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성경 출애굽기는 천국으로 가는 길(장편)

제라늄A 2023. 8. 23. 06:49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말씀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출애굽기의 실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성경 출애굽기 말씀을 깨닫게 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탈출)을 해서 가나안에 도착하는 과정을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말씀을 드리니 출애굽기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그대로 행하시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의 존재들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무리 지어 살고 있는 각종 물고기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나 자동차에 물고기 표시를 하고 다니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존재가 영적으로 물고기의 영적상태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닷가의 모래알로 비유하며 제사장(목사)들은 하늘의 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즉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게 하여 주시겠다(22:17)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다의 물고기나 모래는 창조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비유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바다는 세상에서 종교 생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종교 생활하는 곳을 애급이라 세상을 말하며 바닷가의 모래알은 기독교인들을 비유하며 들은 애급의 목자, 즉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들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애급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과 신학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복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나 창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자신들이 바닷가의 모래알이나 물고기 와 같은 미물과 같은 영적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창조받아야 할 세상의 애굽의 존재들은 모두 바닷가의 모래알이나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학 교리에 의해서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이 벌레나 구더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2:5-6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25:5-6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구더기인 인생이랴 상기의 말씀은 동방의 의인이라는 과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고백입니다. 은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나서 사람은 벌레와 같은 구더기 인생이라 고백을 하고 있으며 다윗 왕도 자신은 벌레와 같은 존재이며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 많고 허물 많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존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이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동방의 의인이라는 과 이스라엘 왕 다윗이 자신은 벌레라는 고백을 들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라는 애급의 신학교리신앙과 기복신앙에 머물러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다의 물고기의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벌레나 물고기의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구원의 길이 열려 말씀의 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지금 자신이 짐승이나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이러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서 12장 7절 이하의 말씀에도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각종 짐승과 물고기의 존재라고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7-8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상기의 말씀이 사람의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말을 하며 설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기의 말씀은 욥이 나아만 사람 소발에게 한 말입니다. 욥은 소발에게 모든 짐승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너를 가르칠 것이고 공중의 에게 물으면 그것들이 네게 고할 것이며 땅에게 말하라 그러면 땅이 네게 가르칠 것이며 또한 바다의 물고기도 네가 묻는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욥이 소발에게 물으라는 이나 짐승 그리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나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사람들의 존재를 비유로 영적인 상태에 따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이나 짐승 그리고 나 물고기들은 사람을 가르치거나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각종 짐승이나 물고기 그리고 땅이나 하늘들은 모두 사람의 영적인 존재들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종교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인 물고기가 애급의 신학 교리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바다와 육지를 오고 가며 기어 다닐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거북이나 물개 혹은 바다와 육지를 기어 다니는 기는 짐승의 존재들을 말하는데 이는 세상이라는 애급의 신학교리 신앙과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아 나온 자들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회에서 신학 교리를 중심으로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자들로 애급교회의 신학 교리와 기복신앙에는 진리도 없고 참 목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세상기독교회에서 출애굽(탈출)해서 나온 자들입니다.

