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은 성경을 깨닫는 지식으로 얻는다 ”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은 모두“신, 구약”이“비유비사”의 말씀으로“안과 밖”(계5:1)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인 눈이 없으면“성경”에 기록된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지식”을 직접“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잠언 11:9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시 119:144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신앙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지식을“깨닫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성경“은 내 영혼의 양식일진대 나의 소유는 하나님의 말씀이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 보고“깨닫게”하려 하심입니다. “깨달아야”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깨닫지”못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일이 됩니다”(롬10:2-3) 신앙인이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 가까이 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참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이“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 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성경“을“깨닫는”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성경“을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성경“을“깨닫지”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성경“에는“깨닫지”못하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오늘날거짓목사와 교인들을 짐승에“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다(시49:12)하였고, 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시49:20)하였습니다. 사람과 짐승과의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을”성경을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여부에서 구분 됩니다. 짐승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사람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짐승과 사람을 한 날에 지으시고 사람과 짐승을 구분 지우실 때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 늘 읽고 목사에게 배워도 빛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모셔야 할 말씀의 자리에 목사를 모시고 그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성경“에 짐승의 특성을 들어 거짓목사들을 질책하는 것은 진리를“깨닫지”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서 거짓목사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성경“을 주신 목적은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서로 섬기면서 사랑하라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목사의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앞에서는 그 무지가 드러나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실상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깨닫지”못합니다. 짐승처럼 우매한 목사들은 자기 악한 행위가 들어나는 것이 싫어 세상에 오신 생명의 빛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아“성경”을“깨닫지”못하면서도 주의 종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목사의 소리에만 귀를 고정시킴으로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에 목사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목사의 행위가 우매함인데도 오히려 목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49: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에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욥처럼 자기의 우매함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요 5:25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사람에게 듣고 배웠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 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아침마다 듣는 귀를“깨닫게“해주시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예수님은 빛을 싫어하여“깨닫지“못하는 자들에게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 함이니라(마13:13)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깨달음“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13:23)
신앙의 농사는“성경“말씀을 읽고 깨달으면서 결실합니다.“깨닫는 사람”은 순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농사도 식물처럼 생명을 가진“씨“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씨“를 뿌리는 자가 없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땅에“씨“를 뿌리되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결실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일반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영혼의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말씀”의 비를 맞아야 싹이 트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힙니다. 저절로 농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성경“말씀을 깨우쳐 줄 성령이 함께 한”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목자“라고 다 성령이 함께 한”목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먼저“깨닫는 자“라야 합니다.“깨닫는 자”가 깨달은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자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절대로 잉태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성경“말씀을“깨닫도록”가르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렇게 성령께서 가르치심으로“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안에서 가르치시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강조 하십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말씀을 가르쳐서“성경을 깨닫게“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모해야 할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입니다. 기름 부음이 없으면 “깨닫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매한 기독교거짓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들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은 절대로“성경을 깨닫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가르치심보다. 훨씬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선악과”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주의“성경“말씀을 즐거워하여 깊이 읽고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 깨닫는 것“이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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