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카이 압헤스 헤민 타 옵헤일레마타 헤몬 호스 카이 헤메이스 압히에멘 토이스 옵헤일레타이스 헤몬)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도 죽은 영혼을 생명의 말씀으로 살리고 있는 것이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상기의 기도문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큰 문제점과 더불어 많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죄 지은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기독교의 교리는 인간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 뿐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죄 지은 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었으니 우리의 죄도 사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죄라는 의미를 확실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며 죄의 근원은 무엇인가? 또한 인간이 무엇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었으며 그 시점은 언제였나? 그리고 인간들의 죄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며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는가? 또한 위의 기도문과 같이 정말 우리 인간들도 죄인들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상기의 문장은 절대로 풀 수가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죄의 종류와 죄의 근원과 죄 사함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인간들의 생활 속에서 인간들이 정해 놓은 법률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죄와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율법에 적용되는 죄다. 인간들의 죄에 대한 기준은 주로 윤리와 도덕을 기준으로 한 선악간의 죄와 국민의 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국법에 적용되는 죄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죄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 즉 율법이 적용되는 죄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거나 지키지 않는 것을 죄라 한다. 그런대 성경은 인간들이 율법을 모두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은 모두가 죄인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인간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때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죄는 언제, 무엇 때문에,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성경에 인간이 최초로 범죄한 사건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할아버지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되어 버린 것인데 이를 가리켜 기독교에서 원죄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들은 우리 조상 아담 때문에 알지도 보지도 못한 원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 죄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의 교리는인간들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과 이 세상사는 동안에 원죄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멸망을 받아 지옥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죽는 것은 조상의 원죄와 관계없이 현생에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원죄라는 말씀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하여 우리가 죽는 것은 조상의 죄와 관계없이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죽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 18장 2절-4절]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사람들 중에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교인들도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일을 잘못되게 한 것처럼 하나님을 탓하며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은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나 하나님 탓으로 돌린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상기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즉 조상의 죄는 조상이 받는 것이지 조상의 죄로 인해서 자신이 벌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원죄를 아담에게 돌리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하시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눈도 깜짝이지 않고 기독교가 만들어낸 원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 18장 19절-20절]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속담을 들어서 원죄라고 하는 아비의 죄와 아들의 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죽는 것은 우리 부모나 우리 조상의 죄와는 전혀 관계없이 현생에 아들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죽는 것이며 절대로 아비나 조상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부모가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아들이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잘 지켜 행하면 반드시 살 수 있다는 것이며, 아비가 아무리 많은 의를 행한 의인이라 해도 자식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죄를 범한다면 의로운 아비와 관계 없이 죽는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우리 조상 아담의 죄와 전혀 관계없이 현생에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이 성경에 원죄라는 단어 자체가 없으며 원죄란 단지 기독교가 교리로 만들어낸 기독교의 산물이다. 기독교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원죄의 성경적 근거는 고린도전서 15장 21절-22절 말씀이라 할 수가 있는데 이 말씀의 뜻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말씀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상기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죽는 것이나 부활하는 것이 모두 사람에 의해서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아담 안에 붙어 있는 자들은 모두 죽었다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살게 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아담)에게 붙어 있는 자들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들은 모두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지금도 돌 감람나무나 들 포도나무 즉, 거짓선지자나 삯군목자에게 붙어 있으면 죽게되며 참 감람나무나 참 포도나무 즉, 참 목자에게 붙어 있는 자들은 모두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인도하는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에서, 산 자들이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하루속히 돌이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제 원문을 통하여 죄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신약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를 원어에서 찾아보면 "파라피프토"와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파라피프토"라는 죄는 주로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쓰여졌으며 "하마르티아"라는 죄는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에게 쓰여지고 있다. "파라피프토"란 단어는 "파라(곁에, 옆에)"라는 전치사와 "피프토(떨어지다)"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단어로서 뜻은 "옆에 떨어지다, 곁에 떨어지다."이다. 