다음은 둘째 날의 존재들은 오늘날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혹은 참 목자라는 자를 찾아 구주로 믿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애급의 세상기독교인들에게 신학 교리가 다르고 말씀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배척을 당하며 힘든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신들만이 참 목자를 따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을 갈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기 교회목사가 주는 말씀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으며 그 외의 어떤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신앙이 성장하여 눈이 밝아지면 자신이 믿고 있는 목사나 그 목사가 주는 말씀에도 진리나 생명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셋째 날의 존재들은 기는 짐승에서 벗어나 육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각종 걷는 짐승들을 말하는데 이는 모세를 따라 애급에서 광야로 출애굽(탈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존재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에서 먹든 가감된 말씀 유교 병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율법)를 먹으며 하나님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먹던 유교 병은 세상의 풍부한 재료와 각종 누룩을 섞어 만들어 보기에 좋고 맛도 있지만 무교병은 아무것도 첨가된 것이 없는 순수한 자연의 맛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고 맛도 없어 먹기가 힘듭니다. 또한 애급에는 화려하게 꾸민 산당(예배당)들이 있고 그에 따른 (목사)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광야에는 오직 성막으로 된 이동식 성전과 하나님의 종 모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애급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광야에 나오니 모두 죄인이 되어 종과 피조물의 신분으로 율법에 따라 힘들고 좁고 협잡한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에 머물던 세상인 애급의 기독교생활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에게 불 뱀과 전갈을 보내어 모두 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장대에 매달은 놋뱀을 바라본 자들은 구원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넷째 날의 존재들은 거짓된 종교에서 탈출해서 세상 애급에서 받았던 거짓된 것을 광야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서 징계와 연단을 받으며 애급의 거짓된 육적존재가 죽고 혼적존재로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나 말과 같이 주인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징계와 율법에 따라 모진 훈련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종들에게는 오직 예만 있고 아니요, 왜요라는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묵묵히 영성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율법을 통해서 온갖 시험과 연단을 참으며 욕심의 근원인 자아(自我) 즉 자신의 혼적존재를 죽이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애굽의 육적존재와 광야의 혼적존재가 모두 죽어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적존재와 혼적존재가 죽지 않으면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고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면 영적존재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통한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애굽의 육적존재와 광야의 혼적존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조금씩 변해 가면 들짐승의 영적상태인 걷는 짐승이 되어 온순한 축생()의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 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자들의 영적상태가 축생들의 영적상태인 의 상태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양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걷는 짐승들의 영적상태는 본래 강퍅하지만 하나님의 법과 그 형벌이 두렵기 때문에 율법에 절대복종하는 자들이며 축생()들은 마음이 온유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며 목자를 순순히 따르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애급과 광야 사이에 홍해바다가 있고 광야와 가나안 사이에 요단강이 있는 것은 애굽의 육적존재가 홍해바다에서 죽지 않으면 광야에 나올 수 없고 광야의 혼적존재가 요단강에서 죽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비사로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애급의 육적존재 가 홍해바다에서 죽는 죽음을 육적할례라 말하며, 광야의 존재가 요단강에서 죽는 죽음을 혼적세례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외 없이 마리아의 몸에서 갓난아기로 태어나신 지 8일 만에 요셉과 마리아가 할례를 받게 하고 30가 되었을 때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후 제자들에게 나는 받을 세례가 또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의 신분에서 그리스도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세 번째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의 신분에서 그리스도의 신분으로 거듭(부활) 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세례를 단 한번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만  성경은 육적죽음 할례와 혼적죽음 세례와 영적죽음 세례를 받아야 이렇게 3(3)을 받아야 예수의 신분에서 그리스도의 신분으거듭(부활) 나게 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광야의 걷는 짐승들이 율법에 대한 시험과 연단을 모두 마치고 축생(양)으로 거듭나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를 받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넷째 날의 존재는 걷는 짐승이 이제는 축생(양)으로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축생들인 양들인 제자들의 영적상태가 되어야 바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로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산 떡, 즉 생명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생(양)들이 예수님을 만나려면 먼저 요단강가에 있는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요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세례요한이 주는 세례는 모든 죄를 깨끗이 씻고 육과 혼이 죽어서 자신의 자아 무아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다섯째 날의 존재는 광야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 정결케 된 순수한 축생(양)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나안에 있는 축생(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직접 듣고 따르며 꼴을 받아먹고 따르지만 광야에 있는 아직 축생으로 거듭나지 못한 걷는 짐승들은 목자를 보면 두려워 도망을 갑니다. 이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짐승의 탈을 벗고 축생()으로 거듭난 들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배척을 하고 핍박을 하였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축생들의 영적상태인 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따른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로 축생의 영적상태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이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히브리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3:8-14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이르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상기에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애굽에 머물고 있는 물고기들이나 광야에서 시험과 연단을 받고 있는 기는 짐승이나 걷는 짐승들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온 예수님의 제자들의 영적상태인 축생(양)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은 애급의 오늘날 기독교 신학 교리신앙과 아직 광야에서 율법으로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가나안에 들어와 있는 축생()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애굽에 있는 물고기나 광야의 짐승들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은 아직 목자의 음성인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보면 이단이라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칭 의인이라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애급에서 벗어나 광야의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 중에도 악한 자들의 미혹을 받아 마음이 다시 강퍅하게 되어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들은 