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은 밭에 감춰진 보물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
도마복음 109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나라는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물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는 사람 같도다. 그가 죽으매 그의 아들에게 그 밭을 물려주었으나 그의 아들 역시 보물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가 그 밭을 팔아 타인에게 넘겨주었다. 그 밭을 산사람은 쟁기질 하다가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원하는 어느 누구에게나 이자를 쳐서 보물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마치 “밭”에 감춰진 “보물”을 가지고도 그 “보물”의 귀중함을 모르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밭”주인은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의 가치도 모르고 살다가 죽을 때 그 아들에게 “밭”을 물려주었는데 그 아들 역시 “밭”에 감춰져 있는 “보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타인에게 그 “밭”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밭”을 산 사람은 농사를 짓기 위해 쟁기질을 하다가 땅속에서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너무 소중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밭”은 어떤 “밭”을 말하며 “밭”에 감추어있는 “보물”은 무엇이며 “이자”를 받고 빌려준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밭”은 사람의 마음 “밭”을 말하며 “보물”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말하며 “이자”를 받는다는 말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 이웃을 구원한다면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 “밭”을 갈지 않으면 “보물”을 손에 쥐고 있어도 “보물”의 가치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실체가 바로 내 앞에 와 계셔도 보지를 못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배 중에 보배인 “실존예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한다 해도 상기의 본문 말씀같이 “보물”을 손에 쥐어 줘도 그 “보물”의 귀중함을 모르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눈이 멀어서 “구원자예수”를 모르고 2000년 전 유대교목사들과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은 개,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모르고 발로 밟아버리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마7:6)
그러므로 본문말씀에 처음 “밭”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이나 그의 아들이 “밭”에 감추어있는 “보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것은 마음의 “밭”을 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밭”을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큰 자(교만)에서 작은 자(겸손)로 부서트리고 가루가 되어야 귀중한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마음의 “밭”을 가는 두 사람과 두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맷돌로 자신의 존재를 잘 갈려 가루가 된 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들 갈린 자는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가루가 된다는 뜻은 큰 자가 말씀의 맷돌로 갈아서 점점 작아져서 자신의 존재가 가루가 된 사람이 “바늘귀”를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영적으로 “비유”로 감춰진 말이라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마19:24, 막10:25, 눅18:25)고 이렇게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래도 “낙타”는 “부자”보다 “바늘귀”를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더 쉽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자”의 그 정체가 무엇이기에 예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는가? “부자”의 재물은 본질적 참 뜻은 “영적인 부자”를 뜻합니다. “영적인 부자”란 것은 “비 진리”를 “진리”로 착각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곧 “영적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비 진리”인 “신학”을 “진리”로 착각하고 먹으면 반드시 죽는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잔뜩 배불리 먹고 나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영적부자”인 것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거짓을 진리로 착각하는 “영적부자”들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영적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처음에는 큰 자(교만)로 시작해서 말씀이라는 맷돌로 잘 갈아서 깨어지면 가루 같은 작은 자(겸손) 존재가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작은 자”들이 너희들보다 먼저 당연히 “바늘귀”를 통과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네 “육적”인 존재가 점점 작아져야 “영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깨끗지 못한 자는 버려둠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그동안 잘못 받은 더러운 마음의 밭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말씀 속에 감추어진 영적인 “보물”의 비밀의 가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깨끗이 씻어 하나님의 “보물”을 발견한 자는 그 때부터 이웃의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주어 죽은 영혼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기독교 목회자의 “신학”교리를 믿고 더러운 마음의 밭을 깨끗하게 닦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가 원하는 자는 어느 누구에나 “이자”를 쳐서 돈을 빌려 주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물”을 찾기 원하는 사람은 “생명의 말씀”을 찾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찾고 있는 자들에게 전해주면 “30배 60배 100배”로 자신이 받은 은혜에 “이자”에 “이자”를 더하여 받게 된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반드시 이웃의 죽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이자”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입니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마22:37~40)
이 말씀의 뜻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라는 말이며, 또한 거듭난 자는 이웃의 영혼을 반드시 내 몸같이 구원시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낳고, 낳는 “씨”의 본질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참고) 필자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고 이해를 하신 분이 계시다면 간단한 소감 한마디를 메일로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kaat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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