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1 장 19-28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으라

제라늄A 2018. 7. 15. 07:06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으라  

요 1:19-23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해설: 상기의 말씀은“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의 소리”가 유대인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 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요한의 정체를 알아보려는 장면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을 때 요한은 자신을 밝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시야, 즉 구원자“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자신은“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엘리야냐 그도 아니면 그 선지자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며 나는 단지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곧게 평탄하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주의 길을 평탄케 하라고 외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한의 외침이나 가르침을 듣지 않고는 절대로 가나안에 계신“실존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믿고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초등학생이 대학을 가려면 중, 고등학교를 거쳐야 대학을 가는 것과 같이“애굽“이라는 오늘날 세상기독교의 교인들이”가나안”에 계신“실존예수”를 만나려면 반드시“출애굽”을 하여“광야”의 모세를 통해 요단강으로 나아가야 하며 요단강에서 요한의 외침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비로소”가나안”으로 들어가 “실존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가나안에 계신“실존예수님”을 만나려면 오늘날의 세례요한과 같은 필자“새사람”이 광야에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가나안에 계신“실존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24-28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찐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해설: 상기의 말씀은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이 보낸 자가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닌데 어떻게“세례“를 주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요한은 나는”물““세례“를 주지만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너희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실존예수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나는”물“”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성령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는 그의”신 들메“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말과 같이”세례“는 요한이 주는”물세례“가 있고”실존예수님“이 주시는”성령세례“가 있습니다.”세례“라는 것은 오늘날기독교 목사들이 물 찍어 바르는 것이”세례“가 아니라 말씀을 전 하는 것을”세례“라고 하고”성령세례“”생수”와 같은 생명의 말씀을”성령세례“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물과 성령은 “물과 생수”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은 그냥 말씀을 말하며 “생수””성령세례“ “생명의 말씀”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수가성 우물가로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물이 곧“생수“”성령세례“ 즉”생명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주는 말씀은 물이며 예수님이나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이 주는 말씀은 “생수“”성령세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나는 그의“신 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 들메”라는 단어는 원어에 “신발 끈”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신발 끈”도 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즉 요한은 “신발 끈”을 풀지 못하지만 내 뒤에 오시는“예수“는 신발의“끈“을 능히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신발”은 영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며“신발 끈”을 푼다는 뜻은 무엇을 비유하여 말씀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신발“은 하나님의 말씀을“비유“한 것이며 ”신발 끈”을 푼다는 것은 아무도 풀을 수없는 하나님께서 봉한 비밀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밭에 감추어놓은 보화와 같아서 예수님이 없으면 절대로 풀 수 없는 것은 물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