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 전생과윤회

※ 기독교“6일 창조”와 불교“6바라밀 창조” ※

제라늄A 2020. 12. 8. 22:16

“기독교의 6일 천지 창조”와 “불교의 6바라밀 창조”는 용어만 다르지 내용은 똑같습니다. 기독교의 “6일 천지창조”는 창세기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문자 그대로 만물 창조로 해석을 하지만, 불교의 “6 바라밀 창조”는 불경에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것은 만물 창조가 아니라,“비유로 땅에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6 번”거듭나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6 바라밀 창조”를 확실히 이해를 하면 창세기 “6일 천지 창조”가 만물창조가 아니라,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지 못한 인간세상의 어둠의 존재를 바다에 물고기나 짐승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의식과 용어는 다르지만 진리는 똑같은 종교이다 ※ 

욥기 12:7-8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와 같이 어둠가운데 있는 세상의 존재를 “비유”로 짐승이나 물고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천지창조”도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까지의 창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 각종 짐승들은 인간을 “비유”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육일 천지창조여섯 단계”로 되어있는데 “물고기, 기는 짐승, 걷는 짐승, 가축, 여자, 남자”를 지으신 것을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서를 나열한다면 “첫째 물고기”상태에 있는 자는, 기는 짐승으로 거듭나야 하고 “둘째 기는 짐승”에서  걷는 짐승으로 거듭나야 하고, “셋째 걷는 짐승”에서는  가축(양)으로 거듭나야 되고,“넷째 가축”은  여자로 거듭나야 되고,“다섯째는 여자가 거듭나 남자”까지  이렇게 “여섯 단계”를 성장해야 하는 것이  창세기의 “육일 천지창조를 대략 나열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육일 천지창조여섯 번거듭나는 것을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육바라밀창조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육일 창조와 똑같이 동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육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신다는 뜻은 <지옥>에 속해 있는 존재를  하늘 <천국>에 속한 존재로 창조하는데  육일(6단계)이 소요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육바라밀”은 “지옥계”(땅)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6번”과정을 통해 “천상계”에 올라 부처 <남자, 아들, 예수>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께서 해탈 <부활>하여 부처님(예수)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행을 겪으며 “정진수행”<연단>을 하였는데 그 과정을 “육바라밀”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생들 <인간들>이 “육바라밀”을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이유는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모두 동일한 세상이 아니라, 어둠의 영적 존재들이 상태와 차원에 따라 “6단계”로 나누어진 세계 즉 “6계”<6단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6계”는 <6단계의 상태>의 세계를 말하는데 "첫째 지옥계, 둘째 아귀계, 셋째 축생계, 넷째 수라계, 다섯째 인간계, 여섯째 천상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처음에 머물고 있는 곳은 생로병사와 번뇌 망상의 고통이 계속되는 “지옥계”인데 지옥에서 벗어나 “천상계”에 올라 부처님(예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바라밀”(6번 거듭)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육바라밀은 첫째 "보시" 둘째 "지계" 셋째 "인욕" 넷째 "정진" 다섯째 "선정" 여섯째 "지혜"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무명의 어둠의 중생들이 지옥”에서 나와 “천상”에 이르러 “부처”<예수>가 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6단계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럼 불교에서 말하는 “6단계를 한 단계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지옥계"(물고기)에서 벗어나는 첫째 길-보시-지옥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지하에 있는 감옥, 고통이 가득한 세계, 현생에 악업을 행한 자들이 사후에 고통받는 곳, 지옥은 땅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뜻으로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안에 갇혀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본래 흙으로 된 땅인데  결국 해탈 <부활>은 “육<땅>에 갇혔던 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자재 하는 존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들은 