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해설

8.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제라늄A 2018. 12. 19. 21:14

 

[주기도문 해설집] 

8.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호티 수  에스틴 헤 바실레이아  카이 두나미스  카이 헤 독사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아멘)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로부터 영원히 나타난다는 말이다.

 

8.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상기의 말씀은 주기도문 마지막 종결 부분으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주인이시며 인간들은 그의 피조물로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세세토록 받으셔야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이십 사 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4장 10절-11절]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상기의 말씀을 보면 이십 사 장로들이 땅에 있을 때나 하늘에 올라가서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인간들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광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 면류관을 받은 이십 사 장로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면류관을 벗어 던지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드리는 것이다. 본문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앞문장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와 이어진 문장이다. 즉 이 말씀은 앞 절과 "호티"라는 종속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는 한 문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의 교회에서는 "호티"라는 단어를 "대개"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대개로 말하는 "호티"라는 단어는 종속접속사로 앞 절의 이유를 나타내는 것으를 나타내는 것으로 뜻은 "왜냐하면, 까닭은"등의 의미다. 이렇게 "호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해 주셔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해 주셔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원토록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셔야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우리가 영원히 나타낼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주기도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세세토록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첫째 땅에 속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아들)를 통해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며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이웃의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권세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과 사도들의 뒤를 이어 죄와 어둠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자들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세세토록 나타낼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생명의 좁은 길을 가는 자들에게 각종 시험과 연단을 주시며 이 모든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제 원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본문에 "나라"(헤 바실레이아)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아들을 말한다. 또한 권세라는 단어는 원문에 "듀나미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권세라는 뜻보다 능력 힘, 권세,등의 뜻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말하며 "독사"는 영화, 영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영광들이 오직 아버지(성부하나님)께 영원토록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라(하나님의 아들)를 통해서 땅(죄인)들을 하늘(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에 속한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여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의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능력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4장 20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하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죄를 사하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과 제사장들이 전하고 있는 말씀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능력에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으나 제사장들이 전하는 말씀에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목회자들이 죽은 영혼들을 살리지 못하고 교인들에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19절-20절]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회자들은 수 없이 많으나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능력 즉,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목자라는 것은 그의 능력 즉, 그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며,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실제 거듭난 자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줄 때 자신의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한 말이다.

 

[마태복음 3장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누가복음 3장 16절-17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상기의 말씀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인데 이 세상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제일 큰 자임에고 불구하고 예수님의 능력에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실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만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세 즉,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죽은 영혼을 살릴 수가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에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신발 끈을 푸는 분이며 자신은 신발 끈을 풀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은 말씀의 영적 의미를 풀어내는 분이시며 자신은 영적인 말씀을 풀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례요한은 이 세상에서 여자가 난 자중에 (영적 수준이)제일 큰 자이지만 자신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영적인 말씀들을 이해하기 조차도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니고데모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으나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조차 모르고 있다. [요한복음 3장 3절-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자이며 물과 성령으로 낳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있으면서도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영적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으로 난 자는 육적존재이며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영적 존재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생명이라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것은 영의 세계를 본다는 말인데 영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바로 성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비밀들을 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계시의 눈 즉, 영안이 열릴 때 비로서 하나님 말씀 속에 감추어 놓은 비밀들을 모두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자들이며 육으로 난 자 즉,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거듭난 것을 막연히 믿고 있을뿐 실제 거듭나는 과정은 니고데모와 같이 이해조차 하지 못하며 믿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9절-10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즉, 하늘의 보화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이 있어도 깨달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하여 모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늘의 별 수와 같이 그리고 바다의 모래 수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를 사랑하신단 말이가? 하나님은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하여도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사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길 즉,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조차 적은 생명의 길(애굽-광야-가나안)을 따라가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넓고 평탄한 길 즉, 세상교회(애굽교회)에서 예수만 믿으면 쉽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천국도 갈 수 있다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은 애굽교회에 머물러서 예수만 믿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고 있는 생명의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교인들에게 이단 취급을 받으며 멸시천대를 받고 있는 자들이다. 이렇게 출애굽을 하여 광야의 길을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나그네, 고아, 과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찾아서 돌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1장 11절-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마암은 것이니라,

 

