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해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제라늄A 2018. 12. 19. 21:20

 

[주기도문 해설집]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카이 메  에이세넹케스  헤마스 에이스  페이라스몬  알라  루사이 헤마스 아포  투  포네루)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뜻은 시험이 오지 않게 하여 달라는 뜻이 아니라 시험이 오면 피하지 말고 잘 참고 견디어서 시험에 승리 극복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인간들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바로 시험이다. 이렇게 시험은 어떤 종류든 간에 우리 인간들에게 항상 위압감을 주며 공포심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요즈음 기독인들의 오고 가는 말들 중에 시험은 성령님도 떤다는 말을 한다. 이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날마다 하는 것일까?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지금까지 해왔으며 이러한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하던 원하지 않던 여러가지 모양의 시험과 연단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고 작은 시험 속에서 살아가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험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워하며 모두 시험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은 어느 누구에게나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시험을 피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험들은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의 배후에는 반드시 원인과 분명한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사람들이 시험이 오면 걱정은 태산 같이 하면서도 시험이 온 이유나 원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세상만사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의해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신 인과응보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훈계를 듣는 것이나 매를 맞는 것도 바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징계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지한 인간들은 시험이 다가오면 그 시험이 오게 된 원인이나 근원을 찾아 회개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받는 고통만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시험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우리에게 시험이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항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험이 오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나 축복은 시험을 이긴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야보고서와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시험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야고보서 1장 2절-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에게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가 받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어 너희의 믿음이 온전하게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는 여러가지 시험을 통해서 인내심과 지구력을 만들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려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것은 믿음의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이 오지 않거나 시험이 올 때 피하거나 도망을 가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1장 6-7]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상기의 말씀을 살펴보면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절대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나 복은 바로 시험을 통해서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시험이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시험은 인내를 만들어 주며 인내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때문에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존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이나 연단은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 즉, 미완성된 인간들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재창조하는데 절대 필요한 도구나 보약과 같은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시험과 연단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죄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기 위하여 애굽에서 430년동안 바로왕 밑에서 종노릇을 해가며 시험과 연단을 받게 한 것이며, 또한 축복의 땅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시기 위하여 불뱀과 전갈이 있는 불모지 사막의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게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연단을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결국 광야에서 모두 멸망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알고시험을 감사함으로 받으면서 잘 참고 견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며 시험이나 연단을 통해서만 죽은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받고 있는 시험은 과연 우리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날마다 알게 모르게 항상 겪고 있는 시험도 그 깊은 뜻을 알고 보면 우리에게 모두 유익을 주는 절대 필요한 것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시험이 주어지지 않는다든가 주어진 시험을 회피한다면 이 세상에서 출세도 성공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시험이 없다면 실력이 향상될 수가 없고 학생들이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려면 반드시 시험에 합격이 되어야 하며 직장에서 진급을 하려해도 반드시 시험에 합격을 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이 싫고 두려워서 피해 다닌다거나 시험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 진출은 물론 성공도 할 수가 없다. 이렇듯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운동을 하는 선수들까지도 모양만 다를 뿐 시험과 연단은 어느 누구에게나 항상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시험은 시험을 받는 당시에는 고통스러워 보이나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유익하고 중요한 시험이 오지 않도록 혹은 시험을 피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면 우리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과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유익하고 필요한 시험을 오지 않게 하여 달라는 뜻으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단 말인가? 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는 말씀의 진정한 뜻을 바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뜻을 원문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이 문장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단어는 '에이세넹케스"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에이스 훼로"로서 전치사 "에이스(~에게로, ~향하여, ~안으로)"와 동사 "훼로 (견디다, 참다, 들어가다, 나오다, 빠지다)"가 합성된 단어로서 뜻은 " ~ 에서 견디다, ~ 에 들어가다,  ~ 에 빠지다."등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진정한 뜻은"우리를 시험에서 견디게 즉, 시험에서 이기게"하여 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뜻이 아니라 시험을 이기게 혹은 시험을 극복하게 하여 달라는 뜻이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며 시험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시험을 잘 이기느냐  아니면 시험에 지느냐에 달려있다. 즉 시험을 잘 극복하고 시험에서 승리한 자들은 성공을 하지만 시험에 낙방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낙방하는 자에게는 저주며 고통이지만 합격하는 자에게는 축복과 행복이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연단을 잘 이기고 시험에 합격한 자들은 큰 축복이 주어지며 실패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과 행복이 주어지는 시험을 오지 않게 혹은 피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한다면 곧 저주와 고통을 받게 하여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말씀은 시험이 오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시험에서 이기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이상과 같이 개역성경의 뜻과 원문이 제시하고 있는 시험에 대한 뜻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시험의 진정한 뜻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히브리서 12장 4절-13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는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상기의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징계와 채찍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지만 징계를 받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시험이요 고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와 채찍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여 살리려는 마음으로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나 채찍이 우리에게 없다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을 통해서 받는 고통과 시험은 우리의 병든 심령을 치료하는 약이요 죽은 영혼을 살리는 보약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고통의 시험이 오지 않게 혹은 피하게 하여 달라고 날마다 기도를 한다면 결국 멸망 받게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가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후에는 그 징계로 말미암아 연단된 자들은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받는 시험과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징계를 통해서 죄 가운데서 구원받을 수 있고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 설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본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뜻은 시험이 오지 않게 하여 달라는 뜻이 아니라 시험이 오면 피하지 말고 잘 참고 견디어서 시험에 승리(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즉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에서 낙방하거나 실족하지 않고 합격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자녀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시험을 볼 때 수험생이나 부모들이 모두 시험에 합격해달라고 기도하지 그 시험을 피하거나 도망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는 시험은 영적 성장을 시켜 줄 뿐만 아니라 죄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시험들을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시험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을 피해 다닌다면 평생동안 신앙생활을 하여도 앉은뱅이와 같이 한번 일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제부터 시험이 오지 않게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시험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험을 통해서 영적성장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도교인들이 시험을 두려워하고 시험에 지게 되는 것은 자신 안에 들어있는 죄악 즉, 욕심 때문이다. 