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일창조의...

창세기 6일 천지창조의 일곱 째날의 존재

제라늄A 2021. 3. 12. 22:07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창세기 6일 천지창조”의 “일곱째 날”의 존재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되어 “정결한 처녀”와 같은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를 맺은 후 창조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된 자로서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그 몸 안에 안식을 하시는 것이 제 7일 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 4 계명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천국은 “너희”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 안에 지은 제자들은 천국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서 “안식”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제자들은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일교인”들은 자신들은 지금도 하나님이 지키라는 토요일 날에 “안식일을 거룩히 잘 지키기 때문에 자신들은 천국을 들어가지만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출 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 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유로 기록된 말씀을  오늘날 안식일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으로 보기 때문에 안식일”교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예배를 철저히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안식일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일의 참뜻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잘못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안식일의 “날”을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려고 애쓰고 있으나 “날”을 거룩하게 지킬 수도 없지만 “날”은 거룩히 지킬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일”은 “날”의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이나 거듭난 제자들이 “안식일”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알려면 날”이라는 단어의 영적인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날”은 원문 성경에 “욤이라 기록되었으며  이 뜻은 "존재"라는 의미로  어느 "날"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비유하여 거룩한 "존재"를 "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시 19:1-2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런 것이 인간의 존재성이 아니라면 어떻게 날”이 날”에게 말하며 “밤밤”에게 지식을 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같이 “비유”로 말씀하신 날”의 존재는 “빛”의 존재를 말하며 “밤”은 어둠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라는 영적 존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해서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성전을 만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건축된 성전에만 하나님은 “안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룩하게 간직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키는 “토요일, 일요일은 아무리 거룩하게 지켜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거룩히 지키라는 “안식일의 실체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거룩하게 간직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로 거듭난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된 제자들 안에서 “안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받아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아들들은 반드시 이웃에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또 창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는 농부이며 나는 포도나무이며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5:1-4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이며 내 아버지는 농부이며 제자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그런데 만일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잘라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나무나 가지들이 죽은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유로 감춰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읽으시는 신앙인들은 깊이 생각하시면서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목적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맺게 하시려고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열매”를 맺으려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양”들인 “육 축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 정결한 여자”의 영적 상태가 되어 예수님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참 포도나무"(예수)가 아닌 "들 포도나무"(목사)에게 붙어 있으면 오히려 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과 영적인 차원에 따라 분리한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은 지금 “몇째 날에 머물고 있는 어떤 영적 존재인가를 먼저 자신이 알아야 합니다. 구원과 창조의 시작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향해 “아담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창3:9)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위치를 알았다면 지금부터 새 출발을 하셔야 합니다. 비록 생명의 길이 좁고 협착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들어가려면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하나님이 제시한 “애급, 광야, 가나안” 이렇게 “3일”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창조하는 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창조를 받아야 할 피조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존재인 “물고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모두 “여섯 번”을 한 단계씩 거듭나야 하며 그 기간은 “6일” 즉 "6번"이 걸린다는 것입니다.“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세상 만물 창조로 이해를 하니 상기의 말씀들을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사람이 죽기 5분의 여유만 있어도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천국을 간다고 교인들을 거짓으로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목회자들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간교한 “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되는 과정을 알았다면 하루속히 기독교의 거짓된 "신학"교리 신앙에서 “출애굽”(탈출)해서 “광야”로 나아가 율법을 통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시험과 연단”을 받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 예수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비록 힘들고 험한 고난의 길이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이 길을 걸어간 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좁고 협착한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며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걸어간 길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따라가면서 “물고기”가 “기는 짐승”으로 거듭나고 또 “들짐승”으로 거듭나고 또 “육 축으로 거듭나고 또 여자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때 성령이 잉태하여 일곱째 날 남자의 영적 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땅에 속한 육신의 존재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시기 위해 오늘날도 구원자 실존 예수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 목회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를 자연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기 위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물론 교인들도 이제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를 모두 구속 사적으로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창세기 “6일 천지창조”가 끝나면 “일곱 째날”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안에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안팎”(계5:1)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일곱인으로 봉한 책을 열어볼 사람이 없어  사도 요한이 크게 울고 있을 때  다윗의 뿌리인 “일곱 째날로 거듭난 오늘날 “실존 예수”가 "안팎"으로 기록한 “일곱인을 떼어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실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 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예수)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