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큰 물고기 153 마리의 영적의미,

제라늄A 2023. 6. 13. 17:11

요 21:7-11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153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내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신 후“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어 말씀까지 하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시기 전의 예수님의 모습과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경기록을 보겠습니다.  요 20:15 예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지내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데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그 모습이 십자가 전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부활하신 것을 보고 동산지기로 알고 혹시 당신이 예수의 시체를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장사 지낸 지 3일 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기의 말씀은 다른 사람으로 예수님이 부활 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바닷가에 가셔서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 앞에도 나타나셨는데도 제자들도 예수님을 알아본 자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 21:4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바닷가에 제자들 앞에도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도 예수님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도 예수님인 줄 몰랐을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을 읽어보면서도 부활한 예수님이 다른 사람인데도 부활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나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몰라본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하신 이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마리아나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분명히 예수님께서 부활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했기 때문에 마리아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한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반드시 알아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냥 예수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한 예수를 믿는 신앙은 우상예수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그중에서도 베드로가 먼저 주의 음성을 듣고 깨닫고 주시라 하니  베드로가 겉옷을 벗고 있다가 놀라서 허겁지겁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든 그물을 끌고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모두 비유비사로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한 글자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한 예수님께서 준비된 생선이나 을 드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드셔야 할 양식은 우리가 먹는 생선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 잡은 물고기 생선은 생명의 길을 따라가는 기독교인들의 물고기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이 먹어야 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의 영적상태인 물고기들도 먹어야 할 양식은 예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물고기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달려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 찬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3마리의 숫자도 영적인 의미가 깊이 숨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53이라는 숫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양육한 기독교인들의 영적상태인 물고기들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애급, 광야, 가나안 3일 길을 통과한 완성된 자들을 오순절 날 다락방에 120 문도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30이라는 숫자는 예수님의 나이 30세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도 애급, 광야, 가나안 3일 길을 완성한 숫자를 30세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합계가 120+30+3=153입니다. 이같이 숫자에도 깊은 영적인 뜻이 깊이 감춰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안팎(계5:1)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거듭나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독교목회자들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로 읽고 이해하는 것은 비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성경 모두 비유로 감춰진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오병이어 기적으로 5000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넘친 사건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깨닫는 자가 구원과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