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핍박을 받는 자와 배고픈 자가 복이 있다 ”
도마복음 69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 안에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알게 된 것이다. 배고픈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 배가 원하는 것이 채워질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안에 핍박을 받는 자가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알게 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핍박하는 자는 누구며 핍박을 받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이 말씀은 양면으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핍박과 하나는 진리의 길을 가는 자 몸 안에는 항상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두 존재가 자신의 몸 안에서 서로 핍박을 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빛”(선)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어둠”(악)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빛과 어둠”을 혼재된 상태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빛과 어둠”이 반반씩 뒤섞여 혼재된 몸체에서 “빛(선)의 하나님이 어둠(악)”하나님을 이겨가야 하는 창조이므로, 혼재된 자신의 몸 전체를 투척하여 혼재되지 아니한 “빛”만의 하나님으로 창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빛과 어둠”이 반반이므로 “빛이 어둠”을 떨쳐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빛(선)과 어둠”(악)의 존재는 인간의 내면 상으로나 외면상으로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내면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상기의 말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 몸 안에서 “선한 영과, 악한 영”이 대적을 하며 서로 핍박을 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선”이 “악”에게 질책을 받으며 핍박을 받는 자가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선”에 의해서 “악”의 존재가 죽어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육의 “어둠”의 존재는 “악”이며 욕심과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어둠”의 “악”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더러운 존재 안에는 들어가시지 않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러한 “어둠”에 속한 “악”한 존재이며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말씀)의 의해서 날마다 육신을 쳐 복종시켜 죽어야 하나님을 알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육신을 쳐 복종시키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로마서 7:21~24 내가 한 법을 깨달았나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사도바울도 육신의 몸을 가졌기에 매일매일 “육신의 악한 존재”를 쳐 복종시키며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이며 신앙의 길이며 나의 육신의 “혼”의 존재가 죽어야 “영”의 존재로 부활(거듭)하는 것입니다.
“빛(선)과 어둠(악)”은 항상 대립되어 있는 대적관계로 “빛과 선”은 “어둠과 악”을 감싸려하지만 “어둠과 악”은 “빛과 선”자체를 싫어하며 핍박합니다. 2000년 전 “빛과 선”이 되신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오셨으나 “어둠과 악”의 유대인들은 “빛과 선”을 배척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 오면 “어둠”의 정체가 벌거벗은 것과 같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둠”들은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빛”자체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 “어둠”들은 말로는 “빛”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빛”보다 “어둠”인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는데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찾고 좇는 자들은 “빛”에 속한 자들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빛”이 좋아 점점 “빛”으로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의지를 버리고 참 목자를 따라 진리를 좇아가는 자는 구원과 영생이지만 자기 의지를 가지고 삯군 목자를 따라 “비 진리”나 기복을 좇아가는 “어둠의 악한”존재들은 모두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화”를 겸하여 주시며 “사랑”을 주시되 “미움”도 함께 주시고 “행복”을 주시되 “불행”을 겸하여 주시며 “건강”을 주시되 “병”도 함께 주십니다. 왜냐하면 “화”를 당해야 “복”의 소중함 알고 “미움”을 받은 자가 “사랑”을 알며 “불행”을 맛본 자가 “행복”을 알고 “병”이 들어야 “건강”의 귀중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자가 음식의 고마움을 알듯이 “지옥”을 가보지 않고는 “천국”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둠”도 모르는 자들이 어찌 “빛”을 알겠습니까?
그리고 본문 말씀에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진리의 길을 따라가는 자는 오늘날 기독교는 “비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를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에게는 기독교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이들이 “이단”에 빠졌다고 “핍박”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기독교를 탈출해서 기독교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독교인들에게 “핍박”이 없다면 진리의 길을 가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배고픈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 배가 원하는 것이 채워질 것이다” 이 말씀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의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이 무슨 먹고사는 양식 때문에 굶주리며 배가 고픕니까? 육신의 양식 때문입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육신의 양식에 굶주린 자들이 복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육신의 양식을 진수성찬으로 채워주는 자라면 진정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으로 “배고픈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 배가 원하는 것이 채워질 것이다” 즉 진리의 말씀이 없어 갈급하여 애통하는 자에게 하늘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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