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실존예수님 뿐이지 2000년 전 유대교 제사장 바리세인 서기관과 같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을 한 목사들에게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제에도 있고 후세에도 있고 영원토록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계1: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의 계셨던 실존예수나 오늘날의 실존예수는 사람의 모양만 다를 뿐 동일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변함없이 기독교인들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000년 전 유대교인들이 구원자예수와 대화를 하면서도 구원자예수라는 사실을 전혀 몰라본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구원자예수가 현제 기독교인들 앞에서 대화를 하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실존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다면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교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다리는 예수와 성경의 말씀대로 오시는 예수님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유대교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다리는 예수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의 구름을 타고 화려하게 오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능력이 많고 죽은 자들을 살려내시는 전능하신 구원자 예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오시는 실존예수님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는 분으로 고운 모양이나 풍채도 없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아주 작은 자로 오시기 때문에 전혀 몰라보는 것입니다.
이사야 53:2~4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실존예수는 2000년 전 유대교인 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 같이 아주 볼품이 없는 사람으로 오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존예수와 대화를 하면서도 전혀 구원자예수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00년 전 유대교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실존예수를 몰라보고 그의 말씀이 조금만 기독교 신학과 다르면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을 하며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유대교 때 실존예수나 오늘날 실존예수도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 하나 없다(마8:20)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실존예수는 유대교 때나 오늘날 기독교에는 실존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고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은 오직 구원자예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목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애급이라는 오늘날이라는 세상에는 창세 이후 오늘날까지 제사장(목사)과 썩을 양식인 유교 병 즉 유전과 기독교 신학교리만 있을 뿐 실존예수님이 주시는 진설병 즉 생명의 말씀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를 떠나 이곳저곳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거지나사로와 같은 자들인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광야로 나가면 지금도 모세와 율법이 있고 가나안땅에는 언제나 실존예수님과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치원에는 언제나 유치원선생이 있고, 중 고등학교에는 중 고등학교의 선생이 있으며, 대학교수는 오직 대학교에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모세나 실존예수도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시나 외모는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에는 언제나 목사들밖에 없고, 광야에는 항상 모세가 계시고, 가나안에는 지금도 실존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실존예수님은 가나안에 입성한 자들이 본인 자신이 실존예수를 확인할 수 있지, 오늘날 기독교인들같이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고 지금도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예수를 만나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하루속히 세상기독교에서 출 애급을 해서 기복신앙을 벗어버리고 고아, 과부, 나그네들 같이 광야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야만 그때는 본인자신이 나를 인도한 사람이 구원자 예수라는 사실을 자신이 똑똑히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확실하게 확인이 되지 못하면 구원의 완성이 거의 99%가 다 되면서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밤의 존재에서 아침의 존재가 되기 전 새벽 닭 울기 전 3번씩 예수를 부인하고 떠나는 것과 똑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예수를 본인자신이 확실히 확인이 될 때 자신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사야 17:6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2~3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4~5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