이렇게 "파라피프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이나 진리의 말씀을 버리거나 외면하고 다른 길로 가는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변질된 말씀이나 삯군목자들을 좇아가는 자들에게 쓰여지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윤리도덕이나 세상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과 기준으로 변질, 혹은 왜곡시킨 자들과 이들이 전하는 말씀을 좇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참목자가 주는 생명의 말씀은 단단하고 쓰다고 외면하며 거짓선지자와 삯군목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여 교인들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요리한 부드러운 말씀만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5장 12절-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믈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상기의 말씀은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지금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말씀의 초보도 알지 못하고 또 어느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도 젖이나 먹고 있다는 말씀이다. 말씀의 초보는 율법을 말하며 어린아이들이 먹는 젖은 애굽의 기복신앙과 교리신앙을 말한다. 그러면 단단한 식물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단한 식물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주는 의의 말씀 즉,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은 말씀의 초보인 율법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배척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애굽의 교리와 기복신앙에 매여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단단한 식물인 생명의 말씀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유치원생들이 대학교수의 말은 듣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신앙의 차원과 상태에 따라서 먹는 양식도 각기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영적 상태를 네 종류의 밭으로 비유하여 말씀을 하고 있는데 밭은 곧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상태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을 네 종류 마음 밭으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밭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참목자)이와서 전하는 말씀을 듣기는 들으나 말씀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악한 자들(삯군목자들)의 미혹이 오면 말씀을 즉시 빼앗기는 자들이다. 둘째 밭에 속한 자들은생명의 말씀을 참 목자들로부터 듣고기뻐하면서 그 말씀을 잠시 동안은 소유하고 있으나 거짓선지자나 삯군목자 혹은 그들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받으면 곧 생명의 말씀을 버리고 다시 되돌아 가는 자들이다. 셋째밭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잘 성장을 하고 있는 자들인데 세상의 걱정과 물질에 대한 유혹이 다가오면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결국 세상으로 떠나가는 자들을 말한다. 이렇듯이 좁은 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생명의 말씀을 듣고 먹고 있는 자들도 세상으로부터 물질의 유혹이 다가오거나 혹은 넓은 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의 공격과 핍박으로 고통을 받게되면 결국 생명의 말씀을 포기하고 자신이 유리한 쪽을 택하여 떠나간다는 말씀이다. 넷째 밭에 속한 자들은 첫째, 둘째, 셋째 밭의 과정을 힘들게 걸어오면서 각종 미혹과 시련을 극복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마음 밭이 정결케 된 자들이다. 이렇게 마음이 정결하게 된 자들은 그 안에 말씀의 씨가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자들과 같아서 세상의 유혹이나 삯군목자들로부터 오는 핍박이나 환난이 와도 절대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비진리에 미혹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맺고 있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첫째 밭과 둘째 밭과 셋째 밭과 넷째 밭의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모두 극복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애굽의 기복신앙을 떠나 율법에 의한 광야의 훈련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교리신앙)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 만나(율법)을 먹으며 수많은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며, 또한 광야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주는 생명의 말씀(단단한 식물)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때 비로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이러한 구원의 과정이 없어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미혹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삯군목자요 소경된 인도자들로 천국문을 닫아놓고 자신도 안 들어가고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문제는 이런 자들은 참목자가 와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어도 오히려 이단으로 몰며 온갖 핍박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법이나 말씀보다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나 교리 즉, 사람의 계명을 더 믿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은 15장 8절-9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옛말에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이 잿밥에만 가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교인들도 말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모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늘날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가감하여 각종 교리를 만들어 놓고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목화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오류없는 완전무결한 말씀이라 말을 하면서 무엇 때문에 가감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교인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도 참목자가 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삯군목자들이 교인들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하여 가감하여 만들어내는 비진리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를 존경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15장 13절-1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소경된 인도자와 소경된 인도자를 믿고 따라가는 교인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내 천부 즉 성부 하나님께서 심은 것은 알곡이며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것은 바로 삯군목자들이 심은 가라지를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심고 삯군목자들은 교인들에게 비진리(교리)를 심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삯군목자들이 심은 가라지는 추수 때 모두 뽑아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목자를 따라가면 살지만 소경된 삯군목자를 따라가는 자들은 결국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성경은 형식적으로 몇 구절 읽어놓고 설교는 정치나 경제 혹은 기복을 위주로 한 간증설교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설교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이며 교인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 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데 교인들은 이런 말씀이 얼마나 독초인지도 모르고 말씀에 누룩을 많이 섞을수록 좋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소경이 소경된 인도자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들은 모두 함께 멸망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상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원문 성경에 "파라피프토"라는 "죄"는 말씀을 듣는 자들이 참 진리를 듣고도 외면하거나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비진리를 좇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생명의 길은 힘이 들고 어렵다고 하면서 넓고 가기 쉬운 멸망의 길을 좇아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원문에 "하마르티아"로 기록되어 있는 "죄"는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죄가 아니라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말하고 있다.