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 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말씀의 뜻은 진리의 말씀을 소유한 자는 사단(뱀)의 비 진리의 말씀(독약)을 먹어도 해를 받지 않다는 것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다는 것은 비 진리의 말씀으로 병든 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면 깨끗이 치료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성교인들은 목사가 주는 비 진리 말씀(독약)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사는 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저 이천 년 전 초기그리스도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로 깨달은 씨 가진 말씀으로 신령한 오늘의 진리를 가진 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문자 그대로라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되겠지만 본질적이고 궁극적으로 문자 속에 감추어진 참 뜻을 깨닫게 된다는 차원에서는 오늘의 진리를 가진 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렇게 말씀을 완전히 깨달아 반석 위에 선 자 라면 그가 뱀(마귀)을 집어 상대한들 무슨 해를 받겠는가? 또 뱀과 상대하다가 뱀이 주는 비 진리의 독을 마실 찌라도 무슨 해를 받겠는가?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이나 미혹도 받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예 컨데 1+1=2일 때 이것은 우리를 아주 자유케 하는 진리이다.

그런데 만일 1+1=3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주 우리를 자유케 하지 못하는 비 진리이기 때문에 자유케 하는 진리는 비 자유케 하는 비 진리에게 도무지 넘어 갈래야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진리로 자유케 된 자가 진리를 알지 못해 영적으로 병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즉 비 진리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병든 자에게 말씀을 주고 대화하고 변론한다면(손을 얹은즉) 그 사람이 살아나 고침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