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일창조의...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과정 ※

제라늄A 2022. 2. 23. 19:31

고전 11:1,3~12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저주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제거하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저주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안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깍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럼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은 “비유 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한 글자도 “육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는 “여자 위에 남자, 남자 위에, 그리스도, 그리스도 위에, 하나님” 이와 같이 단계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 문장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문제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천차만별 그 영적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내 몸 안에 얼마나 깨달았는지 여하에 따라 성장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지 못한 인간의 존재를 “물고기, 짐승” 또는 “가축”으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가 “6”단계로 되어있는데 “물고기, 기는 짐승, 걷는 짐승, 가축”을 지으시고 “여자와 남자”를 지으신 것을 단계적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이러한 존재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미치지 못함으로 세상의 어둠의 존재를 “비유”로 “짐승이나 물고기”로 “비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고기, 짐승”들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성경에 여러 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욥기 12:7-8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지 못한 인간의 존재들을 “비유”로 “짐승이나 물고기”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짐승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본 것은 실제의 짐승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 있는 고넬료 가정을 하나님께서는 어둠의 존재를 각종 짐승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계 창조를 “비유”로 들어서 어둠의 존재들인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주시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창조를 말씀하신 기록이 “천지 창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는 모두 인간인 어둠의 존재인 “물고기, 짐승” 차원의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의 발전사인 것입니다. 첫째 날보다 둘째 날이, 둘째 셋째 넷째 날이, 더욱 밝은 빛으로 점진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영적인 인간으로의 창조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보다 여섯째 날이 가장 완성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마지막에 인간이 “여자”의 영적 상태와 “남자”의 영적 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창조됩니다. 때문에 여섯째 날 맨 끝에 하나님을 닮은 완성된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못 미치므로 “물고기나 짐승”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각기 자신의 띠(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모두 짐승의 띠를 가지고 태어나며 인간의 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인간들의 외형은 모두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인간 내면의 상태는 짐승들과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인간들은 짐승의 상태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자”의 영적 상태가 된다는 것도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으로 거듭났다 하여도 하나님의 아들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가 되려면 “짐승”의 영적 상태에서 다시 인간계인 “여자”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야 하고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 말씀같이 “여자 위에 남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의 완성이며 인간이 “6번”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종 짐승들은 점진적으로 “6단계”로 성장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나는 과정을 순서를 나열한다면 “물고기”의 영적 상태에 있는 자는 “기는 짐승”으로 거듭나야 하고 “기는 짐승”은 “걷는 짐승”으로 거듭나야 하고 “걷는 짐승”에서는 “가축”(양)으로 거듭나야 되고 “가축”은 “여자”로 다음은 “남자”까지 이렇게 여섯 단계를 성장해야 하는 것이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이며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최고의 위치를 정해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 맨 끝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동일한 인간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수컷과 암컷”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씨”를 소유한 “수컷”의 “씨”를 받아야 하는 “암컷”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수컷과 암컷”은 모두 동일한 사람 같지만 “남자”는 “씨”를 가지고 열매를 맺는 나무이며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야 할 밭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인간은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예수”로부터 “씨”를 받아서 다시 거듭나야 인간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영적 존재를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도달했다는 뜻은(엡4:13) “여자”의 영적 수준에 있는 인간이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의 영적 상태까지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이때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남자”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야 할 신분입니다.  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중매함이로다.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신부 단장을 하면 하늘의 신랑이 이 땅의 신부에게 혼인하러 오는 것입니다.

창 2:24 남자가 부모(하나님)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찌라,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자는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인간과 혼인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십니다.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 “예수”를 낳았다는 것은 즉 인간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목욕하고 아름답게 단장한 “밧세바”가 다윗과 동침함으로 솔로몬을 낳은 것은 인간인 정결한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잉태하여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은 인간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이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 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자”로 낳음을 받은 자는 “구원자 예수”가 되며 이 예수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서 이웃을 살려야 “그리스도”로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진리가 성경에는 깊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 받은 자가 이웃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어 구원시키는 그런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 22:37~40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이니라 다시 말해 성경 전체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첫째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예수)이 되는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이웃에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또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본 문장으로 돌아가서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저주하는 것요”  그 머리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한 것인데 더 이상은 아무것도 쓰고 예언하는 것도 그 머리를 욕되게 한다는 말씀이고 “또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이 말씀은 “여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인간은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자에게 “씨”를 받아야(잉태)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의 말씀을 받는 입장이므로 “여자”(인간)는 “남자”(예수)가 주는 말씀은 꼭 받아야 즉 그 말씀으로 잉태해야 “남자”의 영적 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또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럼이 되거든 쓸 지니라,   이 말씀은 “씨”가 아닌 말씀은 버리고 “씨”가 있는 진리의 말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이 말씀과 같이 “여자”(인간)는 “남자”(예수)의 주는 말씀으로 잉태하여 “남자”의 영적 상태로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이렇게 “안팎”(계5:1)으로 “비유와 비사”로 감춰있기 때문에 하루속히 영성이 성장해서 장성한 자로 성장해서 거듭나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하면 하나님이 내 몸 안에서 “안식”하시기 때문에 천국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 “비유와 비사”로 깊이 감추어 있는 “비밀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아무나 읽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 2:9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함이니라,    사실 이러한 말씀들은 기독교인들은 생소한 말씀이라 읽기조차도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잡는다는 말씀과 같이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것”이지 믿기만 해서 천국이 얻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눈이 열린 자가 읽을 수가 있으며 눈이 열리지 않으면 문자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너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새 계명”이며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