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한국 기독교인들은 왜 유대인의 예수를 믿는가?

제라늄A 2021. 5. 18. 21:10

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올 자요 전능한자라 하시더라, "알파,오메가"라는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존으로 영원하다는 뜻으로 예수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에도 계실 것이라고 항상 실존으로 계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예수”라는 두 글자는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구원자”란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구원자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롬 8:29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맏아들이 있다는 것은 차남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열매들은 한 알의 밀과 똑같은 성분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혼자이실 때는 한분이셨지만 “죽은 자들가운데서 부활한 예수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예수들”로 부활하신 후부터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의 유대인의 예수는 유대인이 믿는 예수고  오늘날 한국인 예수는 한국인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유대인의 “예수”나 오늘날 한국인의 “예수”나 미국에서 태어난 “예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전에도 계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전 세대에도 예수가 계셨다고 말하며, 지금도 예수가 계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세대에도 계시고, 장차에도 예수가 오신 다는 것은 우리 후 세대에도 동일한 “예수님이 어느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실존"으로 계셔야 그 나라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실체이신 “예수”가 한 순간이라도 그 나라에 안 계신다면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구원”은 이루어 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 하시려면 반드시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오셔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분이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님"이십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반드시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실존"으로 오신분이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한국기독교인들은 한국인 예수님이 계셔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 1:27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때  창세기에는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예수님들"이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분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실존예수”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실존예수”로 오셔야만 그 나라의 백성들이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실존예수”가 오신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과 같은 목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육체를 입고 오신분이 유대인 실존예수로 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도 반드시 한국기독교인들에게 한국인 “실존예수”가 계셔야만 구원이 성립되는 것이지  2000년 전의 유대인의 예수나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구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늘날 “실존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2000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실존예수님”을 영접 하는 자나 예수를 찾는 자가 한명도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롬 3:10-1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자기네들을 구원하러 오신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해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으며, 오늘날 한국인기독교인들은 한국인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한국인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유대인들과 똑 같이 또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실존예수”보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 서기관, 바리세인"들인 목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오늘날 한국기독인들도 “한국인의 실존예수”보다 기독교목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예수”에 대해서 성경을 통하여 그때 당시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난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13:55-56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 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요 6:42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잘 아는데 네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이렇게 “실존예수”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한 형제들이나 한동네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목수의아들 “예수”를 “구원자라고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같이 예수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실존 예수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사람이 2000년 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나 영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불행한 것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해서 죽인 그 유대인 예수는 잘도 영접을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을 구원하기위해 오신 한국인 “실존예수”는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을 하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모두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목사들의 일방적인 설교를 듣기 때문에 성경의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이 한국인 “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밀로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장차 구름타고오실 “재림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다시 오시는 “재림예수님”을 이천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그 예수가 언제 오시는지 어떤 나라 사람으로 오시는지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무조건 언젠 가는 오시겠지 막연하게 "재림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우상”을 믿고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예수님만 막연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이 거짓된 신앙에서 “출 애급”을 해서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 착각하고 섬기는 것과 똑 같은 형상입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의 얼굴과 모양은 다르지만 그 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은 똑 같은 것이므로 어느나라에서 태어났든 간에 구원자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자예수"가 누구인지 확실 하고도 분명히 알아야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지  이 예수를 잘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허공을 치는 다른 예수 다른복음 우상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인들은 오늘날에도 한국인 “실존예수님”은 이미 한국인들에게 오셔서 계신데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몰라 본 것 같이 오늘날 한국기독교인들도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를 몰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기독교인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오직 한분이라는 고정관념이 의식화되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님이 기독교인들 눈앞에 계신다 해도 유대인들과 똑 같이 영안이 없으면 볼 수가 없으며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을 때 만인이 보는 가운데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타고 오셨다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당연히 예수님을 다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초라한 가정집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인 "꿀과버터"를 먹으며 인간의 본능인 "악"(惡)을 버리고 "선"(善)을 택하며 장성한 자로 성장하면서 그 예수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여기서 이사야에 기록된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 7:14-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이렇게 예수님도 "꿀과 버터"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인간의 본능인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하면서 장성한 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왜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예수님을 영접을 안했는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날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른 하나님 우상”을 믿고 결국은 모두 멸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에도 이미 와계신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를 기독교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성경에서는 분명히 현제에도 "실존"으로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도 기독교인들을 구원시키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유대인의 예수가 아니라,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한국인의 “실존예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말씀을 이단들의 말로만 돌리지 말고 신중하게 좀 더 냉철하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홀히 대하게 될 것임을 뜻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필자 새사람의 글을 읽으시고 "공감"을 눌러주시는 다섯분에게는 “실존예수님”이 누구인지 벌써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조차 아무도 알지 못 하도록 감추셨습니다.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독자 분들 중에는 필자의 글을 읽고 깨달은 만큼만 시인을 하게 되는데, 반대로 필자의 글이 깨달아 지지 않았거나 실체로 증거 되지 않으면 시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