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3:18-23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위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 떨기 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옥토 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듭나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나는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했다”하여 구원을 받거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여러 과정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기준은 “예수”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그 “기준은 예수가 되어야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상기의 말씀의 “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예수님”이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밭”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비유”합니다. “씨”라는 것은 똑같은 것을 낳고 낳는 원리입니다. 오늘날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 “씨”가 뿌려지는 “밭”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비유”속에 “씨”는 하나의 “씨”이지만 “밭”은 여러 종류의 “밭”이 있는데 상기의 본문에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옥토 밭”이라는 “네 가지 사람의 마음 밭”을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심어지는 “네 가지 사람의 마음 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째 길가의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마귀에게 빼앗기는 자를 말합니다.
“첫째 길가의 밭”의 뜻은 수많은 사람이 밟고 다니므로 단단히 굳어진 땅을 말하는데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각종 “신학”교리 신앙과 기복으로 찌들어 마음이 단단히 굳어진 의식화된 기독교인들의 마음의 밭을 말하며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전해도 바늘구멍만큼 들어갈 틈이 없는 부서지지 않는 굳어진 마음의 밭을 가진 골수분자를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기복으로 굳어져 있고 표적 신앙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세상에 사는 “물고기”신앙이라고 하며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기독교 “목사”의 지배를 받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요지부동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이라는 “애급”에 가서 말씀을 전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대학교수는 대학에서 말씀을 전하지 유치원생에게는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듣지를 못하니깐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돌밭”에 뿌렸다는 것은 “돌”이 기독교인들 몸 안에 들어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돌”같이 굳어져 있는 “첫째 밭”을 곡괭이로 파서 일궈냈으나 그 안에는 “돌”이 많이 있어 즉 “애급”세상 기독교의 “신학”교리와 “기복”으로 생각과 마음이 단단히 굳어져 있는 자들을 깨트려 놓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애급”세상 기독교에서 목사들의 가감된 설교 “간증, 정치, 철학”등을 석어서 가감된 “유교 병”을 먹고 영적으로 조금 성장한 자들이 좀 더 어디 좋은 말씀이 없나 이 교회 저 교회 문전걸식하면서 일단 기독교 신앙에서 “출 애급”(탈출)을 해서 “광야”에서 조금 더 가감되지 않은 “무교병”을 먹고 성장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자들을 “둘째 돌밭”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기독교를 탈출해서 문전걸식하며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잠시 기뻐하나 기독교 목사나 누가 그것은 “이단”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 기뻐하던 말씀을 모두 버리고 “애급”세상 기독교회로 되돌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그전에 의식화되었던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말씀과 새로운 말씀을 공존하며 비교해가면서 신앙생활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돌밭”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다 뽑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받은 누룩 섞인 가감된 “유교 병”은 다 버려야 하고 “출 애급”을 해서 “광야”로 나와서 먼저 가졌던 자신이 소유했던 가감된 “유교 병”을 다 청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의 말씀인 “무교 병”을 자신의 몸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로 나와서 “애급 신앙”에서 받았던 그것을 다 버리느냐 하면 버리지를 않고 어떤 말씀은 그냥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기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갈등을 하면서 그냥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기독교 목사나 누가 그것은 잘못된 말씀이고 “이단”이야 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냥 뒤 돌아 “애급”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둘째 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밭”이나 “둘째 밭”인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하다 거의가 다 “애급”세상 교회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둘째 밭”에서 “셋째 밭”으로 가기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밭은 가시밭”인데 이 “셋째 밭”에 온 자들이 이 비밀의 말씀이 진리며 생명의 말씀이라고 자신이 긍정을 하며 잘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다가 또 어떤 세상의 미혹이나 재물의 유혹을 받으면 이 말씀을 모두 버리고 다시 “애급”세상 교회로 되돌아가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긍정하면서 잘 듣지만 어느 때가 돼서는 주위 환경에 모든 사람들이 “애급”의 세상 기독교인들 뿐이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리”와 “비 진리”가 짬뽕이 되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 이렇게 양면 생활을 하다 결국은 세상 교회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셋째 밭”에 오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것인데 애쓰며 거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조금 더 견디지 못하고 “셋째 밭”에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99,99%는 다 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민족 60만이 “애급”신앙에서 “출 애급”하여 “광야”까지 갔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견디지 못하고 다 멸망당하고 겨우 “2명”만 “갈렙과 여호수아”가 들어간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필자 새사람이 10여 년간 하루에 한 문장씩 매일 글을 올리지만 댓글에 “공감”에 클릭 하시는 분은 현제 “3~4명” 밖에 없다는 것은 현제 필자의 글을 영접하시고 이 말씀이 진리라고 깨달으신 분이 “3~4명”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셋째 밭”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다 뽑아버리고 “옥토 밭”이 되어야 “옥토 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넷째 옥토 밭”에 뿌렸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를 말합니다.
즉 진리의 말씀을 듣고 주야로 묵상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짓된 기독교 목사들에게 미혹되어 주변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깐 “자갈”도 추려내고 “가시밭 엉겅퀴”도 뽑아내고 정말 “옥토 밭”이 되어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니깐 이것을 “넷째 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모르고 있다가 결국 “사탄 마귀”에게 져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탄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99,99%”가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특히 주변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을 주는 대상은 즉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 것도 말씀을 받은 자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는 하지만(엡6:19) 그것은 먼저 말씀으로 자신이 믿음이 뿌리내린 다음에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말씀”으로 인한 시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사탄마귀”가 말씀을 들어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했는데 시험을 받는 것도 “참 진리”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시험이 있는 일이므로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된 후 시험과 핍박이 온다고 하여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은 “사탄 마귀”에게 패하는 것입니다. 예고된 환난에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입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니깐 “자갈”도 추려내고 “가시밭 엉겅퀴”도 뽑아내고 정말 “옥토 밭”이 되어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니깐 이것을 “넷째 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모르고 있다가 결국 “사탄 마귀”에게 져서 말씀을 저버리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성경에서는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고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특히 주변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을 주는 대상은 즉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주변 사람들에 있기 마련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것도 말씀을 받은 자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는 하지만(엡6:19)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의 뿌리가 내린 다음에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말씀”으로 인한 “시험”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4종류의 밭” 중에 자신은 어느 밭에 해당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보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은 지금 어느 밭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지 자신이 깨달아야 구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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