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해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NO 2.

제라늄A 2018. 12. 19. 21:23

 

NO 1.에서 계속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NO 2.

 

[예레미야 7장 3절-11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는 말씀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하나님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걸어가고 있는 천국의 길과 신앙생활들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곳에서 도적질을 하며 살인을 하며 간음을 하며 거짓맹세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 앞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하나님(예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가증한 일(욕심)을 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하나님의 교회)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소굴)로 보이느냐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이미 너희가 도적질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다. 이와 같이 "하마르티아"라는 죄는 하나님의 선지자나 목회자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 사역자들이 거짓증거를 하므로 천국으로 가야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죄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죄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하며 회개도 올바른 회개를 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회개인데 이 회개기도는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으며 또한 이 세상 끝마치는 날까지 계속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본래 죄 가운데 태어나서 항상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또한 하나님께 회개를 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하지 않은 영혼은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개하라는 진정한 의미는 "회개(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라는 것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생명으로 나오라는 말이다. 즉 넓고 평탄한 멸마의 길에서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나오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말씀하신 뜻은 멸망의 넓은 길에서 돌아서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오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윤리도덕이나 교리로 범한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둠(죽은 자) 가운데서 빛(아들)으로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유도 바로 예수님이 오셔야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피로만이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 즉, 산 자의 피로써만 죄인들의 죄를 씻을 수 있고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 자의 피는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비유로 "피"라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피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하며 그 말씀만이 곧 영이요 생명으로서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오늘날의 구원자가 실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20장 21절-23절]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제자들은 어느 누구나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면서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린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도 모두 구원자가 되어 죄인들의 죄를 사해준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 거듭난 아들들은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도 죽은 영혼을 생명의 말씀으로 살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뜻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주었으니 우리의 죄도 사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다.이 말씀에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인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 이 기도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기도는 어느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기도는 죄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자들은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즉 오늘날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하는 기도라는 말이다. 이제 원문을 통해서 본문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본문에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에 죄라는 단어를 원문에서 찾아보면 "옵훼일레마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채무자, 빚진자, 죄지은자"로 나타나 있다. 또한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에 "사하다"라는 단어 "압훼스"는 어근이 "압히에미"이며 뜻은 "떠나게하다, 허락하다, 사하여 주다, 탕감해 주다, 용서하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본문을 원문으로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사하여(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우리에게 사하여(탕감하여)주옵소서"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자를 사해주어 하나님으로 부터 죄사함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우리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도 모두 사해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예수)가 와서 그가 주는 오늘날의 양식(오늘날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에게 해당 되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께서 이웃에 있는 제자들의 죄를 모두 사해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시켜 그리스도로 만드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릴 때 영생(그리스도)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해도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지 않으면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말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마태복음 18장 23절-35절]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 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데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섣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예수님께서 임금과 빚진 동관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이 말씀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심판을 받을 때 임금에게 살려달라고 사정을 하여 임금이 모든 빚을 탕감해 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천분의 일도 안 되는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옥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만 달란트 빚을 졌던 자를 다시 옥졸들에게 붙인 것이다. 이 말씀은 비유로 왕은 하나님을 가리키며 빚진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며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일만달란트의 빚을 진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탕감을 받았는데 그는 이웃에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아 다시 옥졸들에게 잡혀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자로서 반드시 이웃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시켜야 하나님께서 은혜의 빚을 완전히 탕감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가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외면하거나 구원의 대가를 요구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빚진 자들은 반드시 빚을 갚아야 하는데 그 은혜의 빚은 하나님께 직접 갚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에게 갚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자는 이웃을 구원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반드시 이웃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시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값없이 구원시킬 때 비로서 하나님께 지은 빚을 모두 탕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의 죄를 사해 주는 것이며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은혜의 빚)를 사(탕감)하여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장 1절-2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을 농부로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제자들은 가지로 비유한 것이다. 