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해설: 그동안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주로 섬기며 따랐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난다고 하니 실망과 더불어 근심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걱정하며 근심하는 것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하면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는 말씀은 만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없으면 예수께서 미리 너희에게 말해 주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지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데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집은 어느 곳에 있으며”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예비하는 처소는 어느 곳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집은 하늘나라, 즉 천국을 말하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예비하는 처소는 곧 제자들의 “몸”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의 “몸”이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성전이며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전이 건축되면 하나님이 성전이 된 제자들 안에 “안식”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나 예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어느 장소나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건축된 성전 된 제자들의 “몸”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안식”하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 자는 지옥에 가도 천국이지만 마음이 지옥인 자는 천국에 가도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천국이나 지옥이나 모두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제자들의 “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 안에 예수님이 “안식”하실 성전이 건축되면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일요일이나 토요일에 예배를 거룩히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될 너희 “몸”을 거룩히 보전하여 지키라는 말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성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된 하나님의 아들과 사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곳은 곧 제자들의 “몸” 안에 “마음”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4~7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의 길을 너희가 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는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도마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며 진리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즉 천국으로 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터인데 너희가 아직 아버지를 모르고 있는 것은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너희가 나를 보았으므로 아버지를 본 것이며 또한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이 항상 “안식”하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8~11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 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해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빌립이 나서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빌립은 물론 다른 제자들도 지금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너희와 함께 오래 동안 있었는데 아직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조로 말씀하시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소경은 보석을 손에 쥐고 있어도 보석을 볼 수 없듯이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해 영안이 열리지 않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동행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있을 뿐 확실히 알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시는 독자 분들은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는 예수만큼 성장된 자 만이 알지 그 외에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도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이 답답하셔서 그러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이라도 믿으라, 그런데 만일 그것도 못 믿겠으면 내가 행하는 그 일들을 보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직접 받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가르침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예수님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4:12~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해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있다가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해서 너희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사도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실제로 예수님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대로 구하라는 것이며, 너희가 내 뜻대로 구한다면 내가 도와주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로 인해서 내가 영광을 얻고 또 나를 통해서 아버지가 영광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라는 것이며 예수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이름, 즉 내가 말한 뜻에 따라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곧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은 곧 죽어가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구원하고 살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5~1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계명은 “새 계명” 즉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는 것이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너희가 지키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게 하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구하여 너희에게 주는 보혜사는 곧 “진리의 영”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진리의 영”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진리의 영”을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지금까지, “진리의 영”즉 “생명의 말씀”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진리의 영”을 아나니 이는 지금까지 나(예수님)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지금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속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영”즉 “생명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지금까지 듣거나 보지도 못한 소중한 “영”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아직 예수님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실존예수님”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영”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8~21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해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셨는데 왜 여기서 “고아”라는 말이 나왔을까? 물론 “고아”라는 단어는 기독교의 비 진리를 떠나 진리를 찾아 갈망하는 자를 “고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고아”는 자신의 “혼적”인 육체의 자아(自我)를 멸하지 않았다면 아직 “고아”라는 말입니다. 옛 사람인 “혼적”인 육체의 자아(自我)를 멸하면 “하나님의 영”이 오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면 이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아직 육체를 멸하지 않았다면 “고아”라는 말입니다. 옛사람을 멸했으면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와 같이 십자가에서 믿음의 행함을 통해 옛사람을 멸했으면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예수입니다. “혼적”인 옛사람을 멸하고 “영”이 임했으면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혼적존재)은 나를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나를 본다는데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세상은 누구를 말하며 세상은 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은 넓은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거듭나지 못한 어둠의 “혼적존재”들을 “세상”이라 말하며 예수님을 보는 너희는 그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라는 문구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혼적존재”인 “세상”에 속한 자들이지 “너희”라고 하는 제자들인 “영적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실존예수님”을 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이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세상”에 속한 “혼적존재”들은 “예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너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며 또 내가 준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도 계명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에게 들어가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지키라고 주신 계명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중요한 계명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지키라고 주신 계명을 소중히 가지고 지킨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2~24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해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가룟유다”가 아닌 “유다”가 말하되 주여 어찌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아니하려 하시냐 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의 질문과는 관계없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며 내 말을 지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또한 우리가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유다”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또한 예수님은 자기 말을 지키는 자에게 들어가 함께 거하면서 자신을 나타내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거나 거부하는 자에게는 나타내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지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되기 전에는 인간의 말이지만 예수로 거듭나게 되면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5~28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해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말씀은 예수님 자의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어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거듭나게 나게 되면 이때부터는 모든 말씀을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도원에 가서 금식까지 하면서 때를 쓰면서 성령을 받으려고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혜사성령”은 “진리의 영”을 말하는데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무에게나 보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동정녀 마리아”와 같이 “정결한 처녀”에게만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신다는 “보혜사성령”은 그동안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정결한 처녀”와 같은 깨끗이 준비된 존재들에게만 보내주시며 아직 더러운 죄인들에게는 보내주시지도 않지만 “성령”이 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보혜사성령”이 임하면 “성령”이 가르치기도 하고 생각나게 하시어 깨닫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에게 있는 평안을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이며 잠시 머물다가 지나가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말했고 너희는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고 위대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아버지께 가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9~31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해설: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말을 한 것은 앞으로 너희에게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고 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이 예언하신 말씀들이 신약에 와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도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할 것인데 이는 너희에게 이 세상 임금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왕은 지금까지 예수님이었는데 예수님이 떠나면 다시 제자들 자신이 왕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왕은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그 세상 왕에게 알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에게 오는 세상 왕은 그동안 제자들에게서 잠시 떠나 있던 “혼적존재”를 말하는데 그 존재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한 것임을 알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마치치고 “이제 일어나 여기를 떠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