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기독교인들

제라늄A 2024. 2. 10. 18:55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통해서 무엇인가 얻기를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나님을 통해서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구하는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은 하나님과 세상의 것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을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7계명을 통해서 간음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으며 율법에 간음을 행한 자는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간음을 행하지 않았다 해도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했다고 간음을 엄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간음을 행하다가 현장에서 잡아온 여인을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정죄도 하지 않고 놓아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율법을 범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서 그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예수님이 계명을 범한 일은 간음에 대한 일뿐만 아니라 안식일도 범하여 유대인들에게 정죄를 받은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시는 간음과 안식일의 뜻을 예수님은 올바로 알고 있지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지키는 간음과 안식일은 예수님이 알고 지키는 간음과 안식일의 기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시기 때문에 간음과 안식일을 모두 으로 기록한 말씀인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 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모두 으로 알고 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을 통해서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8:1-9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 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 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상기 서기관들의 말과 같이 간음을 행한 여인은 율법에 분명히 돌로 치라고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아무런 정죄도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남녀 간에 육신의 간음을 한자도 용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거나 오히려 범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이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공의까지 무너지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폐하거나 범할 수가 없고 범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 간음과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지키고 있는 간음의 기준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하나님은 간음을 영적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간음을 육적으로 알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 영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육적으로 보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교회의 법이나 교리로 만들어 지키는 행위를 간음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모두 영적으로 기록된 말씀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 육신적으로 보고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어도 모두 으로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으로 듣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를 이단으로 몰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구원자로 실존예수를 보내주셨는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목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목사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독교목사를 찾아가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을 간음한 음녀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1:14) 오신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구원은 실존예수께서 시키는 것이지 목사는 구원자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간음죄를 범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소돔과 고모라성도 간음때문에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멸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하고 있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성경에서는 간음이라고 하는데 이 영적인 간음가 아주중한 것입니다. 때문에 육신적인 간음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간음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영적 간음의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알고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예수님께서 아무 정죄도 하지 않고 보내주신 것은 이 여인은 영적인 간음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간음을 행한 여인을 보내면서 앞으로는 육적인 간음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적인 간음을 하지 않는 자가 영적인 간음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둘러 서있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은 허리를 두 번이나 숙여 땅에 쓰신 글은 과연 무슨 내용일까? 그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땅에 기록하신 글은 영안이 열린 자나 성경을 깊이 보고 묵상하는 자는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글을 쓰시고 난 후 무리들에게 이 글을 보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는데 무리들은 그 글을 보고 모두 양심에 가책을 느껴 돌을 내려놓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무슨 글을 기록해서 무리들이 말없이 돌아간 것일까? 예수님께서 땅에 처음에 기록한 글은 새 계명의 첫 계명 즉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라는 것과 두 번째 기록한 글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는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구원하고 살려서 하나님이 아들로 만들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계명을 기록하시고 무리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계명을 모두 이룬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 중에 이 두 계명을 모두 지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에 모두 양심이 찔려 돌을 내려놓고 돌아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무리들이 육적인 간음은 하지 않았지만 영적인 간음은 이미 행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영적인 뜻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과 (야고보서4:4)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실존예수를 떠나서 기독교 신학자들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든 신학과 기복신앙을 따라가는 자들을 성경에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는 제사장목사들을 믿고 따르면서 오히려 실존예수님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사도들까지 배척하고 핍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 실존예수님을 떠나 삯꾼목사를 따라가는 자들을 성경에서는 모두 간음하고 있는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학을 한 목사를 따르는 자체가 모두가 간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명을 인간의 기준이나 윤리도덕으로 알고 지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인 뜻을 올바로 알고 지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신랑(참 목자)을 올바로 알고 따르며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는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