다른 영다른 복음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거짓목자와 적그리스도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축생()들을 미혹하여 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축생()들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은 악한 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날마다 생명의 말씀을 먹게 되어 여섯째 날의 여자의 영적상태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여섯째 날의 존재는 축생()이 사람으로 거듭나서 여자의 영적상태가 된 자들은 그 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 때문에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는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예수로부터 말씀의 씨(생명)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렇게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는 남자를 받아야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이 찾으시는 신부는 바다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물고기의 영적상태인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러 과정을 통해서 여자의 영적상태인 동정녀 마리아와 같이 신부단장이 된 정결한 처녀에게 말씀의 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씀하시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만들어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신다(고후11:2)는 처녀가 바로 여섯째 날로 거듭난 영적인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가 된 동정녀 마리아 같은 여자의 영적상태가 되어야 그 몸 안에 들어가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낳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한 단 계식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이라는 바다의 물고기의 영적상태에서 출 애급 해서 광야로 나와 기는 짐승의 영적상태로 거듭나고 기는 짐승에서 거듭나면 걷는 짐승이 되고 걷는 짐승이 거듭나면 축생(양)이 되고 또 축생에서 여자의 영적상태를 거듭나고 또 여자(인간)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고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가 죽고 부활하면 예수의 영적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영적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6번 거듭나는 것이 창세기 6일 천지 창조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씨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낳음을 받게 되면 씨 가진 남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밖에 계신 예수님도 예외 없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1:1 에는 예수님의 탄생의 족보가 기록한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낳고, 낳고 해서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까지 14대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까지 14대 모두 42대 만에 태어나셨다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2라는 것은 42을 말하며 년 수로 3년 반이며 날수로는 1.260일이요 한때 두 때 반 때(계12:14)만에 장성한 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거듭나게 해서 12 아들들을 키워 복음의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낳음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예수님과 같이 죽은 영혼들을 살려서 디모데와 디도 오네시모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러한 여섯째 날의 존재들이 바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일곱째 날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일까요?  다음은 일곱째 날의 존재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열매를 맺은 후 창조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일곱째 날의 존재를 말합니다. 즉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새 계명인 위로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나야 하는 과정이고, 다음은 예수로 거듭난 자는 반드시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살려서 자신의 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은 자를 말합니다.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 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인간의 윤리 도덕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야 말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13 믿음소망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롬 13;8 사랑(구원)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구원)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다 이룬 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율법이 있는데 이웃을 사랑 즉 이웃을 구원함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롬13:10) 그러나 그 사랑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안에는 그런 사랑(아가페)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 안에만 있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는 동일한 생명이지만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 전의 상태이며 그리스도는 십자가 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한 다음에 12제자들을 3년 반 동안 자신의 살과 피를 먹여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 제자들 안에 안식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7에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은 예수님 몸 안에서 안식하고 계시고 예수그리스도는 부활된 제자들 몸 안에서 안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 4 계명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교회)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받아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아들들은 반드시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한 후 그리스도의 장성한 자의 분량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를 가지고 열매를 맺은 후 창조하시는 일을 모두 마치고 일곱째 날로 거듭난 자 몸 안에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계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을 통해서 아버지는 농부이며 나는 포도나무이며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5:1-4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이며 내 아버지는 농부이며 제자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성한 잎이 아니라 신실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만일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잘라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나무나 가지들이 죽은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목적은 과실을 맺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잘 맺게 하시려고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실을 맺으려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축생()이나 여자(인간)의 영적상태가 되어 예수님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참 포도나무(예수)가 아닌 들 포도나무나 잡목, 즉 거짓목사에게 붙어 있으면 오히려 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과 영적인 차원에 따라 분리한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은 지금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에서 아직도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기독교를 출애굽(탈출)해서 광야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가나안에 들어왔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향해 아담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머물고 있는 위치를 자신이 알았다면 지금부터 새 출발을 하셔야 합니다. 