왜냐하면 욕심이 모든 죄의 근원이며 욕심이 곧 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오는 미혹과 시험에 빠지는 것은 자신 안에 욕심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욕심이 없다면 세상의 재리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어떠한 유혹에서도 승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외적인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 안에 들어있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시험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만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욕심의 실체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거나 죽이지 않고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는 것은 곧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욕심을 날마다 버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죄악의 실체인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시험에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욕심을 뽑아내기 위해서 날마다 징계를 하시며 채찍질까지 하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근원인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기도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2)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본문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악한 자들로부터 오는 외적인 시험보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과 죄악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미혹과 시험에 빠지는 것은 모두 자신 안에 들어있는 욕심 때문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욕심이 없다면 미혹이나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시험을 모두 이기고 승리하신 것이다. 이렇게 자기 안에 욕심이 없다면 악한 자들이 아무리 미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한 자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된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는 자신 안에 있는 죄악과 욕심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이다. 사람들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악의 실체인 욕심과 탐심은 로마서 7장을 통해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로마서 7장 18절-24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사도바울은 외적으로 오는 시험과 환란보다 자신 안에 있는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 안에 있는 악의 존재를 이기지 못하고는 외적으로 오는 시험이나 환난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 있는 악의 존재를 바라보고 괴로워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은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선을 원하는 존재와 악을 행하려는 두 존재가 함께 있다. 이 때문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언제나 자신 안에서 대적을 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억누르고 굴복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며 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악의 실체는 인간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 오는 시험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오는 시험과 미혹을 이기려면 항상 말씀으로 무장을 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항상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 24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상기의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속이는 자와 삯군 목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이런 자들은 잠실 운동장과 같이 큰 장소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모아놓고 육신의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며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생명의 좁은 길을 가는 자들도 미혹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5장 8절-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다가오는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도 접근하여 온갖 방법으로 미혹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 다가오는 악한 마귀들은 환상이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무섭고 흉악한 존재들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과 삯군목자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악한 존재들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생명의 길을 가는 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악한 자들을 분별할 수 있고 이들의 미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한 마귀들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사도나 의의 일군으로 가장을 하고 교인들에게 접근하여 미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말씀)으로 다가와서 나는 그리스도다, 사도다, 참목자다.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1장 13절-15절]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저런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재물을 탈취하는 삯군 목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인들의 재물을 탈취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가장을 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를 기업화 하며 대형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4장-5절]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장 11절-12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예수님은 지금 이 세상에는 많은 거짓선지자들과 삯군목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누가 거짓선지자이며 누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참선지자인지를 분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내가 소속된 교회나 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참목자이겠지 하고 믿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목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기의 말씀과 같이 생명이 있는 참목자는 극히 적고 생명이 없는 거짓목자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참목자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두드리며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양들이 죽고 사는 것은 오직 목자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때일수록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줄 참목자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목자와 거짓목자를 분별할 수 있고 거짓선지자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악한 자들이 생명의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까지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악한 마귀들로부터 오는 미혹과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예외 없이 받으신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4장 1절-1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모두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 낙방을 하였다면 예수님도 지금 타락한 천사가 되어 마귀의 종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첫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뱀의 시험에 졌으며 둘째 아담 예수는 마귀의 시험을 이겼는가? 그것은 성경이 말해주듯이 예수님은 말씀으로 무장이 잘 되어 있었고 아담은 말씀으로 무장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마귀와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고 마귀의 시험에서도 승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악한 자의 미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연단에 낙방하지 않고 합격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이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씀은 시험에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안에 있는 죄악 즉, 욕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을 모두 물리치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 안에 있는 악 즉,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이런 악에서 벗어나 시험을 이겨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여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살려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 기도가 바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