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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미워하고 차자를 사랑하신다(중요한 말씀)

제라늄A 2023. 10. 1. 17:29

말라기 1: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왜 장자 에서는 미워하시고 차자 야곱을 사랑하셨는가?  구약성경은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보내주시리라는 예언서입니다. 또는 첫 사람인 겉 사람과 둘째 사람인속사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8: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구약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이므로 지금 여호와께서 말라기서나 창세기의 말씀하신 경고가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경고가 됩니다. 반드시 명심할 것은 성경은 모두 이스라엘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그것이 모두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된다는 뜻입니다.
고전 15:45-47 첫 사람 아담은 생영(생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생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은 “혼”의 존재를 말하고, 마지막 아담은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거듭난 둘째아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둘째아담은 생명의 상속권이 주어진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아담은 “육”으로 난자요, 둘째아담은 첫째아담이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실존예수”를 보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예수”로 오셔야만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아들, 두 돌판, 두 성소 이렇게 수많은 인물과 사물들이 둘씩 등장하는데 언제나 “둘째”가 승리합니다. 첫째는 무너지고 “둘째”가 세워지도록 되어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처음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첫째)는 미워하시고 “차자”(둘째)를 사랑하십니다.  출애굽기 11:5-6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 지라, 애급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장자를 모조리 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장자인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둘째인 “아벨”의 제사는 받으심으로 “아벨”이 상속권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표 하는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은 종의 아들로서 상속권이 없고 차자 “이삭”은 자유자의 아들로서 상속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중에도 장자 “에서”는 상속권을 빼앗긴 사람이고 차자 “야곱”이 상속권을 사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첫째 부인이 “레아”요 둘째 부인이 “라헬”인데 라헬의 아들 “요셉”이 혈통으로 상속권을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성경 전체에는 수많은 인물과 사물들이 둘씩 짝을 지어 나오는데 모두 첫째가  아닌 “둘째”가 상속권을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사물들을 보면 모세의 첫 돌 판은 깨져야 하는 돌 판이요, 두 번째 돌 판이 성립이 됩니다. “처음 성소”가 아니라 “두 번째 지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도시 중에도 처음 예루살렘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새 예루살렘이 있는데 새 예루살렘이 우리에게 영생의 상속을 주는 모임체가 됩니다. 이와 같이 “둘째”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께서는 “장자”는 폐하시고 항상 둘째인 “차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처음은 “알파”라면 나중은 “오메가”입니다. 그럼 말라기서 본 문장에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에서”는 첫 사람과 “초림예수”와 그의 복음백성인 기독교인들을 예표하며 야곱은 둘째 사람 “재림예수”와 택한 자 거듭난 자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에서의 산들과 산업은 첫 사람을 뜻하는데 그것들을 황무케 하고 광야의 사랑에게 붙였다고 했습니다. 광야의 시랑이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의 과정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처럼 “둘째”것은 사랑하고 첫 것은 버리는 것일까?  전체 성경을 보면 장자와 차자 둘씩 짝을 지어 나오는데 항상 차자가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받는 것은 첫 사람이 “초림예수”의 복음을 영접하여 구원의 시작이 되므로 그 말씀으로 성장해서 거듭나면 하늘의 “영”(성신)이 임함으로 “둘째”인 “재림예수”로 거듭남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예수”를 영접하여 비 진리로 잘못 지어진 육체의 성전을 헐면(죽으면) 하늘의 “영”이 임하므로 (神)과 “인간”이 한 몸이 되어 인간 “둘째”사람인 “재림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실존으로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여 그 말씀으로 성장하여 거듭나게 되면 하늘의 “영”이 임함으로 “재림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예수”가 된 내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내 이웃의 죽은 영혼에게 나의 희생의 “피”복음을 주어 죽은 자를 살려내야 내가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희생의 “피”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재림예수”의 말씀을 주는 것이고 먹는 자의 입장은 “초림예수”의 “떡”(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먹는 자의 입장은 살(떡)을 먹고 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성찬식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 중에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에게 하늘의 신랑이 임함으로 신(神)과 “인간”이 한 몸이 됨으로 인간 “재림예수”가 되신 분이 구원자 예수가 되십니다.  계시록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로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 예언대로 오늘날도 인간 “재림예수”가 복음을 주시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 복음을 영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재림예수“가 계시다는 자체를 모르며 오늘날 “재림예수”는 영접하지 않고 2000년 전에 오셨던 유대인들을 구원하고자 오신 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지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예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당시에 “실존예수”를 모르고 영접을 안 한 것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모르고 있지만 만약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도 유대인들과 똑 같이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고 또 죽이는 것입니다. 상기의 계1:8 말씀은 지금도 있고 라는 것은 현제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실존예수”가 있다는 말이며 전에도 있었고 라는 것은 예전에 사람들 2000년 전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 “실존예수”를 말하며 장차에 올 자라는 것은 우리 후세에 그들을 구원할 “실존예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시대 시대마다 항상 “실존예수님”으로 계셔야만 구원을 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계신 “실존예수”의 말씀을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지 2000년 전의 “실존예수”는 지금은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병자”는 오늘날 “의사”가 고치는 것과 같이 구원도 오늘날 “실존예수”가 있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이지 오늘날 “실존예수”가 없을 때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7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아있는 자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을 영접하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실존예수”“음성”을 듣고 영접해야 그 말씀으로 장성해져서 “거듭”(부활)나면 하늘의 “영”이 임함으로 “둘째”사람인 “재림예수”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때 내 이웃의 죽은 영혼을 구원을 시킬 때 빚진 자로서 탕감을 받고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