비록 생명의 길이 좁고 협착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들어가려면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하나님이 제시한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부하나님은 창조주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창조를 받아야 할 피조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존재인 바다(세상)의 물고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모두 여섯 번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애굽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죽기 5의 여유만 있어도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천국을 간다고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목사와 거짓목사들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간교한 뱀들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되는 과정을 알았다면 하루속히 거짓된 애굽의 세상기독교 신학교리신앙과 거짓목사에게서 출애굽(탈출)해서 광야로 나아가 율법을 통해서 시험과 연단을 받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길은 비록 힘들고 험한 고난의 길이지만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다 이 길을 걸어간 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네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마16:24)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좁고 협착한 길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생명의 길이며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이 길을 걸어간 길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따라가면서 세상이라는 바다의 물고기가 기는 짐승으로 거듭나고 기는 짐승이 걷는 짐승으로 거듭나고 걷는 짐승이 축생(양)으로 거듭나고 축생(양)이 다시 여자(인간)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때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고후11:2)와 같은 동정녀마리아 같은 영적상태가 되어야 성령이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 남자의 영적상태인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 예수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속한 물고기와 같은 육신의 존재인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의 종과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구원자로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의 생명에서 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목사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자연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기 위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이제 창세기의 하나님의 6일 천지창조를 모두 구속사 적으로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을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3장의 믿음, 소망, 사랑을 애급, 광야가나안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좀 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고전 13장 본문생략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본문 고전 13장의 말씀은 기독교목사들은 물론 교인들도 너무나 잘 알고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떤 뜻으로 말씀하고 계신지 그 영적 의미를 아는 사람이 기독교인들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놀랍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모두 비유로 감춰있고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고전 13장 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오직 믿음이요 소망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실천적 삶은 이웃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천국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며 천국도 들어갈 것처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과 같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실제 이루어져서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오직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회는 유치원 과정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오직 애급(믿음)밖에 모르고 광야(소망)나 가나안(사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종교생활 하는 오늘날 기독교 애급교인들은 오직 믿음 하나만 붙잡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을 받기 위해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이라는 기독교는 애급교회의 신학자들이 만들은 신학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복신앙인들은 초보에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의 신앙이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바라는 신앙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 13장의 말씀은  내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의 영혼을 구제한다 해도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며 구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영혼을 구원하는 아가페사랑으로 그 실체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인 아가페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사람에게 육신적인 도움을 주거나 인간적인 윤리 도덕적인 사랑은 할 수 있어도 죽은 영혼을 구제하거나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회 안에는 오직 믿음과 그에 따른 기독교목사들이 있을 뿐 광야의 소망이나 가나안의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온 자들에게만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들은 광야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에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아가페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기독교 애굽의 신학 교리와 기복신앙에서 출애굽(탈출)해서 소망의 땅인 광야로 하루속히 나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출 애굽한 기독교인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기도는 천국이나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하루속히 기독교 애급신앙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애굽의 초보적인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 소망의 땅인 광야로 들어가서 율법을 통한 훈련과 그에 따른 시험과 연단을 참고 견뎌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예수님의 아가페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본문 말씀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의 기복신앙인들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며 광야의 율법신앙인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신앙이며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의 문을 두드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즉 애굽에서 종교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육신의 복을 구하는 신앙이요 광야로 나온 신앙인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신앙이요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을 소유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신앙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구하고찾고두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은 기독교목사들같이 세상의 썩어 없어질 세상의 복을 구하고찾고두드리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신앙의 차원에 따라 애굽에 있는 자들은 구하는 것이며광야에 있는 자들은 찾으라는 것이며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두드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가나안에 이른 자들이 이때야 비로서 예수를 영접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볼 수 있는 것이지 광야에 있는 자나 애굽에 있는 자에게는 예수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예수가 내 앞에 있다 해도 그가 누구신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단으로 배척해서 십자가에서 죽인 것은 애급 세상에 있는 존재들이라 예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은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성취된 자를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천국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소망사랑과 애굽~광야~가나안은 항상 제시되어 있는 것인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고전13:13)인 가나안이라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구원의 완성이며 사랑이 곧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기독교 애급의 신학 교리와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출애굽(탈출)을 하여 소망의 땅인 광야를 거쳐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해야 합니다. 