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일창조의...

창세부터 전무후무한 큰 환난이란?

제라늄A 2022. 1. 2. 21:42

마 24:20-21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큰 환난”이란  우리 세대 내에 곧 불어 닥칠 “영적 전쟁”인 “진리”와 “비 진리”의 말씀 전쟁을 뜻합니다.“영적 전쟁”이란?  “비 진리”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가 영적 교리 전쟁이 “아마겟돈”이며 큰 환난입니다. 영적 세계의 하나님의 말씀을 “비 진리”와 “진리”와의 영적 교리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기독교 계열의 이단의 교리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창조의 시작일 때부터 반드시 예정하신 하나님의 큰 환란 날의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왜 이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란,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의 창조를 마치신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후속 편으로 만물의 영장이신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말씀 교류와 소통을 원하심과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 육신(요1:14)을 입고 “실존 예수”로 오셔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이신 땅의 인간계에 사람 하나님으로 임하시는 이 땅에 “천국”을 원하시는 창조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시는 낳고 죽고 하는 인간 육신을 지으셨을 때, 하늘에는 이미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영생 체”들을 만드셨으며 이같이 죽는 인간과 죽지 않는 “영생 체”들을 “신과 인간과 합일”시킴으로써 이 땅에서 영생의 세계를 개막시키는 창조의 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제까지의 창조는 아직 미완성이었고 앞으로 장래에 있게 될 “진리”와 “비 진리”의 “영적 전쟁”을 통해서 창조는 완성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창조의 일) 나도 일한다”라고 하셨듯이 창조란 영적인 “피 흘림”이 있어야 미래 지향적으로 되어가는 진행형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피 흘림”이란 무엇인가?   계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피”흘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리의 시공간을 확장해 가기 위해 크고 작은 “진리”와 “비 진리”의 영적인 “피 흘림”의 “영적 전쟁”들로 점철되어 있고, 마지막 날엔 이토록 전무후무한 “영적전쟁”이라고 하는 큰 환난이 닥쳐와서 그때에 “선과 악”이 완전히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창조는 영적인 “피 흘림”이 있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를 죽이고 오늘의 나로 도약하는 것이며, 다시 오늘의 나를 죽이고 내일의 거듭난 나로 성장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창조는 반드시 환난 속에서 담금질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인 피”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정적 “완성의 창조”는 큰 환난인 “영적 전쟁”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창조는 우리의 영안을 밝히는 “빛”으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필승의 큰 날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은 일곱 배의 완성된 빛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창조받게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곱 배의 빛이 없었습니다. 단 하나의 빛으로만 어둡게 살아왔기 때문에 상처를 고치시는 그날에는 일곱 배의 빛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달빛”은 “햇빛”을 만나면 “햇빛”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달빛”은 위성체이고 “햇빛”은 빛의 실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달빛”을 버리고 “햇빛”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넷째 날에 “작은 광명”인 “달빛”도 지으시고 “큰 광명”인 “햇빛”도 지으셨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작은 광명”으로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큰 광명”으로 도망가야 하는 때가 곧 큰 환난의 “영적 교리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은 아무 성경적 근거도 없이 큰 환난 날을 일컬어 “7년 대 환란”이라고 정체불명의 소리를 발한 뒤, 오늘날 기독교인들인 자기들은 이 환난과 관계없이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로 안전하게 “휴거”를 하고 나면, 그 후에 불신자들은 지구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이 큰 환난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습니다. 예수님은 큰 환난 때 우리 육신의 몸을 하늘로 “휴거”하라고 하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는 도망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의 도망입니다. 성경 신구약은 문자적 육적 기록이지만 그것은 모두 영적으로 “비유 비사”이고 그 속에 내재된 숨은 뜻은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영적으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겨울은 무엇이고 안식일은 무엇이기에 그것을 경계하셨는가?  겨울은 춥습니다. 즉 겨울은 우리 마음이 춥고 믿음이 냉담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겨울은 우리 마음이 냉담해져서 믿음이 떠나간 상태를 말합니다. 신앙심이 냉담해지는 추운 마음의 겨울이면 영적으로 교리 전쟁의 지각변동을 전혀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따라서 “빛”으로 도망할 열정도 없이 싸늘한 사망에 주저앉아 있는 공황 상태가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믿음의 겨울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이란 편히 쉬는 개념입니다. 즉 도망해야 할 때의 “안식일”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평안을 외치며 안주하는 무위도식과 한량의 개념입니다. 급히 도망해야 할 때는 몸을 재빠르게 움직여서 살 궁리를 해야 하는데 편안히 쉬고 있다면 그것은 죽음과 입 맞추는 일이므로 우리 마음과 믿음의 나태한 신앙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사망”의 세상에서 “생명”의 세상으로 도망해야 하는 큰 환난 날에는, 즉 “처음 하늘 처음 땅”에서 “새 하늘 새 땅”으로 도망해야 하는 큰 환난 날에는, “처음 성전 처음 예루살렘”에서 “새 성전 새 예루살렘”으로 도망해야 하는 큰 환난 날에는, 우리 마음과 정신과 믿음을 다급하게 가동해야지 우리 마음과 믿음이 북풍한설 겨울처럼 싸늘하게 굳어 있으면 안 되고 우리 마음과 정신이 춘풍 호시절 “안식일”처럼 이완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