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 세상에 “왜”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다가 늙어지면 “왜” 죽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삶의 대해서 관심도 없이 이 세상을 허무하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한 평생을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몸이 늙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은 모두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고 “공수래 공수거”라 말하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 9:27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무상한 사람들을 “왜”창조하셨으며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제들이 궁금해야 하고 날마다 고민하면서 세상사는 동안 연구하여 풀어야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야 하는 의미에 대해서 관심도 없이 태어났으니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모두 죽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로병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생로병사”를 초월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은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밖에는 소수의 무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의미 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며 "너희 일생이 일식 간에 빠르게 지나간다" 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무상한 삶을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 그토록 몸부림치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허무하게 돌아가야 하는가? 이 세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나 하나님의 뜻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인생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생존경쟁 속에서 서로 물고 뜯기며 살다가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 때문에 살며,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다가 허탈하게 모두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은 무상하다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혹은 일장춘몽같이 허무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인간이 온 곳은 어미의 태속이며 가는 곳은 한 평 남짓한 무덤이나 화장터에서 타다 남은 한 줌의 재로 보관되는 납골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진정 인생의 전부라면 인간은 정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나 물거품과 같이 무상하고 무가치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온 것은 어미의 태속이 아니며 가는 곳도 무덤이 아니라 인간의 무상한 존재가 “영생”으로 창조되는 것이고 “인생처럼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없다”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면 “영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알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준비한 사람들은 “인생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가치와 무가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무상”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인생같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 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생”의 무상함을 젊어서부터 일찍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다면 어느 누구나 “현생의 모든 삶을 영생을 위해서 헌신을 다해 투자할 것”이며 이 세상사는 동안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하루속히 진리를 찾는데 최선을 다 한다면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 한 삶”이라는 것을 자신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그 창조의 공정을 알아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영생“을 책임지고 보장하고 약속해주는 생명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생”을 보장 받게 되는 것을 본인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을 얻는 조건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내 몸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내 몸 안에 계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다는 것이며 성전을 건축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 몸 안에 “안식”하시기 때문에 천국이 내 몸 안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오늘날기독교 목회자들의 수많은 말씀들이 노아 홍수 때처럼 차고 넘치지만 "말씀"이라 해서 다 같은 "말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실체이신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