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창세부터 감춰진 것을 깨닫는 자“영생”한다.

제라늄A 2022. 12. 4. 18:56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封)하였더라,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을 다루는 뜻깊은 비밀이 창세부터 안팎으로 “비유”로 감 추인 것을 드러내신다고 했던 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창세기의 깊은 뜻을 먼저 이해를 해야 성경 전체를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부터 감추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궁창 아랫물과 궁창 윗물”을 만드시고 아래 물과 위의 물로 나누셨는데 이 “궁창 아랫물”은 “어둠”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감추시고 이 “어둠”의 말씀인 “비유”를 깨달으면 진리의 말씀이 되며 “궁창 위에 물”이 되며 “빛”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러므로 “궁창 아랫물”은 “비유”인 “어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로 기록한 “어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영적인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자는 죽지 않는다고 도마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복음 1절,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이 말씀들의 영적인 뜻을 이해하고 깨닫는 자는 죽지 않을 것이다.   “도마복음”은 1절~114절 까지 “비유”로 완벽하게 기록된 말씀이라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성경한절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 신학자들의 의해서 이미 신약성경에서 “도마복음”은 삭제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추신 본문의 안팎으로 “비유”로 기록된 창세부터 감추신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자"는 죽지 않고 “구원과 영생”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창세부터 감추신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살고 죽는 것”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1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아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마13:44) 얼마나 귀중한 보화이기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사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밭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고 "계시"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안팎으로 기록된 “비유”의 말씀을 절대로 "깨달을 수"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부터 “안팎”으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계시를 받아 기록하면서 이 글을 열어 볼 사람이 없어서 크게 울었다고 하는데 다윗의 뿌리인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계5:1-5) 왜냐하면 예수는 어느 한 시대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으로 예수”가 계시기 때문에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실존으로 계신 예수”가 없다면 “안팎”으로 기록된 “비유”의 말씀을 열어 볼 수가 없어 구원이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안팎”으로 “비유”로 봉했을까?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을 다루는 뜻깊은 비밀이 창세부터 “안팎”으로 “비유”로 깊이 감 추인 것을 드러내신다고 했던 대로, 창세기의 깊은 뜻을 먼저 이해를 해야 “비유”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는 사탄의 무리를 잡기 위한 계략으로 “비유”로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실존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안팎”으로 기록한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상기의 말씀같이 오늘날 “실존 예수”를 이단이라고 대적하는 자들은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상관하지 않고   롬 1: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잠 11:9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알고 있지만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생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지식”이 함께 성장할 때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오직 “믿음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며 “말씀”(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말씀”을 알라고 하십니다.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 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말씀)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 6:6-7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제사보다 하나님(말씀)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같이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안팎”으로 기록한 성경 “말씀”을 아는 자가 곧 영생을 받는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물으니깐  마 13:10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유대인)에게는 아니 되었다고”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팎”으로 기록한 “비유”로 기록된 비밀의 말씀”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성경을 가르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계시"를 받기 전에는 유대교 최고 학부를 나온 성경학자로서 율법의 행위로는 전혀 흠이 없는 완벽 한자로 성경을 가르치는 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로부터 "계시"를 받은 후에는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유대교 “신학배경을 배설물로 버렸다고 고백(빌3:8)하십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로 기록된 "계시 복음"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학자들이 만든 “신학은 가치가 없는 배설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렇게 깨달은 말씀은 "계시"가 열릴 때 나타나는 말씀 속에 감추어진 비밀들을 모두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 11:27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영의 세계”를 보는 자는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를 말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는 “영생”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계시"를 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안팎”으로 기록한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계시"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의 비밀의 말씀을 모두 알 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성경을 보는 “영안이 열렸다는 말이며 "영안"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자가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예수)인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늘의 세계를 보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예수)들이며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이 아니라,“영생을 얻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기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