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죽음,부활)

부활의 참뜻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중요한 말씀)

제라늄A 2023. 11. 14. 16:54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참 뜻을 알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우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죽음을 정복하거나 죽음을 초월하여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도 못합니다. 죽음은 인간으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오직 진리의 머리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이신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의 부활은 영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야만 유일한 영생의 길입니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참 뜻은 무엇인가?  무덤이 갈라져서 무덤 속의 썩은 시체가 살아나는 것이 부활인가? 아닙니다.

음부에서 잠자던 영혼이 일어나는 것이 부활인가? 아닙니다. 부활이란 개념은 성경이 제시한 특수 용어이며 하나님이 인간과 약속하신 구속사업의 가장 핵심입니다. 신구약의 약속인 성경 전체가 부활을 위한 거대하고 장엄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이라는 말은 죽음이라는 말의 상대적 용어이므로 죽음을 모르고 부활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에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었고 그 말씀대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의 후손 되는 인류도 오늘날의 거짓복음의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며 그 말씀 속의 핵심이 부활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이란 용어는 성경 속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이것이 바로 성경의 두 얼굴입니다. 타락은 곧 사망이며 부활은 생명입니다. 죽음은 사단 마귀가 인간에게 도전한 결과이며 부활은 예수가 인간에게 도전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죽음의 문제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과 무덤은 어떠한 의미일까?  죽음의 자리에서 죽은 자가 바라 본 죽음과, 생명의 자리에서 산 자가 바라 본 죽음의 실체를 살펴보겠습니다. 참 부활은 산 자의 태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무덤은 여인들의 태임을 말합니다. 사라의 죽은 태에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산 자가 나왔으니 이것이 곧 부활의 의미입니다. 사라는 죽은 태로써 육신의 아들을 낳을 수 없어서 남편을 하갈과 동침시켜 혈육의 자식 이스마엘을 생산케 하였으나 하나님은 육신의 씨로 낳은 이스마엘을 후사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사라의 태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므로 사라의 태는 산 자를 생산하는 태가 되었고 성령으로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낳게 됩니다.

갈라디아 4:28-29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니라,  언약의 자식이란 곧 로 낳은 부활의 자식을 말합니다. 사라가 낳은 이삭은 산 자, 부활을 약속받은 자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의 역사 최초로 하나님이 언약했고 그 언약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이 섭리하시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중 아브라함, 사라의 이름과 아담, 하와의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면 아담은 사람으로서 산  자라는 의미이며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은 죽은 자가 되었고,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 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본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아니했다면 어떠한 길을 갔을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와 같은 격의 부부를 다시 선택하십니다. 이 새로운 생명의 장을 열어야 할 부부로 선택받은 자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애 속에 아담이 타락하지 아니했다면 어떠한 존재가 되었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의 자손을 약속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의 자녀의 개념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아는 자녀는 육신의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세월이 지나고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상태로 늙어 버릴 때까지 자식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 육신의 자녀 낳기를 포기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태의 문을 열어 성령으로 자식을 잉태케 하므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이 생명의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곧 믿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하나님의 생명과를 따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생명과를 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므로 생명의 길에서 추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생명과를 따서 후손에게 그들이 딴 생명을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이 생명인 것을 그의 언약의 자손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의 자손 이삭도, 야곱도, 예수도 요셉도, 사도들도, 신약 이후 참 성도들도, 그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생의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를 택하여 그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와는 타락으로 산 자의 어미란 이름을 상실했지만 사라는 성령으로 언약의 자식 이삭을 낳으므로 열국의 어미로 축복받았던 것입니다.

열국의 어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7:45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 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을 믿으므로 믿음과 언약의 조상이 되었으니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된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담과 하와가 받으려다 받지 못한 산 자의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을 언약받은 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삭은 성령으로 낳은 언약의 자식입니다.  갈라디아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창세기 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은 죽은 태 즉 무덤에서 산 자로 나온 격으로 부활을 상징하는 처음 혈통(씨)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시어미처럼 석녀인데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이 리브가의 태의 문을 열므로 야곱을 낳게 됩니다.

그 아들 야곱에게는 두 아내가 있으나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라헬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라헬도 불임의 석녀였습니다. 라헬의 태도 하나님이 여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요셉을 납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이처럼 사라, 리브가, 라헬 세 여인은 그 태가 죽은 영생하지 못하는 죽은 자가 나와야 하는 무덤 같은 여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무덤 속에서 영원히 산다는 언약의 상징인 이삭야곱요셉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삭야곱요셉은 죽은 자를 생산하는 어머니에게서 나온 육신의 자식이 아닌 혈통으로 언약의 자식이며 이들은 성령을 따라 난 자식들이었습니다. 사라리브가라헬의 성령잉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탄생,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성모 마리아의 모형이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요한)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남자 예수의 탄생의 모형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부활을 믿은 첫 사람이었고 이삭과 야곱은 성령을 따라 난 언약의 자식으로 영적 맥을 계승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으로써 삼대의 하나님이 되었으므로 부활의 비밀을 그들 삼대 속에 묻어 두었고 그 지표 위에는 죽은 자들에 대한 내용만 보이니  누가 성경 깊이 묻힌 산 자에 대한 비밀을 발굴할 수 있었겠는가?  누구든지 성령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언약을 약속받은 자가 아니면 장차 부활의 반열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식 이삭은 성령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믿는 믿음의 태에서 생산된 것처럼 예수 안에 죽은 언약의 성도는 성령의 태를 통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신약 이후에 예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부활의 약속을 받으므로 그들도 그 약속을 받아 온전케 되므로 그들은 성령의 태에서 언약의 씨, 부활의 자식으로 하늘의 별처럼 생산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실상은 땅의 무덤이 열려 육신이 죽은 송장이 살아난다는 죽은 몸의 부활을 기독교적 환상은 지난 2000년 동안 우상의 형상이요, 기독교인들의 지혜가 성장하지 못하여 미숙할 때 이러한 오류를 범하며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이 어린아이 신앙차원을 뛰어넘지 못하고 매년 부활주일을 섬기며 예수부활을 육신의 몸의 부활로 알고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부활하셨다고 찬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주일 예배드릴 때마다 사도신경 고백을 하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