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21-23 “예수께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상기의 말씀은 “실존 예수”께서 우물가에서 물 길러온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실존 예수”께 예배할 곳이 이 “산”이냐 “예루살렘”이냐고 묻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네가 예배할 때가 “곧 이때”라 하신 것입니다.“이때”라는 것은 바로 너 앞에 있는 나 “실존 예수”에게 예배하는 것이 “이때”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묻고 있는 이 “산”이냐 “예루살렘”은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실존 예수”와 같은 영적 존재를 묻고 있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자가 묻지도 않는 “때”까지를 말씀하시면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라고 하시고 네가 예배할 때는 “곧 이 때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사마리아 여인 앞에 “실존 예수”가 계신 지금이 나를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관심사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실존 예수”가 계실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대상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계신 “실존 예수”가 예배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님”을 영접해야하고 오늘날은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죽였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깊이 생각을 해야 바른 해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제 살아계신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사마리아 여인과 “실존 예수님”의 대화에 바로 “이때”가 영접해야 한다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영접해야 하는 예수는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아니라 현제 기독교인들 앞에 있는 필자가 매일같이 외치는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으며 그분에게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제 “실존 예수님”에게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하는 기독교인들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진리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양”을 말하며 “양”은 “예수”를 상징하며 “기름”은 성령(말씀)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양과 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존 예수님”께서는 “진정(양)과 신령”(기름)으로 예배하는 자를 오늘날도 찾고 계십니다.
오늘날 실존으로 계신 “예수님”은 눈으로 보고 실제 살아있는 음성(목소리)을 듣고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는 현재 기독교인들 앞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시는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이미 영생할 수 없는 이미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마8:22) 성경에서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를 모두 “죽은 자”라 하십니다. 상기의 말씀은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음성”이라는 것은 현제 “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려면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들을 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실존 예수님”은 항상 실존으로 계시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같이 “실존 예수”는 전에도 계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전 세대를 말하며 이제도 계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세대를 말하며 장차에도 계신 다는 것은 우리 후세대에도 항상 실존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존 예수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으로 계실 때만이 구원이 성립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목회자들의 “신학”에서 받은 예수님의 대한 고정관념을 하루속히 지워버리고 오늘날의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찾아 그 말씀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인 “실존 예수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마태복음 25:40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했고 너희는 손님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라 부지중에 천사가 왔다 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사야 53장에서는 예수는 고운 모양도 없고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어 사람들이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 한다면 오늘날에 누가 그의 말을 듣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란 사람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 유대인들을 구원하려 “실존 예수”가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모두 “실존 예수”를 배척했지만 “실존 예수”를 영접한 “12제자들”만 구원받은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보잘것없고 천한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난 자만이 그 말씀을 알자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예수)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말씀)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이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오늘날 한국인으로 “실존 예수”로 오셔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현제 계신 “실존 예수”가 앞에 계셔도 그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유대인들과 똑같이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실존 예수님”을 찾고 두드리는 자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 예수님”은 기독교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시고 기독교인들 주위에 항상 맴돌고 있습니다. “실존 예수님”은 유대교 때나 오늘날 기독교에도 들어가지 못하시고 발붙일 곳이 없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 하나 없다고”(마8:20) 오늘날도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필자 새사람”은 수년 동안 “실존 예수”를 저의 블로그를 통해 매일같이 글로 아무리 외쳐 봐도 기독교인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영접하신 분들이 현제 몇 명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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