광야는 소망의 땅입니다. 즉 광야에는 애급의 믿음이나 가나안의 사랑은 없고 오직 소망 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도 기독교를 출 애굽(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자들은 사랑이 있는 가나안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광야의 불기둥 구름기둥과 모진 훈련과 시련들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분방한 거짓된 세상기독교 애굽의 존재가 광야에서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고 광야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부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광야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징계와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모지 사막과 같은 광야에는 만나(무교병)와 불 뱀과 전갈이 있을 뿐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에서 먹던 진수성찬의 양식 유교 병이나 부귀영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예수)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모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영적 준비를 시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광야로 나온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할 뿐 생명을 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율법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광야에 율법도 죽은 영혼을 살리지 못했는데 아직 세상교회에서 출애굽도 못한 애굽의 기독교목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혼을 구원한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실제 애급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이미 출 애굽(탈출)을 해서 현제 광야나 가나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특히 목사장로, 권사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에서 벗어나 출애굽 한 자만이 광야나 가나안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가나안사랑의 아가페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도 사랑인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고전 13:13장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과 예언을 하며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어도 가나안에만 있는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기독교인 애급교회에는 사랑자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쭉정이와 같이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광야의 율법에서 자유 한 자가 되어 사랑을 소유하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이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고 죽은 자의 영혼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이 계신 가나안 땅은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자들이 광야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광야의 시험에 합격된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만일 광야의 훈련이 힘들다고 원망불평을 하거나 도중에 실족하는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애급(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출 애급 한 60만 대군이 모두 멸망당한 것은 광야의 모진훈련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고 참고 견딘 여호수아와 갈렙과 새로 난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오늘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그림자와 같이 보여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 말씀을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멸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도 멸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모지 사막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그리고 전갈과 불 뱀이 있는 광야로 이끌어내어 연단을 시키는 것은 세상이라는 거짓된 기독교인들의 애굽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물고기와 같은 애굽세상의 기독교인들의 존재들을 풀무불 속과 같은 광야로 이끌어내어 광야의 율법으로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애굽의 육신적인 존재를 죽이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재창조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광야에서 모두 멸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성경 출애굽기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깨달으셔야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기독교에서 하루속히 출애굽(탈출)을 하여 광야로 나아가 시험과 연단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사랑(아가페)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현재에도 계신다 는 말씀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나안에 계신 예수를 만나려면 반드시 먼저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을 하여 광야의 훈련을 통해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이때 예수를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면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애굽교회에는 애굽의 기독교 목사만 있고 광야교회에는 광야의 목사만 있고 하나님의 아들 실존예수님은 가나안 땅에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먹는 양식도 각기 다른데 애굽 교인들은 누룩이 잔뜩 들어있는 기독교목사들의 유교 병을 먹는 것이며, 광야로 나온 광 야교인들은 맛이 없는 만나 무교병을 먹는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생명의 말씀인 꿀과 같은 진설병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유교병은 기독교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들어낸 각종 신학 교리들을 말하며 무교병은 조금도 가감되지 않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며  진설병은 산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렇게 애급, 광야에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없었지만 가나안 땅에는 예수님이 항상 예전에도 계셨고 오늘날에도 항상 실존으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에 실존(계1:8)으로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세상이라는 애급교회에는 예수가 없어 2000년 전에 오셨던 유대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며  광야교회에서는 예수를 거울, 즉 율법과 모세를 통해서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며  가나안교회에 들어간 자들은 현제 예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예수님을 대면하여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아들 된 예수 몸 안에 영원히 안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70 이례로 기한을 두신 것입니다.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원히 속죄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거룩한 자가 기름 부 음을 받으리라,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은 상기의 본문의 말씀같이 하나님께서 70 이례로 기한을 정하신 것입니다. 70 이례라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을 여섯 단계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일곱째 날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성전(고전3:16)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면 천국은 하나님의 아들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래서 십계명 4 계명에 너희는 7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마 1:1-17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낳고 낳으면서 42대 만에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기록입니다. 42대라는 것은 애급에서 14대 광야에서 14대 가나안에서 14를 말하며 이것을 달로 치면 42 달이요 날(日)로는 1.260일이요 년(年)으로는 3년 반이요 이것을 한 때, 두 때, 반 때, 합 셋 때 반(계12:14)만에 예수가 오신 기록입니다.

