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24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아비와 어미를 미워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자신의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도마복음55)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면 예수님은 가정파괴범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이런 해괴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비와 어미는 육신의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소경 된 기독교목사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며 형제와 자매 역시 그들의 속한 기독교인들을 비유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지금 자신이 속해있는 기독교목사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철옹성 같이 단단히 굳어진 멸망의 길에서 나올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 철옹성 같은 집단에서 나오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오늘날 내 백성이 누구입니까? 기독교인들이 아닙니까?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처럼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고,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반드시 지고 따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처럼 반드시 십자가에서 자신의 존재가 죽어야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매일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신학자나 목사들이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날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단히 믿어버렸으므로 가장 현명한 척했으나, 자기 십자가에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런 사달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구원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되고 나면 그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땅 끝은 어디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이라는 뜻은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완전히 깨닫는 때가 땅 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 끝까지 거듭난 자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깨닫게 되면 성령(주님)께서 내 안에 오신다는 말이며 또한 외적으로는 지난 이천 년에 걸쳐 이 복음은 온 인류에게 전하기 위해 약속대로 그분은 실존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큰 교회마다 해외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으로 오해를 하여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웃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는지를 아는 자들이 없는 것인가? 성경은 모두 예언이고 십자가도 모두 예언이고 비유비사인데 그 예언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도 전혀 모르니 자기 십자가를 어떻게 지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잘 믿는답시고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십자가의 죽음이란 형이상학의 말씀을 인간의 육적으로 죽는 형이하학의 죽음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며 예언은 형이하학의 기록인데, 하나님의 본질은 형이상학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형이하학의 기록이므로, 성경을 비유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비유비사를 풀어 인류구원의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도 모두 형이상학의 십자가로 전환해서 보아야만 하는 시각이 필요한데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경은 육적 죽음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본질은 영적 죽음과 부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소아병적인 젖먹이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나의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신학박사님이 어디 있고 목사와 평신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목사 평신도 모두 다 일반이지 않는가? 하나님 및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가 살아 있는 나에게서 나의 복음을 잘못 받은 옛사람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9~20 예수께서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다시 짓는다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너희들의 잘못된 말씀으로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예수님께서 전하는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자신 안에 잘못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거의 양식이 무엇이었는가? 성경 신구약은 모두 말씀의 양식이 문자 그대로의 형이하학의 양식이고, 그런 믿음의 기록입니다.
그런 형이하학의 육적 믿음에서 죽으라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죽기는커녕 이 같은 육적 과거의 문자 그대로의 믿음에서 줄기차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믿음에서 죽고, 오늘의 새 양식을 먹고 오늘의 새 믿음에서 다시 살아야 합니다.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복음을 받은 내 것에서 죽지 않으면 새로운 내가 다시 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받은 복음이 진리인양 과거의 믿음에서 시퍼렇게 살아 큰소리치고 있는데, 즉 자기 십자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존예수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오늘의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한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마태복음 8:20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한탄하셨습니다. 도저히 유대교 때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인들이 배척하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하셨습니다. 실존예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 들어갈 곳이 없다고 오늘도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말은 허공을 치는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도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거짓목사 밑에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는 살아 있는 나의 옛 신앙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받은 거짓복음 거짓예수를 잘못 믿고 지어진 거짓 성전을 헐어버리고, 오늘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도 자신도 동일하게 지고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상기의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비켜가며 우리가 지고 갈 고난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모두 대신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기독교 교리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좁고 협잡하여 그 길로 가는 자가 적다고 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넓고 평탄한 길로 가는데 그 길은 죽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마7:13~14)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길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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