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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세인들의 외식은 더러운 행위다.

제라늄A 2023. 3. 2. 20:13

23:27 바리새인(기독교)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종교인(기독교)들의 외식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6장 산상수훈에서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서 가르치셨는데, 그 핵심은 결국 외식에 대한 경계입니다. 구제기도 금식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렇지만 당시 2000년 전 유대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6:2 너희는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5 또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오늘날도 교회에서 구제 사업을 하지 않는 교회가 없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없으며 금식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예수는 구제 기도 금식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義)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인데, 구제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 금식하는 것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거리가 되면 그것은 자기 의로 한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나 말은 이미 사람들로부터 자기 상급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게 되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예수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구제할 때에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며 기도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골방(마음속 깊이)에 들어가서 하고 금식할 때는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깨끗한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

6:3-4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만약 구제를 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자신이 없으면 구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한 말 또 하고 중어부언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고 길게 기도한다고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시므로  우리의 구할 것은 다른 데 있다는 말씀이기도 한데 그래서  예수는 너희들(제자)은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너희라는 문구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예배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을 뜻도 모르면서 무슨 염불 외우듯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말씀이 있는데  과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죄지은 자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주기도문의 뜻을 분명히 알고 해야지 모르고 한다면 하나님께 죄를 매주일 예배 때마다 범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외식과 가식으로 자기 의(義)를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교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 것처럼 기독교인들을 호도하고 교인들에게 그 본을 보이고 있고 교인들은 그들이 한대로 따라 하고 있으니 어찌 더럽지 아니한가? 

유대교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목사) 그리고 그들의 지도를 받은 백성들은  율법의 (義)로써 하나님의 (義)를 저버리고 자기 보물을 자기에게 쌓아두는 자기 만 높이고 있으니 이 어찌 하나님이 그 높아진 바벨탑 같은 교회를 사랑하시겠는가?   마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이 보물으로 알고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드리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라고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온전한 십일조으로 착각을 하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교인들에 호통을 치는 것도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보물이나 온전한 십일조는 진리의 말씀(양식)을 자기 몸 안(성전)에 있는 하늘인 마음에 쌓아 두라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의 양식으로 죽어가는 이웃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그 말씀의 양식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같이  하나님의 집인 창고(몸)에 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의 양식을 반드시 자신의 몸 된 성전 안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수1:11)

그러므로 참 신앙인이라면 날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신앙인들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듭난 자 안에는 말씀의 지식이 있어야 주기도문의 말씀같이 죄지은 자를 사해줄 수 있는 것 같이 이웃의 죽은 영혼들의 죄를 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물을 마음에 쌓아 두기 위한 모든 믿는 자들의 하나님께 향한 삶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제일 먼저 행해야 할 것은 사랑(아가페)의 덕목입니다. 용서함이 없는 믿음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나의 용서함이 먼저 있고 난 후에야 예수 십자가의 용서가 나에게 적용된다는 사실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란 조건이 없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아가페)하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