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6 장 1-7 예수님의 기적이나 표적은 모두 비유이다

제라늄A 2018. 7. 14. 12:26

                    

 

 

                          예수님의 기적이나 표적은 모두 비유이다. 

요 6:1-2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 이러라,

 

해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큰 무리가 따라가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무슨 이상한 표적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이적과 표적만 행하면 능력이 있다 참 목자다 하면서 모두 벌 때처럼 몰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도 성경문자 해석을 통해서 가나안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적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 그리고 물위를 걸으시는 표적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 등등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모두 영적인“비유비사”로 영혼을 구원하는“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오직 죽은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목적으로“비유비사“로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이적이나 기적을 베푼 분이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마술사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흐름은”비유와 비사“로 말씀하신 것이지 문자 그대로 기적을 베푸신 일은 한구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분이라고 기독교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다 문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형이상학“의 말씀을”형이하학“으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아시고 성경을 보는 눈을 문자 복음에서”비유복음“으로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성경이 풀리지 않으며 성경을 풀지 못하면 모두”죄 사함“을 받지 못하니 비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성경은 모두“비유비사“라는 것을 아시고 성경을 보셔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모든 말씀을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하게“비유비사“로 말씀하시니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라고 예수님께 물으니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고전 2:9-10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거짓복음에 속고 있는 오늘날 거짓복음을 믿고 있는 사탄의 무리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게 이렇게”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 6:3-7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해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사 자리에 앉으셨는데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 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들어 큰 무리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바라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고 말씀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빌립이 친히 어떻게 말할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먹일 양식을 걱정하시고 빌립에게 질문을 하신 것인데 예수님은 빌립이 어떻게 대답하실 것을 이미 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걱정하는 무리에게 먹일 양식은 영적인 양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인데 빌립이 걱정을 하는 것은 육신적인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은 예수님이 예상하신대로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을 가지고 떡을 사도 좀 부족할 것 같다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항상 영생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영“의 양식인 생명의 떡인 생명의 말씀을 말씀하고 있는데 ”육”에 속한 존재들은 언제나 육신이 먹고 배부를 육신의 양식을 염려하며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은 항상“영“의 말씀을 하시는데도 육신의 존재들은 항상“육“의 말씀으로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른 무리들이 바라는 목적도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육신의 양식, 즉 육신의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육신의 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독교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기복을 강조하며 예배의식도 축복기도로 시작해서 축도로 예배를 끝내며 예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독교인들이기도만하면 들어주시는 기복의 예수님으로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도 무리에게 먹일 양식을 육신적인 양식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려 오신분이지 이적이나 기적을 베풀어 육신의 기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