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해설

1.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제라늄A 2018. 12. 19. 21:55

 

 [주기도문 해설집]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1) 하늘에 계신(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

 

상기의 말씀은 주기도문에 제일 처음 시작되는 말씀으로 하는에 계신 말씀에서 하늘의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문장에서 하늘이 영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하늘이 과연 어느 곳을 말하는지를 모르면 주기도문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이천년의 역사 속에 지금까지 신학자들이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늘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확실하게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 기록된 하늘에 계신을 원문을 직역하면 하늘들 안에 계신이다. 왜냐하면 개역성경에 기록된 하늘에 계신을 원문에서 찾아보면 전치사 안에(엔)와 복수명사 하늘들(우라노이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원문으로 직역하면 "하늘들 안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다. 즉 하나님은 바로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문제와 더불어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며 시공을 초월해 계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하늘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하늘을 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원문을 찾아보면 하늘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복수로서 하늘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하늘은 어디 있는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하늘이나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면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저곳이 하늘이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을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 푸른 창공 어딘가에 계시다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이나 하나님께서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하늘의 영적인 의미를 모른다면 주기도문의 뜻은 물론 성경도 이해할 수가 없다. 문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영적인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땅에속한 존재)은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비밀을 알 수도 없지만 올바른 뜻을 알려 주어도 이해하기조차 힘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야 성경에 감추어진 영적인 비밀들과 하나님의 참 뜻을 알 수가 있고 천국으로 가는 길도 확실히 알게 된다.

 