그런데 14라는 것은 징계와 연단을 받으면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사도바울도 14년 전에 고난을 받고 셋째 하늘(고후12:1-4)에 다녀온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숫자는 영적으로 깊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예수님만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예수와 똑같은 경로를 통해야 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된 예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인간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예수도 세상이라는 바다의 물고기와 짐승의 영적상태에서 6번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까지는 6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일곱째 날 성전이 완성되어 하나님께서 예수의 몸 안에 안식하신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일곱째 날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42대 만에 이 세상에 오신 것은 42는 비사로 42 달이라고 하며 (年)으로는 3년 반이며 이것을 성경에서 한때 두 때 반 때 합셋 때 반(계12:14)라 하며 (日)로는 1.260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성장하면서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면서 인간의 본능인 을 버리며 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7:14-15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때가 되면 꿀과 버터를 먹을 것이라,  이렇게 예수께서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3년 반 동안 꿀과 버터를 먹으면서 인간의 본능인 을 버리며 을 택하시면서 장성한 자로 성장하신 다음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실제로 3년 반 동안 자신이 소유한 말씀으로 제자들을 양육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성장하는 3년 반과 제자들을 양육해서 구원하시는 3년 반 이렇게 7즉 일곱 때가 되어야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천국을 소유한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예수와 똑같이 전 3년 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해야 하고 그리고 후 3년 반은 이웃의 영혼을 자신의 몸과 같이 구원을 해야 하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이라는 일곱 때가 되어야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같이 70 이례로 기간을 정하셔서 인간이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여기서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신다는 것은 예수의 증거 하는 것은 하나님이 증거 하시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두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와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1.260일 3년 반 동안에는 굵은 베옷을 입는다고 하셨는데 베옷은 초상집에서 입는 옷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징계와 연단을 받으면서 양육을 받기 때문에 초상집과 같은 것입니다.  계시록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같이 예수께서 1.260일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으신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천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사탄)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을 받으리라,

그 여자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를 말하며 이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꿀과 버터를 먹으면서 양육을 받은 후에는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3년 반 동안 양육을 받으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이고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면 남자의 영적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영적상태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년 반셋 때 반 동안은 예수의 영적상태로 거듭난 자는 반드시 이웃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간이 3년 반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 3년 반 후 3년 반 합 칠 년 만에 모든 것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3년 반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는 기간을 말하며 3년 반은 이웃을 구원해서 양육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아가페)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이란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자가 소유한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첫째 계명은 전  3년 반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는 기간을 말하며 3년 반은 자신이 소유한 말씀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구원하는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 3년 반 후 3년 반 7이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6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이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2000년 전 유대교 당시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유대인들에게 보내면서 어린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으니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리는 영혼을 탈취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말하며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을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너희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실존예수를 영접해 거듭난 자들에게 기독교인들에게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진리의 말씀은 기독교인들은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자칫 이단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뱀같이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 28:20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이나 땅 끝이라는 뜻은 종말이나 지구의 땅 끝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을 때를 세상 끝 또는 땅 끝이라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안팎으로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이런 말씀을 잘 관찰해서 해석을 해야 바른 성경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께서 너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크게 오해를 하고 각 교회마다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는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도대체 땅 끝은 어디를 땅 끝이라 말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이라는 뜻은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을 때가 땅 끝이라고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거듭난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보내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잘 전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안팎(계5:1)으로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세상 끝이나 땅 끝이라는 말씀을 잘 관찰해서 해석해야 바른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땅 끝이라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너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고 교회마다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책망하실까 사뭇 궁금해집니다. 그러므로 인간 예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제자들을 구원자 예수들로 만드시고 예수자신은 그리스도로 부활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3년 반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땅 끝까지 거듭나는 기간을 말하며 후 3년 반은 이웃을 구원하여 내 몸 같이 만들어야 합 7이 되어야 예수와 똑같은 사람 성전이 되는 것이며 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가 되는 기간을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가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 몸 안에 안식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십계명 4 계명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7이라는 일곱 때가 되어야 70이례로 모두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과 구원의 과정을 성경을 통해서 애굽~광야~가나안으로 이렇게 3일 길과 예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과 예수나이가 30라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을 분명히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 출애굽기의 말씀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민족을 대상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비유비사의 말씀으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인 기독교인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거울과 같이 비사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 출애굽기의 말씀을 잘 이해하시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 확실히 보이는 것입니다.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