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가나안에서 예수님의 두 번째 표적

제라늄A 2023. 8. 21. 19:21

요 4:43-5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거 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 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가로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번째 표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적을 보여주시고 두 번째 표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된 것을 고쳐주신 표적”입니다. 상기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시고 난 후에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향해가면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친히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향사람인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명절 중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행하신 일은 성전에서 “소, 양, 비둘기” 파는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모두 내어 쫓은 일입니다(요2:14-16) 이렇게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나사렛)에서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들을 직접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실 때는 오천 명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 적도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특별한 표적이나 이상한 이적 같은 것을 행하면 교인들이 벌떼와 같이 몰려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표적은 오직 죽은 영혼을 살리는 “요나의 표적 하나뿐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별도로 기록한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의 가나에 이르시니 “가나혼인잔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상기의 본문 말씀은 그곳에 왕의 신하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 찾아가서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고 간청하는데 이는 그의 아들이 거의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믿었으면 아들이 병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속히 내려와서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상하게 왕의 신하의 아들은 보지도 못했고 가시지도 않으시고 그 신하에게 말하기를 “가라 네 아들이 살아났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밀로 숨겨진 말씀이므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하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아들에게 가는 길에 신하의 종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이가 살아났다 하여 그 낫기를 시작한 때를 물어보니 어제 “제칠시”에 열기가 떨어져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제칠시”는 바로 예수께서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신 그 시간입니다. 그러면 “제칠시란 무슨 뜻인가 “제칠시”라는 뜻은 “제 칠일 안식일”과 같은 뜻으로 “가나안의 존재를 상징하는 말이며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것을 알고 자기와 온 집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안에 가기 전에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삼일”되던 날에 “가나안에 가는 중에 신하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된 소식을 들으시면서 그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났다고 하신 것은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삼일”에 갔다는 뜻은 “애급, 광야, 가나안”“3일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요 11장에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이틀을 더 기다렸다가 3일되는 날과 똑 같은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 속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엄청남 비밀이 숨겨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가 “비유비사”로 감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가 완전히 죽기를 이틀을 더 기다렸다는 것은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부활하려면 애급, 광야, 가나안, 3일이 되어야 안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완전히 부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나혼인잔치”“이틀”이지나 “사흘”되던 날 “가나혼인잔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왕의 신하의 아들도 예수님이 “이틀”이 지난 후 라고 하신 것은 곧 “사흘”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가는 중에 거의 죽게 된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말씀과 그 시간이 “칠 시”라는 말은 왕의 신하의 아들이 “거듭”(부활) 나는 시점을 “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과 같이 신하의 아들도 죽은 지 “이틀”을 유하고 난 후 “사흘”만에 완전히 죽고 부활하여 예수님이 살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오묘한 말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유”로 숨겨진 말씀을 깨닫는 자가 “구원”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짓는다는 말도 모두가 감춰진 비밀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결국 왕의 신하와 그의 가족들은 예수님께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표적을 보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왕의 신하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경을 통해서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표적과 이적을 보고 예수를 믿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심 많은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행하신 일은 유대에서 갈릴리 가나로 오신 후 “두 번째 행하신 표적”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마태복음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막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