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은 과연?

육신은 죽어도 생명은 죽지 않는다.

제라늄A 2024. 3. 3. 03:43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 아닙니다. 사람에겐 꿈이 있고 영생을 사모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생할 수 있는 본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영생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요1:14)를 입고 인간으로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이 실존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아도 자신을 모르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외적으로 모든 것을 다 안다 해도 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알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알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도 신앙생활을 평생 동안 하면서 자신의 존재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허무하게 살다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살아야 하는 의미를 알려는 사람도 없고 또한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서로 관심도 없이 이 세상을 허무하게 살다가 허탈하게 죽음으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의미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며 또한 너희 평생이 일식 간에 빠르게 지나간다. 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무상한 사람이 왜 태어나서 그토록 몸부림치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무상한 사람을 무엇 때문에 창조하셨으며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제들이 궁금해야 하고 날마다 고민하면서 세상을 사는 동안에 연구하여 풀어야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모두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로병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젊어서부터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여 영생하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상들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원래 하나님의 의해서 흙으로 만들어졌고 예수님은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영생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세상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욕심을 채우려 하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일찍 발견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안개와 같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 세상에 소망이나 가치를 두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의 존재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육신의 욕심에 사로잡혀 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다가 저 세상으로 허무하게 가게 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려면 먼저 오늘날 진리의 말씀을 소유한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영접해야 하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영접하여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존재로서 어둠이고 실존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존재로 진리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어둠이 빛을 받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물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짐승들과 같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속에서 서로 물고 뜯기며 살다가 늙어서 죽을 무렵 그때에 가서야 사람의 생명이 무상하다 혹은 일장춘몽 같다고 하면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온 곳은 어미의 태속이 아니며 가는 곳도 무덤 속이나 납골당이 아니며 사람처럼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잠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면 사람의 생명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생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알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준비한 사람은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일찍 깨달은 사람은 사람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은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가치와 무가치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무상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 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사람의 무상함을 젊어서부터 일찍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았다면 어느 누구나 모든 삶을 영생 위해서 최선을 다해 투자할 것이며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반드시 거듭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분명히 목적이 있어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반드시 피조물인 사람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받아야 하는 무엇보다도 귀한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사람의 존재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받아 예수와 같이 사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를 올바로 안다면 사람은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올바로 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올바로 알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목숨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바로 안다는 것과 잘못 안다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삶이냐 아니면 죽음으로 파멸로 몰고 가는 허망한 삶이냐 두 가지 문제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보고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하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모르면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자신을 알아 갈 때에 그 어떠한 일을 하든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위인들이 자신이 누군지 모르면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며 사람의 생명은 안개와 같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하며 인생은 일장춘몽이다.라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정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