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440

오늘날 기독교는 노아홍수 때와 같다.

마 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는 시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현재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노아의 홍수 때라고 하면 기독교인들이 의아해하겠지만 유대교 예수님 때에도 예수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라고 하셨듯이 오늘날도 노아의 홍수 때로 물(말씀)이 차고 넘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영적인 양식과 물(말씀)이 부패되고 오염되어 먹고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

내 백성아 거기서(기독교) 나와라,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하는 이 글을 읽으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지금 듣지 못하시는 기독교인들은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될 것이며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을 지옥문 앞에서 다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 말씀을 글자로만 읽지 마시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깊이 묵상을 해 보시기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은 불신자들이 아닌, 기독교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죄(罪)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은 하면서도 말씀은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죄라는 단어는 원어로 하마르티아 잘못된 증거, 과녁을 잘못마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죄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서 성경을 자기 기준의 지식이나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며 잘못된 증거를 하거나 ..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신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잘하시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당연한 말씀으로 이해를 하십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이 본 문장의 말씀을 근거하여 당연히 소득의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들은 교회의 재정이 부실할 때는 주로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다 저축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께서 “비유”로 깊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버린다.

요한복음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포도나무로 하나님은 농부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은 모두 “비유비사”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만 “비유”가 아니라 성경전체의 신구약이 일상용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도 모두 “비유비사”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

야곱의12아들, 12지파, 12제자의 영적의미

성경에 “12”이라는 숫자가 야곱의 “12”아들과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말하며 이 숫자들은 장성한 자로 거듭난 자를 말하며 하늘의 수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라는 것도 “12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의 숫자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12”수는 하늘의 수이며 하늘조직을 수치 화시켜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천사의 조직을 “12”천사로 말씀하십니다.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께서는 “12 영”즉 “12”그룹으로 이뤄진 천사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12 영”더 되는 천사라는 말은 모든 천사를 동원할 권세가 있음을 표현하신 말씀입..

이 땅에 2/3는 멸망하고1/3은 구원을 받는다.

스가랴 13:6-9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 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세아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그 앞에서 살리라, 눅 13:32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상기 본문의 말씀들은 무슨 뜻인가? 하루 이틀 삼일을 무엇을 비유하며 삼..

노아는 방주를 왜 산(山)에다 만들었을까?

노아가 건축한 3층으로 된 방주는  신앙의 차원과 영적인 상태에 따라  1층에는  애급을 상징하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사는 곳이며, 2층은  광야를 상징하는 짐승들이 사는 곳이고, 3층은  가나안을 상징하며 여자와 남자들 노아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을 말합니다. 노아가 건축한 방주는 배를 말하는데 배는 바다나 강에서 운행을 하기 때문에 배는 반드시 물이 있는 곳에다 건축하며 산(山)에다 배를 건축하는 사람은 노아가 지은 방주 외에는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산(山)에다 건축을 한 것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배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방주(교회)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바다에 건축하는 배는 세상에 애급교회를 말하며 육지에다 건축하는 배는 기독교를 탈출한 광야교..

사도바울은 왜 자신의 지식을 배설물로 버렸는가?

사도바울은 계시를 받기 전에는 유대교 가말리엘 최고학부를 나온 성경학자로서 율법의 행위로는 전혀 흠이 없는 완벽한자로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다메섹에서 비몽사몽간에 계시를 받은 후에는 자신이 소유한 신학의 학문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신학배경을 "배설물"로 버렸다고 고백합니다(빌3:8) 하나님의 말씀은 학문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낳으면서 “계시”를 받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이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

노아가 건축한 삼층으로 된 방주,

“노아”가 건축한 "3층"으로 된 방주는 신앙의 차원과 영적인 상태에 따라 "1층"에는 "애급"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에 사는 기독교인들의 영적상태에 있는 "물고기"들이 사는 곳이며 "2층"은 기독교에서 "출 애급"(탈출)한 "광야"를 상징하는 "각종짐승"들이 사는 곳이고 "3층"은 "가나안"을 상징하며 "여자와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노아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을 말합니다. “노아”가 건축한 방주는 배를 말하는데 배는 바다나 강에서 운행을 하기 때문에 배는 반드시 물이 있는 곳에다 건축하며 “산”에다 배를 건축하는 사람은 “노아”가 지은 방주 외에는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산”(山)에다 건축을 한 것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배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