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5 그가(예수)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예수)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예수)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상기의 말씀은 곧 성자하나님이신 “실존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에 “엘로힘”즉 하나님의 아들(성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렇게 “우리”라는 복수형의 “성자하나님들”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하나님(태초)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예수)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즉 예수님이 짓지 않고서는 완성된 “만물”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은 “자연만물”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어둠의 존재”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물”들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란 세상 역시 “세상만물”이 아니라, “어둠의 존재”를 말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물”들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으로 땅에 속한 “어둠의 존재”들을 구원하여 “하늘의 존재”를 만들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려고 오셨지 “세상 자연만물”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6일 천지창조”역시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땅의 존재, 즉 땅에 속한 “어둠의 존재”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6일”동안 즉 “6단계”로 창조하여 “하늘의 존재”곧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신다는 것을 “비유”로 6일 천지창조(天地創造)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땅에 속한 “어둠의 존재”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엘로힘 실존예수님”뿐이신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다른 “이름”(말씀) 즉 예수님은 다른 말씀을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도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름”은 그냥 “이름” 석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예수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기의 말씀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이며 “말씀”안에는 생명이 있었다는 것은 곧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사람들을 비취는 “빛”이며 “어둠”은 땅에 속한 거듭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데 “어둠”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우카테라벤”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영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접하지 않았다”라는 뜻을 성경번역자가 “깨닫지 못하다”라고 번역을 오역해 놓은 것입니다. 즉 참 “빛”이신 예수님이 “어둠”에 속한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으나 “어둠”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오역된 말씀이 너무나 많으므로 원어를 대조해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많은 오류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빛”으로 오신 “실존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핍박까지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을 한 이유는 그들이 믿고 기다리는 예수는 초라한 인간 “실존예수”가 아니라, 권능과 능력을 가지고 위대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 알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떼를 쓰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예수님은 무슨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오병이어기적”을 일으키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똑같은 사람이며 다르다면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멸시천대를 받은 것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7:14~15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惡)을 버리며 선(善)을 택할 줄 알 때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과정과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예언서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우리 인간과 똑같이 생명의 말씀인 “버터와 꿀”을 먹으며 성장하면서 인간의 본능인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하며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보면 이사야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 아주 볼품없는 천한 사람같이 멸시천대를 받으며 성장하면서 생명의 말씀인 “꿀과 뻐터”를 먹고 성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앞으로도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계신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실존예수님”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을 받거나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단자로 몰려 배척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실존예수님”도 기독교인들에게 따돌림받고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오시는 “실존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고 깨달으셔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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