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9-20 예수께서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만에 다시 건축하신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잘못된 말씀으로 건축한 유대인들의 육체의 성전을 완전히 헐고 현제 너희들 앞에 있는 “실존예수”의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면 “3일만”에 다시 건축하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전을 건축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이천 년 전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잘못 건축한 육체의 성전(헌 집)을 완전히 헐지 않고는 새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22 새 포도주(진리)를 낡은 가죽 부대(육체)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새 양식인 진리의 말씀을 기존의 신앙 위에 덧붙여 말씀을 먹는다면 옛 것도 버리고 새것도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잘못 건축한 옛 성전을 헐어버리고 “새 술(진리)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예수”에게 진리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같이 홍수같이 태산을 이루는 말씀이 있다 해도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참 진리”의 말씀이 아니면 다 “죽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내가 잘못 건축한 육체의 성전을 헐어야 새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 건축한 성전을 허는 것은 억지로 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 성전은 헐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실존예수”의 말씀으로 다시 건축하면 “3일만”에 다시 건축할 수가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예수”에게 진리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생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이 홍수같이 태산을 이루는 말씀이 있다 해도 “실존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참 진리”의 말씀이 아니면 다 “죽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내가 잘못 건축한 육체의 성전을 헐고 다시 건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알파와 오메가”로서 처음과 끝이 되기 때문에 항상 “실존”으로 계셔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예수는 “실존”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실존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이 성립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예수”는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였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를 이단으로 또 배척하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을 안 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을 안 하는지 이런 말씀을 신앙인들이라면 깊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은 왜 “3일만”에 이루어지는가? 우선 “부활”이란 먼저 죽음을 전제한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먼저 죽어야 하고, 죽어야 “부활”을 하며, 그 “부활”이 곧 영원한 생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3일”이전은 죽음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3일”이 되는 날에는 “영생”한다는 뜻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성경의 “출애굽기”의 말씀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같이 기록되어 있으나 실상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그림자와 같이 거울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세상기독교에서 “출애굽”을 해서 “3일 길”을 택하여만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이기에 하나님의 창조는 “애급, 광야, 가나안”이렇게 “3일 길”을 가야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창조 이래 지금까지 태어난 자 모두 죽어왔습니다. 창조 이래 우리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고 있는 사망의 몸이었으나,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창조완성의 약속은 “영생”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창조가 완성이 아니고 미완성이므로 죽어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미완의 사망의 몸이므로 죽는 것은 창조가 완성이 안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창조 미완성이면 사망이요, 창조 완성이면 “영생”(부활)인 것입니다. 창조완성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요17:3) 그리고 예수님이 이같이 “3일” 만에 “부활”하신 의미는 “애급”에서 “광야”로 또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유월하는 것이 “3일길”입니다. 노아방주가 “3층” 차원적으로 지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전이 “3층”으로 지어진 것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 차원적으로 성장하는 단계로 기간을 “3일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사도바울도 비몽사몽간에 하늘의 “3층 천”에 다녀와서 사람에게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애급, 광야, 가나안” 이렇게 차원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까지 데리고 간 길이 “3 일길”이라는 것이며 예수님의 나이가 “30세”에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은 나이 “30세”가 아니라 가나안에 입성한 장성한 자로 완성되는 “애급, 광야, 가나안”을 통과했을 때를 “3일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3일 길”을 갔을 때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부활)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비유비사”로 “안팎”(계5:1)으로 오묘하게 깊이 감추어진 예언으로 기록된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기 때문에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 몸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의 영생 권은 이 세상 아무에게나 남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오로지 진리의 새 말씀으로 “등과 기름”준비된 “정결한 처녀”같이 “슬기로운 5 처녀” 반열에게만, 즉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부반열에게만 영생의 상급이 주어진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앙인들은 반드시 세상교회 기독교에서 “출 애급”하여 “광야”에서 징계와 연단의 훈련을 받고 “가나안”까지 “3일 길”을 가야 창조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3일 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60만 대군이 “광야”에서 다 죽고 2명만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꿀과 버터”를 먹으면서 즉 “생명의 말씀”(이사야7:15)을 먹으면서 성장하면서 “광야”에서 험난한 “사탄의 시험”을 “3번씩”이나 받고 그 시험에 합격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때 예수께서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