자신 안에 있는 욕심, 즉 탐(욕심), 진(분 냄), 치(어리석음)때문에 항상 번뇌 망상의 고통과 생로병사의 “윤회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부처님(예수)께서 육바라밀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 지옥”은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자, 즉 현생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어둠의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도 다 같은 지옥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지옥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은 “탐, 진, 치”로 인한 “삼재<세 가지 재앙>의 고통 속에서 지옥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윤회하면서 살고 죽고 또 태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려면 먼저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분냄> <어리석음>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불자들도 악업 <죄>의 근원이 되는 <욕심> <혈기> <무지>를 분명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탐(貪)이란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을 말하는 것이며 진(賑)이란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 즉 “혈기로 인한 “분냄”을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욕심”이 생겨나고 “혈기가 일어나는가 하면 치(痴)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탐심과 성냄 때문에 일어나는데 탐(貪) 진(賑)의 근원이 바로 치(痴)이기 때문입니다. 치(痴)란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리키며 어리석음은 인간의 “무지를 말하는데 “무지는 진리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무지부처님(예수)의 말씀이나 부처님(예수)의 뜻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부처님(예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욕심”을 내고 혈기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예수)께서 이렇게 “무지한 중생들을 가리켜 무명의 중생이라 말씀하시는데  무명이란 빛이 없다는 말씀이며 빛이 없다는 말은 곧 부처님(예수)의 말씀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지옥”이란 진리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악업 <죄>으로 인해 고통받고 살아가는 중생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무명의 중생들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탐(貪), 진(賑), 치(痴)”를 버리고 자비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비심이란 상대방을 이해하고 감싸며 긍휼과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육바라밀”의 첫 단계이며 첫 관문인 “보시행을 끊임없이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고 있는 “보시는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하여 욕심으로 하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가 아니며  아무런 조건이나 사심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을 보시 <베 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아귀계"(기는 짐승) 아귀에서 벗어나는 둘째 길- 지계- 아귀란 단어는 굶주려 음식에 걸신들린 자, 굶은 사람이 미친 듯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면 아귀같이 먹는다는 말을 합니다. 즉 식탐이 많은 자들을 가리켜 아귀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보시행을 마치고 아귀계로 나온 자가 다시 식탐을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옥계”에서 불우한 이웃을 돌보며 아낌없이 “보시를 행하여 아귀계로 나온 자가 다시 식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옥계에서 아귀계로 나온 것은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처님(예수)의 말씀을 찾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귀계에 있는 자들은 육신의 양식에 굶주린 자들이 아니라 부처님(예수)의 말씀이 없어 걸신들린 귀신처럼 갈급한 마음으로 부처님(예수)의 말씀(진리)을 찾아 헤매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진리에 걸신들린 자들을 성경에서는 나그네, 고아, 과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귀계지옥”에서 벗어난 자들이 천상에 오르기 위해 부처님(예수)의 계율 <율법>을 열심히 지키며 수행하는 <훈련> 자들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아귀”들이 원하고 찾는 것은 육신의 양식 혹은 이 세상의 지식이나 부귀영화가 아니라, 오직 부처님(예수)께서 주시는 “계율”<율법>이며 부처님(예수)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뜻대로 수행 <훈련>하는 것입니다.

