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 전생과윤회

※ 불교에도 신(하나님)이 존재한다는데 ? ※

제라늄A 2018. 8. 2. 17:28

   

 

 

 

                                   ※  불교에도 신(하나님)이 존재한다는데?  ※  

 

불교에 신() 곧 하나님이 존재한다는데 사실일까? 만일 불교에도 신(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불교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도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데 불교에 신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분이 타 종교인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라면 불자들은 어찌 할 것인가?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후 지금까지 신이 없다고 신()을 부정해오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령(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하나님)없이 자각(自覺)에 의해 부처로 태어나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부모가 없이 태어났고 부처님은 하나님 없이 태어났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제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부처님이 말씀하고 계신 신의 존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 

불교에도 신(하나님)이 존재할까? 아니면 거짓일까?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불자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신(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 곧 하나님이 계시지 않거나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올바로 모른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알려면 신()을 알기 전에 먼저 자신의 존재부터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인간은 신(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신의 존재보다 먼저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존재는 어떤 존재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생(人生)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수명(壽命)이 다하여 죽기까지의 삶을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시차(時差)가 있을 뿐 빈부(貧富)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모두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덧없이 살다가 무상(無常)하게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왜 살고 있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질문해보면 올바로 알고 답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富貴榮華) 즉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거나 권력을 잡아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가며 행복하게 잘 살려는 생각뿐 인생의 의미(意味)나 자신의 존재(存在)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의외(意外)로 인생의 의미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關心)도 없이 살아가다가 허무(虛無)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은 짐승들과 다르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지정의(知情意)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존재나 자신의 존재도 모르고 인생의 의미조차도 모르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데만 집착(執着)을 하고 살다가 죽는다면 짐승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自負)하는 인간들이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으며 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사후(死後)에 천국(天國)으로 간다고 말하며 불교인들은 극락(極樂)으로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도 사후에 천국이나 극락으로 들어간다고 말은 하지만 천국(극락)이 어디 있으며 그곳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천국(극락)은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곳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나 극락은 모두 동일한 곳으로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성자(聖者)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고 따라서 천국이 어떤 곳인지 조차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국(극락)은 신앙생활을 한다 해서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만이 들어가는 곳이다.

 

때문에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인생의 의미나 신앙의 의미도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下直)할 때가 되면 모두 불안해하며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인생은 무상(無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이 진정 일장춘몽(一場春夢)이나 잠깐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나 물거품과 같이 무상(無常)한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인생을 알고 보면 무상(無常)한 것도 유상(有相)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인생의 의미조차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죽는 사람은 무상(無常)하다고 말하지만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이 세상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룬 성인(聖人)들은 인생이 그 무엇보다 가치(價値) 있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인생의 가치(價値)와 무가치(無價値)는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온 곳은 어디이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인생의 의미(意味)와 신앙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자신의 존재나 인생의 의미를 올바로 알았다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지만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부처님의 뜻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의 뜻은 어둠가운데 있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죽은 영혼이 부활(復活)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며 부처님의 뜻은 무명(無明)의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해탈(解脫)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부활(復活)이나 해탈(解脫)은 용어(用語)만 다른 뿐 모두 동일한 뜻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에는 지금까지 신()이 없다고 신을 부정하고 있는데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신 후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통해서 자신이 깨달은 진리(말씀)는 시대신주(是大神呪) 곧 참으로 큰 신의 말씀이 라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시대신주라고 하신 큰 신은 어떤 신이며 그 신()의 말씀은 어떤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2. 시대신(是大神)의 실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부처님을 믿는 불자들이 이 세상 살아가는 목적이나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모두 어둠가운데 있는 죽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본래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미완성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어느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세상을 떠날 때도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 갈 수밖에 없는 나약(懦弱)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들이 이 세상에 좋은 환경이나 열악(劣惡)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주(宇宙)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인간들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 불교에는 신()이 없다고 신()을 부정하고 있지만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통해서 반야(般若)는 시대신주(是大神呪), 참으로 큰 신의 말씀이이라 말씀하고 있다.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신 후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통해서 반야(般若) 시대신주(是大神呪), 시대명주(是大明呪),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라 말씀하시면서 시대신은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이시며 진실불허(眞實不虛)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참으로 큰 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시대신(是大神)은 곧 반야(般若)를 말하며 반야(般若)는 곧 창조주 하나님을 화두(話頭)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명주(是大明呪) : 참으로 밝은 빛의 말씀이며 시무상주(是無上呪) : 이 말씀보다 더 높은 말씀은 없으며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 이 말씀과 비교할 어떤 말씀도 없으며 또한 반야(般若)는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 즉 중생들의 모든 고통을 제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진실불허(眞實不虛) 곧 반야(般若)는 모두 진실 뿐 거짓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들이나 불교인들이 부처님과 같은 혜안(慧眼)이 없어 시대신(是大神)인 반야(般若)를 단순히 지혜(智慧)라고만 말할 뿐 신()은 없다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만물을 창조(創造)하시며 인간들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고 계신 시대신(是大神) 곧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들은 물론 자연만물이 일순간도 살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교인들은 지금까지 불교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다고 신(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불교인들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같이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된다면 신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반야(般若)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과 또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은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시대신(是大神)이시며 창조의 주이신 하나님(반야)은 세상의 모든 만사(萬事)를 인과응보(因果應報), 즉 심은 대로 거두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서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것이다. 즉 농부가 봄철에 부지런히 밭을 갈고 곡식을 심어 열심히 가꾼 자는 가을에 추수 할 것이 많아 풍요(豐饒)롭게 잘 살아가지만 나태(懶怠)하고 게을러서 봄에 아무것도 심지 않은 자는 추수할 것이 없어 가난과 고통 속에서 구걸을 해가며 구차(苟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전생(前生)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서 현생에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잘 살기도 하고 열악(劣惡)한 환경에서 태어나 고통을 받거나 장애자(障碍者)로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전생(前生)에 자신이 지은 죄업(罪業)들을 신앙생활을 통해서 날마다 깨끗하게 씻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반야)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예수님(부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내생(來生)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반야)이 계신 천국(극락)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부처님을 믿는 불교인들이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아들(예수,부처)로 거듭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육신의 복을 받아 행복하게 잘살 기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죽어서 천국(극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생(來生)에 지옥과 같은 열악(劣惡)한 환경에 다시 태어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반야)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인간들은 전생(前生)과 현생(現生)과 내생(來生)을 오고가며 돌고 있는데 이를 윤회(輪迴)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교는 전생(前生)과 윤회(輪迴)를 말해오고 있지만 기독교는 전생이나 윤회가 없다고 부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전생과 윤회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이며 대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전생(前生)과 윤회(輪迴)가 있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교황의 권위가 약화된다는 이유로 성경에 전생과 윤회가 기록된 구절들을 모두 제거하라고 명하고 그 때부터 전생과 윤회를 말하는 자는 이단으로 정죄하고 처형하여 기독교에서 전생과 윤회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생과 윤회가 없다면 심은 대로 거두고 선 악간에 심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3. 인간들의 운명과 사주팔자.

