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은 과연?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이유는?

제라늄A 2021. 1. 1. 21:34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서 관심도 없이 태어났으니깐 이 세상을 그냥 허무하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몸이 늙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은 모두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고 “공수래공수거”라 말하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죽음을 앞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무상한 인간들을 “왜”창조셨으며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제들이 궁금해야 하고 날마다 고민하면서 세상사는 동안 연구하여 풀어야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야 하는 의미에 대해서 관심도 없이 태어났으니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무지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모두 죽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로병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생로병사”를 초월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은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밖에는 극소수의 무리가 거듭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무의미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며 “너희 인생이 일식 간에 빠르게 지나간다”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면 이렇게 “무상한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왜” 창조를 하셨으며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 그토록 몸부림치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가?  이 세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나 하나님의 뜻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인생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생존경쟁 속에서 서로 물고 뜯기며 살다가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 때문에 살며,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다가 허탈하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은 “무상”하다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 혹은 “일장춘몽” 같이 허무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인간이 온 곳은 어미의 태속이며 가는 곳은 한 줌의 재로 보관되는 납골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진정 인생의 전부라면 인간은 정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나 물거품과 같이 “무상”하고 무가치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온 것은 어미의 태속이 아니며 가는 곳도 무덤이 아니라  인간의 “무상”한 존재가 “영생”의 존재로 창조되는 것이고 “인생”처럼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면 “영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알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준비한 사람들은 “인생”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가치와 무가치는 인간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무상”하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 한 삶”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생”의 “무상”함을 젊어서부터 일찍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다면 어느 누구나 “현생”의 모든 삶을 “영생”을 위해서 헌신을 다해 투자할 것이며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하루속히 진리를 찾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그 창조의 공정을 알아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생”을 책임지고 보장해주는 생명 책이 되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일 5:13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는 자들은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영생을 얻는 조건이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 이외에는  사람들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저들인 유대인들에게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하도록 모두 “비유”로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예수에게 “왜” 저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냐고 물으니깐   마 13:10-17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유대인)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되었으나 “신구약” 성경은 모두 “안팎”(계5:1)으로 “비유”로 기록된 말씀이라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