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 ※
기독교인들 중에는 오늘날의 양식을 육신의 양식으로 알고 감사하며 먹고있는 자들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일용할 양식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오늘날 우리가 먹어야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도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도 아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은 어떤 양식을 말하는가? 만일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먹어야 할 일용할 양식을 모른다면 날마다 양식을 먹는다해도 영생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양식을 먹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 오늘날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원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의 원문은 ( )으로 이 말씀을 직역하면 "우리들의 생존을 위한 오늘날의 떡을 우리에게 주옵소서"라는 말이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들이 영생을 하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양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양식이 바로 오늘날의 양식이라는말이다. 이 말씀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단어는 생존을 위한 (톤에피우시온)이 아니라 오늘날의 양식(톤 아르톤 세메론)이다. "오늘날(세메론)"이라는 단어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날의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 속에는 존재의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시는 오늘날은 곧 오늘날의 존재를 말한다. 즉, 오늘날은 오늘날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한다. 날이 존재라는 것은 시편이나 복음서나 창세기에 잘 나타나 있다. [시편 19편 2절-4절]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상기의 말씀은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날은 빛의 존재들을 말하며 밤은 육에 속한 어둠의 존재들을 비유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낮이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욤"으로 분명히 날을 말하고 있다. 결국 빛은 날이요 날은 곧 빛이라는 것이다. 이 빛은 요한복음 1장을 통해서는 참 빛 곧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9절-13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상기의 말씀에 참 빛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며 세상은 어둠의 존재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셨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그 이름은 예수라는 이름 두 글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영접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배척한 유대인들은 멸망을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날이나 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의 존재를 말한다. 이렇게 예수님은 생명으로, 빛으로, 혹은 생명의 떡으로 또는 오늘날로 때로는 천국으로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 영생을 위한 오늘날의 양식은 곧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가리키며 또한 예수님에 의해서 거듭난 아들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죽어있는 우리들에게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주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 현실 가운데 이러한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줄 실제 인물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신 이후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양식을 주는 살아계신 오늘날의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의 양식을 나누어 줄 오늘날의 구원자가 있다 해도 기독교인들은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을 하기 때문이다. 양식은 오늘날의 양식이 있고 내일의 양식이 있으며 어제 먹은 양식이 있다. 즉 양식은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양식이 있고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양식이 있고 몇 천년 후에 우리 후손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양식은 현제 살아있는 부모가 주는 것이지 몇 천년 전에 죽은 조상이 와서 우리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현재 양식을 나누어 주고 있는 부모들도 몇 천년 후의 후손들에게까지 나타나서 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렇듯 천년 전의 양식이나 현제의 양식이나 천년 후의 양식은 동일하다 하여도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은 각기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유대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롯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이며 그 이후에는 예수님을 유대땅에 구원자로 보내셔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열두 제자에게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나누어 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에는 하나님 아들로 거듭난 열두 사도들이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되어 예수님의 뒤를 이어 양식을 나누어 준 것이다. 이렇게 하늘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보내주고 계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오늘날들(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늘의 양식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이미 와 계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람의 모습은 각각 다르나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양식과 동일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들이 되어 유대인들에게 주었던 말씀이 동일한 것과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는 말씀은 동일하다는말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며 영원토록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양식이 아무리 많아도 나누어 줄 자가 없다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과 아들들을 계속해서 보내주시는 것이며 지금도 우리 가운데도 이미 구원자들이 와 계신다. 지금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죄를 사해주고 거듭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오늘날의 구원자이며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이다. 원문 성경에 "예수( )"라는 뜻은 구원자라는 말이다. 즉 예수는 구원자요, 구원자는 예수라는 말이다. 이렇듯이 구원자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변호사, 의사, 목사, 신부등과 같이 구원자는 어느 특정한 인물울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직분이나 직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의사의 직분을 가진 의사가 병자를 치료하여 고칠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의사인 것이며 변호사가 변호사의 자격을 갖추고 법정에서 죄인들을 변호할 수 있다면 그는 변호사인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자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면 그런 자는 모두 구원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치료할 수 있고 죽은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여호수아( )"나 "호세아( )" 도 그 이름의 뜻은 예수님과 같이 구원자였으며 이들도 실제로 구원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이렇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모두가 구원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유대 땅에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이시며 오늘날 우리의 구원자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여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님이 행한 일을 모두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인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구원자들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는 오늘날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구원자로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 안에는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예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구원자가 없었으며 있다 해도 믿거나 절대로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원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기독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독교 밖에서 나그네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 하나 없다고 한탄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들도 기독교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기독교 밖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을 사람이신 예수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이 말은 구원자는 반드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많은 선지자들도 인자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든 구원자들은 반드시 모두가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있는데 만일 인성인 몸이 없다면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직접 구원하지 않으시고 인성을 가진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예수와 사도들을 구원자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옷을 입지 않고는 우리의 구원자로 오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인성을 가진 열두 사도들을 다시 구원자로 보내주신 것이며 지금도 구원자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계신다. 이렇듯이 구원자는 반드시 육신의 몸이 있어야만 육신의 몸을 가진 인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자인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님과 같이 모두 말씀이 육신화 된 자들로서 신성과 인성을 가진 자들을 말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오늘날 일용할 양식과 우리의 구원자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은 성령시대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들을 모두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오늘날이 성령시대라는 말이나 성령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말씀은 없다. 단지 다시 오신다는 주님께서 이천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시지 않기 때문에 일부 목회자들이 궁여지책으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보내주셨고 지금도 인성과 신성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원자로 계속해서 보내 주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현실 가운데 구원자로 보내 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를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오늘날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먹어야 한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에게 보내주신 구원자들을 통해서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면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구원자들이며 일용할 양식으로서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은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영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절대로 먹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은 곧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구원자를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일용할 오늘날의 양식(생명의 말씀)을 위하여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을 먹을때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진자가 되어 다시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 즉, 죄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먹여서 구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에게 일용할 양식(말씀)을 먹여서 살리는 것이 곧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는 것이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신 것과 같이 죄인들의 죄를 모두 사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예수님과 같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 이웃에 있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 줄 때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우리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주기도문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0) | 2018.12.19 |
---|---|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0) | 2018.12.19 |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NO 1. (0) | 2018.12.19 |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NO 2. (0) | 2018.12.19 |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0) | 201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