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6 장 14-27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제라늄A 2018. 7. 14. 12:22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요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해설: 그 무리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 이어의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을 삼으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저희가 자기를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는 줄을 이미 아시고 몸을 피해 다시 홀로 산으로 떠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려고 금전공세까지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를 임금 삼으려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산으로 도망을 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교회나 오늘날기독교로부터 이단자로 소외된 “나그네 고아 과부”와 같이 영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자 그리고 병들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구원자이지 전통적인 보수신앙이나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오늘날기독교인들의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거나 지금“실존예수님”이 오셔서 계신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요 6:16-21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해설: 해가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데 날은 이미 어두웠고 홀로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않아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에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 모두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노를 열심히 저어 십 여리쯤 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유령이 오는 것 같아 무서워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는 말씀에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였고 배는 곧 저희가 가려고 하던 가버나움 땅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홀로 산으로 가실 때 왜 따라가지 않았고 또한 예수님이 없는데 찾거나 기다리지도 않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떠났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다에 큰 바람과 더불어 파도가 일어난 것이며 제자들은 위험에 처해 두려워진 것입니다.바다에 큰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없는 세상에 어둠이 몰려와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교회)에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항상 위험과 고난이 따른 다는 것을“비유비사”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은 무사히 가버나움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물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사도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 한분도 물위를 걷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은“비유비사“로 애굽의 교리나 광야의 율법을 초월해 계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창세기 1장에”하나님의 신(神)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물”위를 걸으시는 분인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비유“한 것이기 때문에”물”위는 곧 말씀위에 있는 예수님의“생명의 말씀“을 소유하고 계신 분으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날 때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6:22-27 이튼 날 바다 건너편에 있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해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그 이튼 날 바다 건너편에 있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도 없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무리는 예수님에게 랍비여 언제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가“인“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축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있기 때문에 구원이나 영생을 위해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금 예수를 찾는 무리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이나 영생보다는 예수님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 잘 살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썩는 양식”은 원문에“텐 브로신 텐 아폴루메넨이라”기록되어 있으며“썩는 양식”의 진정한 뜻은“상한 음식”이 아니라 “누룩 섞인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든 각종“신학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뜻은“썩는 양식” 즉 기독교목회자가 주는 가감된 비 진리를 받아먹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즉 참 목자가 주는“생명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인자, 즉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인“을 받아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나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의“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인”은 하나님의 아들만 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목회자들도 오염된 말씀을 가지고“인”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계시록을 통해서 거짓목자 곧 짐승이 치는“인”은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의“생명의 말씀”으로 치는“인”을 맞아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짐승의 이름(말씀)으로 오른손이나 이마에“인”(666)을 맞으면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666인”을 치는 자들은 누구인가?

 

13:16~18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말씀)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 이니라,  말씀의 종들은 오늘날 목회자를 말하며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는 것은 오른손은 구원의 손길과(시17:7)말씀 전하는 자를 상징하고(계1:16)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신학을 하면 목사안수(인)를 받는데 이 안수는 짐승의“이름”(말씀)으로 이마에“인“을 받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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