사도바울은 상기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전하고 있는 복음의 근원지와 출처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 사도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바울도 계시를 받기 전에는 당시 말씀의 최고수준에 있는 가말리엘 문화생으로 열심히 신학공부를 하였지만 예수님의 계시를 받고 나서 그 모든 것은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배설물을 버리듯 모두 버린 것이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의 눈이 열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이들이 바로 천국의 서기관된 자들로서 천국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마음대로 꺼내올 수 있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13장 5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성령으로 난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은 천국의 서기관들로서 구약성경(옛것)이나 신약성경(새것)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비밀들을 마음대로 열어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자들은 성령의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도 통달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들로서 병든 영혼을 치료할 수 있고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과연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이라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시다. 박수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예수의 이름으로 영광을 돌립시다."등 각양 각색이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영광을 받으시는가를 먼저 확실히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문성경에 영광은 명사로 "독사"라 기록되어 있으며 뜻은 "영화, 광채, 명예, 찬미"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사 독사조"는 "영화롭게하다, 빛나다, 영광을 나타내다."등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든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말은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다, 빛나게 하다.라는 말로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또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인가?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육신적인 선행보다 영적인 선행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은 첫째로 죽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요 둘째는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말씀으로 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는 예수님이시며 또한 예수님에 의해서 거듭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들이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오직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죽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일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라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장 1절-2절] 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은 농부로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제자들로 비유하고 있다. 농부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지에 많은 과실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농부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서 많은 열매를 맺을 때 제일 기뻐한다. 결국 농부가 원하는 가장 기뻐하는 큰 영광은 곧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가지가 과실을 맺지 않는다면 농부는 그 가지를 잘라 버릴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즉, 이웃에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고보서를 통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기를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요한복음 15장 8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상기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실을 많이 맺기를 바라고 계신다. 과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비유한 것으로 우리가 죽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들을 영광으로 받으신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이들이 바로 영광의 광채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성경의 많은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20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상기의 말씀은 너희가 우리의 소망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의 강림하시는 날에 너희가 바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광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성령이 거하는 하나님의 전 즉, 교회라 말씀하신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상기의 너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며 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성령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너희가 바로 성령이 거하는 하나님의 전(교회)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너희를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산 것이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광채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들은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열매를 맺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깨끗케 하시며 영화롭게 하여 주신다.

 

[히브리서 1장 1절-3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옛적에는 선지자를 통해서 여러 모양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유의 후사로 세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후사로 세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곧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본체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후사로 하나님의 아들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여 다시 하나님의 후사 즉, 후계자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모두 하나님의 후사요 영광의 광채들이다.

 

[고린도후서 4장 4절-6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마음속에 비춰주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나타난 것과 같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빛이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고 있다.

 

영광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찬미나 찬양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양이나 찬미는 어떠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찬양을 받으시는가를 알아보기로 하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배때마다 열심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또한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그리고 일할 때나 길을 걸어가면서도 항상 찬양을 하면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찬양은 기독교인들의 생활의 일부이며 찬양을 할 때에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좋은 것으로써 믿음의 조상을 비롯해서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끊임 없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현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렸던 찬양은 어떻게 다른가를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자. [에베소서 1장 3절-6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해와 착각을 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기독교인들)를 창세전에 택하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우리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을 비롯한 열두 사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우리는 지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생명의 좁은 길을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며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는 예수님이시며 또한 예수를 통해서 택한 열두 제자들을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도교인들이 아니라 지금 세상교회에서 벗어나 광야를 거쳐 생명의 좁은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 고아, 과부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은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적인 나그네, 고아, 과부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찬미의 제사 즉, 입술로 찬양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히브리서 13장 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부르는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찬양으로 알고 열심히 부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찬미나 찬양은 선지자나 사도들이나 그밖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또한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외치는 하나님의 복음을 말한다. 이러한 찬양을 모든 믿음의 조상들과 예수님과 복음의 사도들이 부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항상 불러야 할 찬송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찬양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이며 지금도 이러한 찬양을 하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14장 14절-15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방언의 은사를 받아 방언을 기도하며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때문에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라는 것인데 영으로 찬미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찬양하라는 말이며 마음으로 찬미하라는 것은 진실로 찬양하라는 말씀이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은혜로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신 것은 이러한 찬양을 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해서 영광과 찬미의 제사를 받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땅에 속한 죄인들이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것은 창조된 아들들을 통해서 영광과 찬미의 제사를 받으시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들은 예수님을 비롯해서 모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말씀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광을 받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줄 하나님의 아들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 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모든 뜻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부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창조를 받아야할 피조물(땅)들이다.그런데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땅을 하늘로 재창조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자하나님 즉,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창조를 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만물은 자연만물이 아니라 땅에 속해 있는 인간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성자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창세기의 말씀에 따라서 땅에 속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신 것이다. 이렇게 주기도문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땅에 속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는 과정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몇 구절 안되는 짤막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들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과정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뜻을 확실히 안다면 천국으로 가는 길은 물론 성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수많은 영적인 비밀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소중한 주기도문의 깊은 뜻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까지 예배의식의 하나로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회는 예수님이 오신지 이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수님이나 사도들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구원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모시고 주기도문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들은 지금도 그들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모르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회들도 이단으로 정죄를 하며 온갖 핍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과 창조의 역사는 이러한 핍박 속에서도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은 구원의 시작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과정이 모두 담겨있는 보배로운 말씀이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계명이며 사도바울이 말한 십자가의 도이다. 즉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라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주기도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루어진 것 같이 땅(나)에게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아들)가 속히 오게 해주시고 그로부터 오늘날의 양식(오늘날의 아들이 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오늘날의 양식을 먹고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웃에 있는 죄인들에게 오늘날의 양식을 먹여 죄를 사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실 때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해주어 영생(그리스도)에 이르게 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주기도문은 습관적으로 날마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의 뜻을 날마다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제부터 주기도문에 담긴 내용을 분명히 알고 생활 속에서 날마다 주기도문을 자신 안에 이루어가야 한다. 이렇게 주기도문을 날마다 이루어 간다면 멀지 않아 하나님의 뜻이 하늘(예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자신(땅) 안에서도 이루어 질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다. 저자 역시 이 주기도문 해설서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오늘날 모든 기도교인들 안에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