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해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제라늄A 2018. 12. 19. 21:34

 

[주기도문 해설집]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육신에 속한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세상 사람들이 먹고 있는 육신의 일용할 양식이지만영에 속한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하늘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도스  헤민  세메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양식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은 물론 영의 생명도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일용할 오늘날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양식은 어떤 양식을 말하고 있을까? 오늘날의 양식이란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양식이나 미래에 태어날 후손들이 먹을 미래의 양식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오늘날의 양식을 말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어떤 종류의 양식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떤 양식을 위해서 식사 때마다 기도를 하고 있는가? 문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양식을 정확히 모른다면 평생동안 썩을 양식을 먹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26절-2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
상기의 말씀에서 하신 말씀을 보면 양식이 썩는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러면 썩는 양식은 어떤 양식을 말할까?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우리가 식사 때마다 먹는 육신의 양식이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썩는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썩는 양식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양식이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사람을 살리는 양식이라는 말이다. 만일 썩는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어떤 양식을 썩는 양식이라 말씀하는 것일까? 

 

문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양식은 육신이 죽고 사는 양식이 아니라 영혼이 죽고 사는 양식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죽은 육신들을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고 사는 양식도 육신의 양식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썩는 양식은 사람들의 육신이 썩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부패하여 죽게 되는 양식을 말한다. 그러면 영혼을 부패하게 하여 죽게 만드는 썩는 양식은 어떤 양식을 말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썩는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사람들이 만든 각종 교리와 유전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든 비진리나 교리들은 누룩과 같이 조금만 들어가도 사람들의 영혼이 부패하여 결국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썩는 양식은 누가 주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누가 주는가? 썩는 양식은 거짓 선지자와 삯군 목자가 주는 가감된 말씀이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는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어디 있으며 어느 누가 준단 말인가? 오늘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반드시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나라)만이 줄 수 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나 먹으면 죽는 썩는 양식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식사 때마다 육신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육신에 속한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먹고 있지만 영에 속한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하늘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는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육신의 몸이 있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도 먹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몸도 육신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이렇게 육신의 양식도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할 양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도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오늘날 양식을 육신의 양식으로 알고 육신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육신에 속해 있고 기복신앙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행하는 요나의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그의 제자들은 오직 영생의 말씀 때문에 예수를 믿고 따른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일용할 양식이 사람들의 신앙의 차원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각기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육신에 속해 있는 자들은 지금도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라 주장하며  영에 속한 자들은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는 양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아모스 8장 11절-13절]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에 보내는 기근은 육신의 양식이 없는 주림이나 마실 물이 없는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오는 기근을 말한다. 이렇게 진정한 하나님백성들의 주림과 고통은 육신의 양식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다. 오늘날도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구하고 찾지만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생명을 갈구하는 자들은 진리의 말씀이 없어 찾아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직 땅에 속한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육신을 위한 양식이지만 하늘에 속하여 진리를 찾는 자들의 일용할 양식은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신의 양식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열심히 찾아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늘의 별수와 같이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고 모래수와 같은 수많은 교인들은 교회에서 날마다 넘치는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노아 때의 홍수와 같이 넘쳐서 곳곳마다 교회당이 있고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홍수와 같이 넘치고 있지만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생수 즉, 생명의 말씀은 말라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죽은 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 있지만 산 자가 주는 생명의 말씀은 적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지만 영적 신앙의 상태에 따라서 먹는 양식도 각기 다른 것이다. 즉, 애굽에 있는 교인들이 먹는 양식은 누룩이 섞여 있는 유교병(각종 교리들)이며 광야에 나와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의 양식은 무교병(율법)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의 양식은 생명의 떡(진리)이다. 이 때문에 애굽의 제사장들(목사)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교병(가감된 말씀)을 먹이고 광야의 모세는 만나(율법)를 먹이며 가나안의 예수님은 산 떡(생명의 말씀)을 먹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는 일용할 양식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생수라고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13절-1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상기의 말씀은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로 예수님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물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야곱의 우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 있는 물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야곱의 우물에서 나오는 것은 물이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생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야곱의 우물이나 물과 생수는 일반 우물이나 사람들이 마시는 식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즉,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야곱의 우물은 하나님의 제단과 성전을 말하며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런데 먹어도 다시 갈한 물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제사장이나 목회자들이 주는 말씀을 말하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예수님이나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이 주는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이렇게 오늘날도 산 자가 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지만 죽은 자 즉, 아직 거듭나지 못한 목자들이 주는 말씀은 먹어도 다시 목마르고 갈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을 통해서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6장 51절-57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죽은 자)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세상에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는 자신을 생수라고 말씀하셨는데 상기의 말씀에서는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비유와 비사로 말씀을 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모두 비유와 비사라는 말은 곧 모두 영적인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를 믿기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 해도 먹는 즉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즉, 살과 피가 아구까지 찰 때 거듭나서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첫째,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어야 하며 둘째그가 주는 산 떡 즉,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생에 이르려면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을 먹으라는 것은 무슨 뜻이며 피는 무엇 때문에 마셔야 하는가? 