역학자(易學者)들은 사람들의 운명(運命)이나 운세(運勢)는 세상에 태어날 때의 사주팔자(四柱八字) 즉 인간으로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 그리고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는 쌍둥이도 운명이나 운세가 각기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이 동일하게 태어나는 아이도 분과 초가 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태어날 때 주어지는 운명(運命)이나 사주팔자(四柱八字)는 모두 전생(前生)에 자신이 지은 업(), 즉 죄의 질()과 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운명(運命)이나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전생에 자신이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지는 것이지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믿는다 하여 좋은 곳에 태어나거나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현생에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 썩어질 것들을 심으면 내생에 썩어 없어질 것들을 거두어 지옥으로 들어가지만 현생에서 욕심을 버리며 영생을 위해 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생은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 말을 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세상에 빈손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 빈손으로 떠나간다는 것인데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빈 쭉정이로 태어나 살면서 알곡이 되지 못하고 다시 빈 쭉정이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은 잘하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텅 비어있는 자신 안을 하나님의 말씀(진리)으로 채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하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세상의 욕심만 채우다가 떠나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부처님을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 해도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지옥문 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자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억울하고 분해서 지옥문을 붙잡고 이까지 갈며 슬피 울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세상에서 교회를 다닐 때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모두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막상 죽어서 들어간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에 목사님에게 속은 것을 알고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여 이까지 갈며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구원의 과정과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과정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목사님의 말씀 곧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사후에는 모두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도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과 창조(創造)의 과정은 성경뿐만 아니라 불경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

 

4.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흙으로 빗어 만드신 인간은 첫 아담으로 영(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에 속한 혼적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육에 속한 첫 아담을 영에 속한 둘째 아담(예수)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육일 동안 창조를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육적인 첫 아담이 영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려면 육일 곧 여섯 과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를 받아야 둘째 아담인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육일창조는 흙에 속한 육신의 존재가 영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데 여섯 과정은 물고기가 기는 짐승으로 기는 짐승이 걷는 짐승으로 걷는 짐승이 육축으로 육축이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된다는 것을 비사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은 무명의 중생이 부처가 되는 과정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부처님은 불경을 통해서 부처가 되는 과정을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 말씀하고 있는데 육바라밀은 무명(無明)의 중생이 지옥계(地獄界)에서 벗어나 아귀계(餓鬼界)와 축생계(畜生界)와 수라계(修羅界)와 인간계(人間界)를 거쳐 천상(天上)에 올라가 부처가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부처님이 말씀하고 있는 육바라밀은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말씀하고 있는 육일 창조와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나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용어만 다르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 각기 자신들의 하나님과 자신들의 부처님을 만들어 놓고 자기 종교만이 참이라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육일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거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육바라밀의 과정을 통해서 부처가 된다면 이런한 비밀들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모두 하나님이 계신 천국(극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본래(本來) 하나님(반야)께서 흙으로 만든 피조물(被造物)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반야)의 말씀을 통해서 창조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도 모르고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하면 즉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러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첫째 나를 믿어야 하고 둘째 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셋째 내가주는 산 떡을 먹어야 하고 넷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며 그리고 천국은 침노를 하듯이 침노를 해야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둘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 즉 예수만 믿으면 누구든지 쉽게 아들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멸망의 길이며 또 한길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정해놓으신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눈물 없이 피 없이는 못가는 힘든 길이다.

