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1 장 43-51 “실존예수를 영접하라”

제라늄A 2018. 7. 15. 07:00

                           

 

 

                                  “ 실존 예수를 영접하라 ” 

요 1:43-45 이튼 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해설: 이튼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려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살고 있는“벳세다“사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한 동네에 사는“벳세다“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한 마을에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들은 모세의 율법과 유대교의 교리를 벗어나 진리를 따라 생명의 좁은 길을 함께 가며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벳세다“라는 뜻은“물고기”잡는 사람, 즉 어부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잡은“물고기”는 바다나 호수에서 살아가는“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애굽“이라는 오늘날 기독교세상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애급교회의 교인들, 즉 오늘날 세상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물고기”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차량 후면이나 건물에“물고기”표시를 하는 것은 자신들은 기독교인이며“물고기”의 영적상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낚았던“물고기”는 실제“물고기”가 아니라 애굽의 교리와 기복신앙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는 영혼들을 비유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바다에서 고기 낚는 어부에서 벗어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된 빌립은“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는데 그는 요셉의 아들“예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도 모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들도 몰라본“예수님“을 빌립이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지금“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다고 분명하게 말하면서 그는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모세의 율법은 물론 선지자들이 기록한 선지 서들을 모두 보고 장성한자로 성장했기 때문에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이나 선지 서들은 모두 오실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보며 연구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실존예수님“을 모르는 것은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을 육적인 눈으로 욕심에 따라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몰라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모세를 알았다면 나를 알았을 터인데 나를 모르는 것은 곧 모세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모세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신학은 예수님께서 오셔서“모세의 율법”을 모두 폐하셨다고 하기 때문에 신학을 배운 목회자들이 거짓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더 완전케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간음을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또한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 하였지만 나는 형제에게 노하기만 해도 심판을 받게 되며 그리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정죄만 해도 지옥불속에 들어간다고 엄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마5:22)

 

이와 같이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더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도 오늘날기독교목회자들이 율법을 모두 폐해 버렸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의“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율법은 물론 선지 서들도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 1:46-48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르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해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을 들은“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 아니라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나다나엘”이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은 갈릴리 나사렛은 율법과 교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며 또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사는 곳으로 하나님의 아들은 삯꾼목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장사하는 애굽교회나 광야교회에서는 태어 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은 베들레헴(떡집)즉 참 목자가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는 거룩한 집(성전)에서만 태어나는 것입니다.“나다나엘”이 하는 말을 들은 빌립은 그러면 메시야인지 아닌지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여“나다나엘”은 예수께로 가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나다나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나다나엘”의 마음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나다나엘”은 놀라서 예수님에게 어떻게 나를 알고 계시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무화과나무”아래에 있을 때부터 너를 보고 알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나다나엘”“무화과나무”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는 나무로 순수하고 진실한 존재 곧 참 이스라엘사람인“모세““세례요한”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나다나엘”“무화과나무”아래 있다는 말은“세례요한”과 함께 있는 것을 보시고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세례요한”은 애굽의 교리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모세의 율법을 통과한 시험과 연단을 모두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온“정결한 처녀“와 같은”여자”의 영적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세례요한”에게“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목회자를 따라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극소수 이지만 지금도 기독교에서 탈출해서“세례요한”과 같은 참 목자를 따라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가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홀로된 “거지나사로”와 같은“고아, 과부, 나그네”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경로를 통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 1:49-51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해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나다나엘”은 예수님에게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느냐고 예수님을 불신했지만 예수님을 직접보고 말씀을 들어보니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나다나엘”이 이미 광야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온“육축”(양)의 존재이거나“육축”이 거듭난 요한과 같은“여자“의 영적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나다나엘”에게 내가 너를“무화과나무”아래서 보았다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볼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더 큰 일을 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앞으로 너희가 하늘의 문, 즉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너희들도 보게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계시의 눈이 열려 성경을 통달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사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기독교목회자에게서 하루속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오늘날“실존예수”가 어디에 계신지를“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그 분을 만나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실존예수님”은 항상 기독교인들 옆에 계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