문제는 예수님께서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살과 피의 영적인 의미를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0절-61절]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그런즉)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상기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은 모두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땅에 속한 죄인들이나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불평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겠느냐고 수군거리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과 피의 진정한 의미나 떡과 포도주의 영적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교회나 성당에서는 성찬식을 할 때에 육신의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면서 성찬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찬식은 최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앉아서 먹었던 떡과 포도주인데 이 떡과 포도주는 영적인 실체가 아니며 영적인 실체는 바로 말씀이 육신화 되신 예수님의 몸 즉,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말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면적인 떡과 포도주는 단지 영적 실체인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일 뿐이다.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체 즉, 생명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절대로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동일한 생명의 말씀을 무엇 때문에 떡과 포도주라고 분리해서 말씀하셨을까? 이제부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피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성경에 기록된 "피(하이마)"라는 단어를 원문에서 찾아보면 "피, 혈루, 혈통, 피흘리기" 등으로 나타낸다. 또한 성경에서 피란 의미를 찾아보면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듯 육체를 가진 동물의 생명은 모두 피에 있기 때문에 피는 곧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생명은 곧 피에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피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인성인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와 인간들의 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땅에 속한 인간들의 피는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인의 피요 예수님의 피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의로운 피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땅에 속한 죄인들로부터 받은 육체의 생명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죽은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땅에서 난 자와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의 피는 죽은피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의 피는 살아있는 생명의 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다시 거듭나서 영원히 살 수있는 피는 오직 "예수의 피"인 것이다. 그런데 왜 동일한 예수님의 생명을 살과 피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하나이며 절대로 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살과 피라고 구분지어 말씀하신 것은 분명히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과 피는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살과 피는 성경의 모든 말씀 중에 가장 큰 비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십자가의 도를 비유한 것이다. 즉 살과 피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살이란 죽은 자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양식(말씀)이며 피는 살을 먹고 산 자들이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먹이는(흘리는) 양식(말씀)을 말한다. 이와 같이 살은 죽은 영혼들이 자신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받아먹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며, 피는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을 먹여서 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산 자들의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인들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고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예수님과 모든 사도들이 모든 생애를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의 피를 모두 흘리신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 몸속에 있는 태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먹여 키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흘리시는 피를 양식으로 먹고 살아난 제자들은 결국 사도들이 되어 다시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의 피를 흘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영적인 살과 피인 것이다. [요한복음 6장 48잘-50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은 광야에 있는 자들이 모세를 통해서 먹는 만나가 있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이 있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떡(만나-율법)은 먹었어도 죽었지만 내가 주는 떡(생명의 말씀)을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먹은 떡 즉, 만나(율법)는 일일 양식으로 영원히 사는 떡이 아니며 산 떡(생명의 말씀)은 오직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상교회에서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 몸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일 뿐 생명이 아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먹은 만나는 율법을 말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떡은 은혜와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삼년 반 동안 먹고 마신 양식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살과 피나 세상에서 먹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산 떡 즉, 생명의 말씀을 먹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영이요 생명인 것이다. 이상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세가 주는 만나라든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찬식을 통해서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모형과 그림자이며 영적 실체는 오직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하신 뜻은 산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지만 죽은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는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6절-69]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로리까,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가 된 후에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큰 표적을 목격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은 영 즉, 생명의 말씀이며 육신의 떡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모두 떠나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던 자들까지 떠나간 후 예수님께서 끝까지 남아 있는 열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 즉,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양식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라면 바드시 먹어야만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떡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생명의 떡은 위에서 말씀드린 예수님의 살(말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 반 동안 날마다 먹었던 오늘날 일용할 양식(생명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