 

이 생명의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길로 애굽 신앙에서 벗어나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 불과 구름 기둥아래서 만나를 먹어가며 율법을 통한 시험과 연단을 받은 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수십번씩 읽고 쓰기도 하면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과 영생의 길을 모르고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목사님의 말씀만 믿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후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들어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지금도 구원과 영생에는 관심조차 없이 예수님과 부처님을 통해서 복을 받아 잘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기복(祈福)신앙으로 전락(轉落)한 오늘날의 기독교와 불교 

오늘날 무속(巫俗) 종교는 물론 기독교나 불교도 구원과 영생에서 벗어나 모두 기복(祈福)신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나 불교나 하나님의 뜻이나 부처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기복(祈福)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하루속히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리고 자신의 존재(存在)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인간들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主管) 하고 계신 하나님(반야)은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며 또한 미완성(未完成)된 자신을 하나님(반야)의 아들로 창조해가는 것이 신앙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세상의 복을 받아 잘 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반야)의 뜻대로 미완성(未完成)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하여 영원한 천국(극락)으로 들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부처님을 믿는 불자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잠시 있다가 모두 사라져 버릴 육신의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삯꾼목자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천국에 들어간다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으며 스님들은 중생이 곧 부처라고 불자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삯꾼목자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 문을 닫아놓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자들이다. 이런 삯꾼목사들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삯꾼목사들은 "구원과 영생의 예수님""기복의 예수"로 둔갑(遁甲)시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면 드린 손길위에 하나님께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축복해 주신다고 교인들에게 욕심을 불어넣으며 스님들은 부처님께 시주(施主)를 하면 만사형통(萬事亨通)과 운수(運數)대통(大通)의 복을 받게 된다고 불자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렇게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으며 스님들은 부처님을 빙자(憑藉)하여 자기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목사님들이나 스님들은 교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구원조차 시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낳을 수 있는 권세(權勢)는 하나님께서 오직 오늘날 살아계신 예수님과 오늘날의 생불(生佛) 곧 살아계신 부처님께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해야하며 불교인들은 오늘날 살아계신 부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철저히 믿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예수나 부처는 믿지 않고 오히려 이단(異端)이라 배척(排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보내주시는 살아계신 구원자을 믿지 않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은 물론 구원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교인들과 불자들을 구원할 예수님과 부처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항상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6. 오늘날 살아계신 예수님과 부처님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예수님은 이 천년 전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구원자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오늘날 불자들을 구원할 부처님도 전에 오셨던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나 법당(法堂)에 모셔놓은 불상(佛像)이 아니라 오늘날 성불(成佛)하여 오시는 생불(生佛) 즉 살아계신 부처님이다. 왜냐하면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분이며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 역시 당시의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자들을 구원할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보내주시는 예수님과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는 지금도 오셔서 우리 곁에 계신데 기독교인들은 영안이 없고 불자들은 혜안이 없어서 보지 못하고 아직도 오시지 않았다고 기독교인들은 재림예수를 기다리고 있으며 불자들은 다시오실 미륵불(彌勒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자들은 예수님과 부처님을 통해서 복만 받으려 하지 말고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 곧 오늘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부처님을 구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를 만나게 해주실 것이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자들이 오늘날 살아계신 구원자를 찾아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된다면 인생(人生)은 무상(無常)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가치(價値) 있고 소중하다는 고백(告白)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부처님을 믿고 있는 불교인들은 기복신앙(祈福信仰)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하나님(반야)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준비한 자들은 죽을 때 인생은 무상(無常)한 것이 아니라 인생처럼 가치(價値) 있고 보람된 것은 없다고 말할 것이며 또한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가 아니라 공수래(空手來) 유수거(有手去)”, 즉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라는 분의 묘지에 가보면 비문(碑文)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비문(碑文)에는 자신의 경력이나 공로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버나드쇼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도 알고 신앙의 의미도 알고 하나님의 뜻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세상일이 너무 바빠서 우물쭈물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버나드쇼는 자신의 묘소를 찾는 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세상일에 잡혀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와 같이 허무하게 죽지 말라는 뜻으로 유언(遺言)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나드쇼와 같이 이 세상일에 사로잡혀서 살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비문을 보고 있는 나는 지금 버나드쇼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버나드쇼와 같이 공감(共感)을 한다면 이제 부터라도 인생의 삶을 조금씩 바꾸어 가야하지 않는가?. 그러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소망에 찬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기록자는 이글을 청종(聽從)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 곧 하나님의 아들(예수님, 부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모두 천국(극락)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록한 것이다.

 

20177월 중국 소흥에서 도암

2.018. 8. 1.    라일락님으로 부터 온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