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제라늄A 2023. 9. 6. 17:59

딤후 4:2 너는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 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부득불이란 할 수 없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스겔 3:17-19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상기의 말씀은 구원을 받으려는 자에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필수조건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내용인즉 “네가 악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그가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필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잘라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너무 중요한 말씀으로 하나님은 “농부”요 예수님은 “포도나무”“비유”하시고 제자들은 “가지”“비유”하신 말씀인데 “포도나무”에 붙어서 “포도나무”의 진액을 먹고 자라나는 “가지”는 반드시 “포도송이”열매를 맺어야 “가지”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도마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복음 40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넝쿨이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심겨졌다 그런데 심겨진 나무가 지금까지 강하지 못한 고로 뿌리가 뽑혀 말라버릴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땅에 심겨졌는데 심겨진 나무가 튼튼하지 못해 바람에 뿌리가 뽑혀 말라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포도송이”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가지”“농부”의 손에 잘라버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여 그들을 통해서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제자들이 이웃의 죽어있는 영혼들을 힘들다고 구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농부”“가지”를 잘라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로 믿는다면 이런 말씀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 말씀을 잘못 오해를 하면 많이 가진 부자는 더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고 가난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 다는 말로 오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비유”와 같이 하나님의 “포도송이열매”를 열심히 잘 맺는 가지는 하나님이 더 많이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뜻이고  게으르고 나태하여 “포도송이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붙어있는 “가지”도 잘라 버린 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생명의 길을 가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르게 짓는 “죄가 수 없이 많이 있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게을러서 “포도송이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잘라버리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멸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나태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전도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반드시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고 살려서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해도 말이 쉽지 그렇게 쉽게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아무나 붙잡아 교회에 앉혀놓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내 “살” “피”를 내주어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나의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사랑으로 구원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율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모든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구원하여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갈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구원)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윤리도덕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란 두 글자는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윤리도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롬 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냥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목사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상기의 말씀은 전도의 사명을 하지 않거나 해도 올바로 행치 않아 그 영혼이 죽으면 그의 죄 값을 그 전도자에게 받는다는 무서운 말씀이 상기의 에스겔서” 잘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이나 사도들같이 이웃을 반드시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어야 “구원”할 수 있는 것인데 기독교 안에는 그런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은 생명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나야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내가 장성한 자로 거듭나면 반쪽 구원을 받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내 몸 안에 있는 말씀으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만들어야 완전히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같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웃을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구원의 빚을 완전히 갚는 것입니다. 사랑 “빚”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빚”을 말하는 것인데. 은혜의 “빚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사랑”에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갚으려면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므로 하나님께 진 을 갚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난 것처럼 내가 희생의 “피”(말씀)를 흘려 그들을 살려서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계명”입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 “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야말로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사랑은 가나안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