이제부터 주기도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과 땅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통하여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과 땅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주로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1장 1절-3절]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상기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면 하늘은 푸른 창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자들 즉, 예루살렘과 유다를 말씀하고 있으며 귀를 기울이라는 땅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만일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이라면 하늘과 땅이 귀가 있다는 말이며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하늘에 무슨 귀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또한 땅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하늘과 땅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영에 속한 존재들은 하늘이라 말하며, 아직 혼이나 육에 속한 자들은 땅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이나 땅은 푸른 창공이나 지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두 인간의 존재들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육하셨는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에 슬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소도 주인을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고 한탄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유다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목회자와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하늘이라 말씀하시며 땅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양육하신 목회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또한 짐승들과 같이 하나님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부하고 있는 목자나 기독교인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하늘이나 땅의 영적인 의미도 모르고 있다면 바로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땅들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와 비사로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영적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땅은 첫 사람 아담을 말하며 하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둘째 아담을 말하는데. 성경이나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하늘은 곧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육으로 난 자들은 모두 땅이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49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바 첫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이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는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땅은 육의 몸으로 난 자 즉 흙에 속한 자들을 말하며 하늘은 하늘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과 또한 그 아들들에게 속해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계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는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자신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뜻이며, 예수님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상기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성전이나 교회는 사람들이 손으로 지은 건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님 자신을 하나님의 교회 즉, 성전이라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나 교회 건물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너희 안에 즉,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엿새 동안 창조를 받은 후 하나님(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안식하고 계신 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늘들이다. [시편 19편 1절-4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상기의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면 저 푸른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창공)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또한 날이 사람과 같이 말을 하며 어두운 밤이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하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고 궁창은 그리스도를 비유하여 말씀한 것이다. 또한 날은 빛에 속한 자들을 말하며 밤은 어둠에 속한 자들을 말하고 있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하는들은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 말씀하시는 즉,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실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계시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자들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하늘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며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하늘로 창조를 받아야 할 땅들이 이 기도를 해야 할 대상이 바로 하늘 안에 계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땅들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계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땅들은 기도를 할 때 반드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2) 우리 아버지여  (파테르 헤몬)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 꺼리낌 없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독생자라 말하고 있다.독생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예수님 한분 뿐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가? 그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은 친자는 아니지만 양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많은 아비들이 있고 그에 따른 자녀들도 많이 있지만 자녀들이 그의 부모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반드시 그 부모가 그의 씨로 낳아 주고 길러준 아들만이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자신을 낳지도 않고 길러주지도 않은 다른 부모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예외의 경우가 있는데 자식이 없는 집안에 양자로 들어간 양자가 양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경우이다. 그러나 양자로 들어간 자식이 양아버지를 아무리 잘 섬기며 오랜 세월 동안을 우리 아버지라 불러도 양아버지는 양아버지일 뿐 절대로 친아버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관계는 반드시 생명인 씨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음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로마서 8장 15절에 기록된 "양자의 영"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는 아들의 영은 받지 못했지만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자라는 단어는 번역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서 8장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상기와 같이 개역성경에는 분명히 양자의 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문성경에 양자의 영은 "프뉴마 휘오데이아스라는 단어로서 양자라는 단어는 휘오스(아들)라는 단어와 티데미(놓다, 두다, 정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진정한 뜻은 "아들이 된"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양자의 영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자의 영을 말하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을 직접받지 않았다 하여도 예수님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로마서 8장에 양자의 영으로 기록된 단어는 사람들이 아들의 영을 양자의 영으로 잘못 번역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의 영은 오직 예수님 안에 계신 성령을 말하며 성령 이외에는 또 다른 양자의 영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 안에 계신 성령 이외에 또 다른 영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악령이거나 귀신의 영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으로브터 성령으로 잉태 된 자나 예수님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 피조물의 상태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단지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의 종이나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주님"이라 불러야 하며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러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 세상에서도 하인이나 종들이 그들의 주인을 보면 우리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절대로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종들이 주인을 보고 우리 아버지라고 브른 다면 주인으로부터 엄한 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주님이라 부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유대인들은 십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에도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주님(아도나이)"으로 바꾸어 읽고 있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또한 애굽교회에서 나와 광야교회를 거쳐 가나안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려면 출애굽을 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면 그때 비로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신 "우리" 과연 누구일까?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는 유대인들인가? 아니면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인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또한 그 아들과 함께 있는 자들이다. 즉 주기도문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칭대명사에도 인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인칭대명사는 일인칭 복수인 "우리"와 이인칭 "너희"와 삼인칭 "저희"가 있는데 너희와 저희에 속한 자들이 우리라고 착각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5장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상기의 말씀에 "나는" 참 포도나무인 가리키는 말이요, "너희"는 가지인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우리"는 포도나무(예수님)와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제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자들 즉, 들포도나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있는 자들이 우리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품안에 함께 있는 제자들을 말하며 너희나 저희는 예수님의 품밖에 있는 자들을 말한다.

 

성경을 보면 세 종류의 교회가 나타나 있는데 하나는 애굽(세상)에 머물면서 바로왕을 섬기며 교리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세상교회가 있고 또 하나는 출애굽을 하여 광야로 나와 모세를 따라 율법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의 광야교회가 있다. 마지막에 등장되는 세번째 교회는 광야의 교인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진리 즉, 생명의 말씀을 먹고 있는 가나안 교회이다. 이 세 교회들은 각기 영적인 수준과 그 차원을 말하는데 아직도 세상교회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모세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야 할 피조물들이요 광야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며 "너희"는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서 모세로부터 훈련을 받고 있는 종들이며 "저희"는 아직도 애굽 땅에 머물면서 각종 교리와 세상목자들에게 속해 있는 자들을 말한다. 

 

이와 같이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기도하라는 "너희"는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오늘날 애굽의 교리신앙에서 벗어나 광야의 율법을 통한 훈련을 모두 마치고 은혜와 진리가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을 우리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가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는 분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때문에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성부하나님)안에 있는 하늘들(성자하나님)이 땅(땅에속한 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것이다.  ("육천년 동안 창세기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에 잘 기록되어 있음)

 

그러므로 땅에 속한 자들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즉,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이름만이 영원토록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셔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조금이라도 가감하거나 오염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어지는 말씀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