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죽음,부활)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제라늄A 2022. 4. 24. 18:08

고전 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상기의 말씀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람”이며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놀랍게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모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며  살리는 “사람”은 오늘날 “실존 예수”라는 뜻입니다. 죽은 나무의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산 나무에 가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이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성경 지식이 많아도 신학교 목사는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요 그의 말씀 또한 “죽은 자”의 말씀이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 붙어 있는 자는 부활의 생명이 없다는 자연의 이치요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배우지 못하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산자”요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에게 붙어있는 자는 “부활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성경 속에 많은 선지자나 사도들이 대부분 글을 배우지 않은 무식한 자라는 것을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글을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 7:15-16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성경”을 통해보는 영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인데 옛날에는 한국에서는 어부들을 무식한 뱃놈들이라고 취급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풍조의 따라서 유식한 박사 학위를 소유한 목사를 선호하는데 성경 말씀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잘 주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없고 생명이 없는 자인 “죽은 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씨”라고 “비유”합니다. 왜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씨”라는 것은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 원리와 같이 “말씀”이라는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낳는 것이 “씨”의 본질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와 같이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가 있는 말씀과 생명이 없는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같이 “씨”가 있는 말씀과 “씨”가 없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안에 구약과 신약에 두 가지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렘 31: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하나님의 밭에 좋은 씨와 가라 지 이렇게 두 가지 씨를 뿌린 것입니다(마13:24) 이와 같이 생명이 있는 “씨”와 생명이 없는 “씨”가 기독교에 뿌려진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박사가 난무하고 목사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이 시대에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기독교인들은 특별히 주위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영성이 어린 자는 분별을 못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산자의 “씨”가 있는 말씀과 죽은 자의 “씨”가 없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산자”의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죽은 자”의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의 목사가 “죽은 자”라면 교회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충성 봉사 헌신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허공을 치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산자”라면 “죽은 자”들을 살리고 구원시키고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2:24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씨”는 열매와 똑같은 것이며 종족을 이어가는 원리와 같이 “산자”에서 낳음을 받은 자를 만나야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며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그 열매와 성분이 똑같기 때문에 종족을 이어가면서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씨”는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성경적 “영”의 죽음과 “육”의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찾는 자가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바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입니다.  마 22:32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죽은 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몸이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영)이 없는 자들을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호흡이 멎어 육체가 “죽은 자”나,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영)이 없는 자를 모두 “죽은 자”로 보십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이미 영생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인간의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으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둘째 사망”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려고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구원자로 오신 “실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을 하며 결국은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실존 예수”를 알지도 못하며 설상 계신다 해도 영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현제 “죽은 자”들은 현제 살아계신 “실존 예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요 5:25-2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아있는 자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을 영접하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은 예수를 믿고 “육체”가 죽어 무덤 속에 있는 송장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 종교이며 “사도신경 고백의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덤”이란 육체는 살아있으나 생명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비유”로 “무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무덤”이 “실존 예수”의 목소리(음성)를 들으면 “산자로 부활” 한다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죽은 몸(송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오늘날 어디에 있는가?  바로 예수의 말씀의 “씨”로 종족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자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직접 들음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실존 예수”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예수의 “음성”(목소리)을 듣고 살아나는 것이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의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현재 실존으로 살아있는 자의 “음성”이지 과거에 있던 예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와 오늘날 기독교의 “실존 예수”는 사람의 모양새는 다르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의 “씨”가 똑같으므로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현제 살아계신 “실존 예수”“음성”을 들어야 자신의 “죽은 자”의 생명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현제 육체로 살아있는 자 입에서 직접 나오는 “음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직접 듣고 영접한 자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성경”은 예수님은 그전에도 계셨고 오늘날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오실 예수라고 분명히 계시록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계1:8) 예수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으로 계셔야만 “구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시대에만 계시다면 그 전세대나 후세대는 누가 구원을 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의 계신 “실존예수”“음성”을 듣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