“아귀<기는 짐승>들이 축생계<들짐승>로 나아가려면 부처님(예수)의 계율 <율법>을 받아 열심히 수행 <훈련> 정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예수)의 계율”(율법)에 따라 강도 높은 훈련과 연단을 받지 않으면 “지옥계에서 탐, 진, 치로 굳어진 마음이 절대로 부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귀들은 삼독 <세 가지 독> 탐, 진, 치를 날마다 버리고 부처님의 계율 <율법>에 따라 수행정진을 하며 살아가는 자 들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예수)께서 아귀계에서 축생계로 거듭나는 길을 지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 축생계"(걷는 짐승) 축생의 탈을 벗는 셋째 길, 인욕 - 축생은 실제 짐승들이 아니라 "축생"의 상태에 있는 중생들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보시를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는 것과 아귀계로 나온 불자들은 부처님(예수)께서 주신 계율 <율법>곧 십계 <십계명>를 열심히 지키며 수행을 해야 아귀계에서 벗어나 축생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축생계의 짐승들이 짐승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축생”의 상태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의 훈련을 통과하여 “축생”의 속성과 성품이 모두 죽어 없어질 때 부처님(예수)의 속성과 성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부분적인 해탈(부활)이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축생들이 축생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되려면 반드시 인욕 즉 모든 굴욕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데 육바라밀을 수행하고 있는 축생들이 참고 인내해야 할 인욕은 그 무엇보다도 오염된 비 진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불자들이나 기독교인들로부터 오는 비난과 핍박을 견디어 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예수)의 오류 없는 진리는  불교나 기독교의 전통과 교리로 만들어진 비 진리와 항상 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직 부처님(예수)의 말씀만을 붙잡고 천상을 향해 달려가는 수행자들은 육신적인 고통을 참는 것보다 비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로부터 오는 각종 핍박과 유혹을 참아 내기가 더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이러한 인욕의 과정을 모두 마친 자라야 비로소 축생”의 탈을 벗고 “수라의 세계에 이르게 됩니다.넷째 수라계(축생) 인간으로 해탈하는 넷째 길, 정진- 수라라는 말은 아수라라는 단어의 준말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라의 뜻은 몸싸움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전도된 몽상과 탐, 진, 치로 인해 일어나는 번뇌 망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육바라밀" 중에 지옥, 아귀, 축생의 삼계를 형이하학적인 육신과 생각의 세계라면 "수라, 인간, 천상의 삼계"는 형이상학적인 정신과 마음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옥, 아귀, 축생”의 존재들은 육신과 생각을 정결케 하는 세계이며 “수라계”부터는 정신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성을 향해가는 수행자들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더불어 세상으로부터 오는 각종 유혹과 싸우기 위해 항상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예수)께서 수라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길이 바로 "정진"입니다."정진"은 정력을 다하여 나아가는 것, 열심히 노력하는 것, 악을 버리고 선을 닦는 것, 앞 만보고 달려가는 것, 모든 생각과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한 생각과 한 마음으로 천상을 향해 진심으로 달려가라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인간계"(암컷, 여자) 천상에 오르는 다섯째 길, 선정- 사람들이 사는 곳, 중생들이 윤회하는 곳, 사람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예수)이 말씀하시는 인간이나 인간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세계를 벗어나 인간으로 해탈된, 즉 중생한 자들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역학자들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각기 자신의 띠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모두 짐승의 띠를 가지고 태어나며, 사람의 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인간들의 외형은 모두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인간 내면의 상태는 짐승들과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불자(기독교인)들은 짐승의 영적 상태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도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으로 중생하였다 해도 부처님(예수)이 되려면 다시 인간계에서 벗어나 천상계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인간은 수라와 천상사이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계에 있는 인간들이 천상에 오르려면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선정"을 해야 합니다. "선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사전에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명상하는 것,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는 것,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 것인데 부처님(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선정"은  부처님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닦아서 고요하고 청정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정"은 조용히 앉아서 참선을 한다 해서 번뇌 망상이 떠나가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말씀)의 빛 즉 부처님(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말씀에 의해서 조금씩 닦아져 정결한 처녀(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정"은 부처님(예수)의 말씀을 화두(비유)로 삼고 주야로 묵상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부처님(예수)의 생각과 마음으로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생각과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예수)의 생각과 마음으로 변화될 때 삼매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해탈(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여섯째 천상계(남자, 아들, 예수) 지혜의 본체가 되는 여섯째 길,  지혜- 하늘의 세계- 반야(하나님)의 세계, 즉 무상 정등 정각(無上正等正覺)의 세계, 육바라밀을 통해서 해탈(부활)하여 성불하신 부처님(예수)들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예수)들이 계신 천상의 세계도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상태와 차원에 따라 각각 그 위(位)가 다른 것입니다.부처님(예수)이 계신 열반의 세계에 1차원에는 관자재 보살님(성자 하나님)이 계시고,  2차원에는 보리살타 부처님(성령 하나님)이 계시며, 3차원에는 삼세제불(성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의식과 용어는 다르지만 불교와 기독교는 하나인데  오늘날 종교계가 타락하여 불교는 “돌팔이 중 놈들”로 “비 진리”로 만연되어있고, 기독교 또한 “삯꾼 목사 놈들”로 온 세상을 “비 진리”로 만연되어 하나님의 영혼들을 모두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한 자들이 사후에 가해지는 형벌은 가히 짐작이 갑니다.

계 18:3-5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하늘에 사무치고 있는 바벨론의 죄 큰 성 바벨론의 죄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는 것이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도록 극에 달하여 있다는 것을 말하며 그들의 죄가 관영하여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 소돔 고모라의 때 유대나라의 때 그리고 마지막 오늘날의 때  그러므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끝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