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자기 생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생하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의 목적은 순간적인 삶을 살다가 불티처럼 사라질 천박한 “육의 생명”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생명”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의 “육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의 생명”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육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육신적인 소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죽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가 원하는 소욕 즉 “자아”(自我)를 죽이라는 말씀입니다.“자아”가 범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니 “영”으로 부활하신 것은 형상이 없는 우리 소욕의 죽임을 육체로 대신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구원의 노정을 모르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은 우리의 소욕을 죽여야 할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니 우리도 예수님의 믿음을 따라야 할 것을 먼저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는 사람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들에게만 천국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영혼의 생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세상의 물질적인 복이나 육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결국 진리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은 오히려 불신자들이 원하는 육신적인 복을 준다고 교회당에 가득 채우려는 데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삯꾼 목자는 짐승의 "씨"를 뿌려서 짐승을 낳고, 선한 목자는 사람(예수)의 “씨”를 뿌려서 사람을(예수)낳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절대로 예수님의 믿음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죄 덩어리인 육체를 십자가에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 지내버리고 예수님의 “영의 생명”으로 부활해서 영생에 이르러야 하는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자기 “육의 생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영의 생명”도 받으려 하기 때문에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끝마다 영광을 말합니다. 영광은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영의 생명”으로 부활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영광이란 단어를 얼마나 남용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말씀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야 "영광"을 얻는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에 이르는 관문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영생에 이르는 길을 예수를 거울로 해서 우리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비유”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아주 천박한 “신학 교리”를 만들어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천국 복음”을 변질시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그의 서신 서를 해석하여 "예수께서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다 해결해버렸으니 우리는 그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허무맹랑한 “신학 교리”를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을 예로 들어서 구원의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껍질이 썩으면서 그 속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이삭이 맺혀서 결실하여 100개의 열매를 얻었다면 그 중에서 다음 해에 다시 심을 종자를 남겨 놓고 농부가 양식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해에 남겨 놓았던 씨앗을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땅에 심어서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음 해에 다시 심지 않고 그릇에 그대로 놓아두어도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해마다 "씨"가 반복적으로 땅에 떨어져서 껍질이 썩어져야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열매를 맺는 것이지, 한 알 그대로 놓아두면 천 년을 지나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똑같은 사람으로 옛 사람(육체)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죽은 자(영이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셔서 그의 말씀의 "씨"로 열매인 제자들을 낳았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자기 육체(소욕)를 죽여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자기 속에 있는 살아 있는 "씨"를 뿌려서 또 다른 사람들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낳고, 낳고 해서 2천년 동안 반복적으로 자기 옛사람(소욕)을 죽여서 새 생명으로 부활되고, 자기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의 "씨"를 뿌려서 다른 생명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죽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옛 생명만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전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거듭난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잉태시킬 수 없습니다. 고전 10:1-5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는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자기 옛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의 대열에 무임승차한 기독교인들은 자기 옛 사람을 죽일 수 없거든 차라리 교회 다니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눈이 있으나 보지 않고 귀가 있으나 듣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라 하셨다(계9:6) 이 말씀은 자신의 자아가 더욱 완악해져서 자기 소욕을 죽이려고 애를 써도 죽음이 피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그 껍질(육신)이 깨어지고 그 안에 씨눈(영)이 나와 자랄 때에 많은 열매들을 탄생시킵니다. 그런데 이 열매들은 한 알의 밀(예수)과 똑같은 성분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이실 때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셨지만, 밀알처럼 죽고 부활하셔서 얻은 열매들인 제자들에게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으로 내 형제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다 이와 같이 한 알의 밀에서 똑같은 많은 밀알(아들)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으셔서 많은 열매를 내시므로 맏아들이 되시고, 그가 낸 열매들은 예수님과 동등한 형제의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예수께서는 “맏아들”이 되시고 그의 제자들은 “차남”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그로부터 연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1:3-4) 우리도 육신으로는 조상의 혈통에서 났지만,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은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4-15) 사도바울이 말한 대로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아비는 한 명도 없고 스승은 태산을 이룹니다. 예수님과 적대 관계였던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의 이름만 가지고 있었지 하나님의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아비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서 썩어질 "씨"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통해서는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혹독하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베드로는 자기 생각대로 충성스러운 말을 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옛사람과 거듭난 사람의 차이입니다. 거듭나기 전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베드로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