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마루투스(증거하다)"라는 단어에 부정 접두어 "하"를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뜻은 "증거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증거가 아닌 것을 증거하는 것"을 죄라고 말하고 있다. 즉 말씀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거나 혹은 가감된 비진리를 진리처럼 증거하는 죄이다. 이와 같이 "하마르티아"라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또는 하나님의 참 뜻을 저버리고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사람들의 취향과 입맛에 맞도록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삯군목자들과 거짓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감하여 만든 다른 복음은 결국 다른 예수와 다른 영까지 만들어 교인들을 미혹하여 멸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1장 3절-4절]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상기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하던 뱀의 영(말씀)을 받은 거짓선지자와 삯군목자들이 나타나 너희를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부패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선지자와 삯군목자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을 잘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사도바울은 한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에 말씀도 하나이며 복음도 하나이다. 그런데 악한 존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다른 복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모르는 어리석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 말씀이 더 부드럽고 맛이 있다고 변질된 복음을 좇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보다 땅의 기름진 복 즉, 거짓선지자들이나 삯군목자들이 주는 세상적인 축복의 말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삯군목자들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땅의 썩어질 복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 수 있는 영혼까지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참목자나 진리를 버리고 삯군목자나 오염된 비진리를 좇아가고 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보다 썩어 없어질 세상의 복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며 또한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자나 말씀을 받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자기 욕심이나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면 모두 죄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가감된 말씀은 절대로 전하거나 받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은 생명의 말씀은 어떠한 위험이나 핍박이 와도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영혼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도 증거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에스겔 3장 16절-19절] 칠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은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상기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인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파숫군은 에스겔 선지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모두 하나님 백성들의 파숫군이요 구원자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인들 즉,삯군목자나 그들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올바른 말씀을 증거하여 잘못된 신앙을 깨우쳐 주어야 하며 구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나 받은 파숫군들이 악인들 즉, 죄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지 않아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피값(죄값)을 파숫군에게 받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파숫군을 기름부어 세우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살고 죽는 것은 파숫군 즉,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선지자나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느냐 듣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파숫군이 전하는 말씀을 죄인들이 듣고도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지만 말씀을 증거한 파숫군은 생명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도 올바로 증거하지 않는 것은 곧 살인하는 죄와 같은 것이다. 결국 "하마르티아"라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받고도 증거 하지 않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다른 복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하는 말씀은 모두 외면하고 신학교나 신학원으로부터 받은 가감된 말씀들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목회를 하는 목적이 영혼을 구원하려는 것보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인들에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 잘 살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생명의 길이나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복신앙으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런 자들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56장 10절-12절]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눈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올바로 전하지 못하는 파숫군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인데 이 몰지각한 파숫군은 바로 목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진실하게 전파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안에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런 삯군목자들을 가리켜 자기 이만 도모하며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벙어리 개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교회 안에 천국잔치를 벌려놓고 가감하여 맛있게 요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먹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니 내일도 와서 먹으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하고 천국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삯군목자들이 난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 간판을 걸어놓고 영혼들을 죽이고 있는 목자들을 향하여 거짓증거 "하마르티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NO 2. 부로 계속~~~ [예레미야 7장 3절-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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