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상기의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위해서 살고 신앙생활도 “자기 생명”을 위해서 하며 천국도 “자기 생명”을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며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히 보존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수 없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로 부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고 “둘째”는 내 이웃을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마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이란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나면 이웃을 내 몸같이 구원해야 내가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 말을 믿고 나를 따르는 자가 곧 나를 섬기는 자이며 내 말을 간직하고 있는 자는 곧 나와 함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나를 섬기는 자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며 내 말을 지키는 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잘 섬기는 자를 귀히 여기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생명이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 생명이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으로 죽고 육신으로 사는 일이 아니고 현재 살아있는 우리의 육신의 잘못된 “자아”(自我)가 죽고 사는 일을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영) 안에서 죽고자 하면 말씀(영) 안에서 살게 된다는 뜻이며, 또한 "육신적으로 살고자 하면 육신 적으로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에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몸 안에 기독교 목회자의 “비 진리”의 “신학”의 말씀으로 잘못 건축한 자신의 성전을 헐지 않으면 즉 죽고 “비 진리”의 성전을 헐어버리고 “실존 예수”의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하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기독교의 “비 진리”의 “신학”의 말씀으로 잘못 건축한 자신의 몸 된 성전을 헐어 버리면 진리의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하면 다시 살게 되고 2000년 전 예수님을 믿음으로 계속 살고 있으면 오늘날의 예수님의 진리의 새 말씀에서는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예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요2:18-19)는 말씀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 안에 “비 진리”로 잘못 건축한 자신의 성전을 헐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하면 너희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에 기록한 2000년 전 예수를 믿어서 건축한 자신이 성전을 헐고(죽고) 오늘날의 “실존 예수”의 복음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해야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죽어야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 살 수 있습니다.“물세례”에서 죽어야지 “성령세례”로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처음 자기 생명에서 죽기를 무척 두려워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그것이 생명 줄인 줄 알고 붙잡고 있지만 반드시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2000년 전유 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를 열심히 믿기만 하면, 구원은 이미 받아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 믿으면 구원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의식화되어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신구약 모두 “안팎”으로 “비유 비사”(계5:1)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어야 산다고 했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처음 것에서 배부른 자로 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날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서 받은 거짓된 신앙에서 반드시 죽어야 그 안에는 반드시 다시 살게 되는 진리의 말씀이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비유“를 위해 본질이 있음이 아니고 본질을 위해 “비유”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을 위해 영생이 있음이 아니고 영생을 위해 죽음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비유”는 죽이는 것이고 본질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는 사망이요, 나중은 영생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상기의 본문의 말씀 같이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