들포도나무에 붙어있던 가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참포도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그 진액을 받아 살고 있지만 그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잘라 버리시겠다는 말씀이시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이라 해도 멸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원받아 생명에 이른 자는 반드시 이웃에 있는 형제들을 구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죄사함을 받고 사도로 거듭난 후 그의 모든 생애를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는 사역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도들이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줄 때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탕감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이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지 않는다면 다시 멸망을 받게 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감의 비유와 같이 자신은 큰 빚을 탕감 받고도 이웃에 있는 동관의 작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아 다시 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것이며, 또한 포도나무의 비유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참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자들이 열매를 맺지 않아서 농부가 그 가지를 잘라 불에 태워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흘려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서 사도들이 되었고 예수님은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살을 먹이시며 희생의 피를 아낌없이 모두 흘리신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회나 천주교회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성찬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떡과 포도주의 영적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만일 예수님께서 먹으라고 주시는 떡과 포도주의 실체를 모르고 먹고 마시며 성찬식을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와 살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상기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생명의 말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말하며 그의 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피를 소유하신 예수님이 실제 계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만일 예수님이 실제 계시지 않았다면 피도 있을 수 없고  죄사함도 받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26장 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피는 죄 사함과 절대적 관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의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죄를 사할 수도 없고 죽은 영혼들을 살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구원시켜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흘리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먹이시는 살과 흘리시는 피로 말미암아 열두 제자들이 살아난 것이며 이 살과 피를 양식으로 먹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예수님과 같이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피를 흘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는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예수님의 살과 피는 모두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비유한 것인데, 살은 죽은 자가 살기 위하여 먹어야 할 양식이며 피는 생명의 말씀을 먹고 살아난 자가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먹이는 양식을 말한다. 즉 살과 피는 동일한 말씀이지만 죽어있는 영혼들이 살기 위해 먹는 양식은 살(말씀)이며 죽어있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먹이는 양식은 피(말씀)라 말한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죽은 영혼이 살기 위해서 먹는 말씀은 살이며 살을 먹고 거듭난 자가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먹이는 말씀은 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살과 피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즉, 산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한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제자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아낌없이 모두 흘리신 것이며 그 결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정결케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과 같이 자신들의 희생의 피를 흘려서 이웃에 있는 죽은 자들을 살린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죄 사함을 받으려면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피)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현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피는 오직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의 죄를 모두 사해 주었을 때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준 것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달라는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자로서 이웃에 있는 자들의 죄를 사해줄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더욱 깨끗하게 하며 허다한 죄를 모두 사하여 주신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죄 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다. 결국 오늘날 죄를 사할 수 있는 자들은 오늘날의 양식을 먹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반드시 이웃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자신의 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이웃인 열두 제자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과 같이 그들의 이웃에 있는 형제들을 구원시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장에 나타난 "낳고 낳고"의 생명의 역사이며 이러한 낳고의 역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14절-16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상기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만일 사도바울이 이러한 말씀을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와서 한다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 방자하다고 생각할까?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낳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기 때문에 오늘날 기도교인들은 예수만을 믿고 예수만을 본받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담대히 말하는 것은 바울 자신은 분명히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낳음을 받은 자이며 또한 자신 안에 있는 생명(말씀)으로 디모데와 디도, 그리고 오네시모 등을 낳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디모데나 디도나 오네시모 등은 사도 바울을 본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생명으로 낳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도바울은 이웃에 있는 디모데와 디도 등을 복음으로 낳아 아비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반드시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시켜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행한 자들이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도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시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였으니 이제 그리스도 즉, 아비가 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웃에 있는 제자들을 구원시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한 후에 그리스도가 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진리를 따라 생명의 좁은 길을 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도 변함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참목자로부터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바로 이웃에 죽은 영혼들을 구원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사하여 주었으니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과 같이 반드시 악한 자들로부터 오는 각종 시험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악한 자들로부터 다가오는 시험을 모두 이겨야 하는데 만일 이러한 시험들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다면 즉시 타락한 천사가 되어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러한 시험에서 이기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인데 이 기도가 바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