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자신을 발견한자 세상미련을 두지 않는다.

제라늄A 2023. 7. 14. 16:27

                자신을 발견한자 세상미련을 두지 않는다.                          

도마복음 80절,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세상(인생)을 알게 된 자는 육체(자신)를 발견한 자이며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자는 어느 누구나 세상의 가치(소망)를 두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나 세상을 알게 된 자는 자신을 발견한 자이며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자는 세상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은 어느 누구나 세상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세상에 “소망과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냥 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창1:26) 사람은 “영생하는 존재로 만드셨으나 형상만 사람이지만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여 하나님과 같이 만들어 “영생”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세상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소망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은 물론 자신은 어디서 왔는지 어떠한 존재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사람이 허무하게 이 세상을 살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은 이 세상이 안개와 같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 세상에 소망이나 가치를 두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의 본능인 욕심에 사로잡혀 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다가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은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의 본능인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사망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려면 사람은 “육과 혼”의 존재로 어둠”이므로 영”의 존재인 을 받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존재는 이 되신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예수”의 가르침을 받아야 “자신의 존재”를 밝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둠” 이 을 받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물론 사람이 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인생(人生)의 의미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인생(人生)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짐승들과 같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속에서 서로 물고 뜯기며 살다가 허무하게 인생(人生)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허무하게 살다가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할 때 하는 말은 인생(人生)이 무상(無常) 하다 하며 혹은 “일장춘몽같이 허무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똑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는 영생(永生)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사람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지 수천 년이 흘렀어도 사람은 여전히 죽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의 영생이 더디기만 하단 말인가?  그 이유는 영생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하나님(말씀)과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인데, 하나님과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하나님과 예수”를 모르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실체가 하나님(요1:1) 이신데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영생을 못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다고 하셨는데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시고 사람 몸 안에 “안식하시기 위하여 “성전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전된 사람 몸 안에서 “안식하시기 위해서 성경을 사람에게 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짓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야 사람 몸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목적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창조해 오셨는가를 올바로 알아야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은 전혀 모르고 사람이 온 곳은 어미의 태속이며 가는 곳은 한 평 남짓한 무덤 속이나 화장터에서 재 가루로 보관되는 납골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삶이 진정 인생(人生)의 전부라면 사람은 정말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나 물거품과 같이 무상(無常)하고 무가치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람이 온 곳은 어미의 태속이 아니며 가는 곳도 무덤 속이나 납골당이 아니며 “인생처럼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면 하나님과 같은 생명이 되어 영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알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준비한 사람은 “인생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가치와 무가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무상(無常)하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有常)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젊어서부터 일찍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았다면 어느 누구나 현생”의 모든 삶을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헌신을 다해 투자할 것이며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보시는 기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하루속히 진리를 찾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상(有常)한 삶이라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그 창조의 공정을 알아야 하는데 오직 성경만이 인류의 영생을 책임지고 보장하고 약속해 주는 생명책이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영생(永生)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리는 오늘날 실존예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