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만드시는 것이지 인간이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워서 하나님의 종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교 가말리엘 최고 학부를 나온 성경학자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후에는 자신이 신학 학문은 배설물(빌3:8)로 버렸다고 고백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마 11:27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사도바울이 바로 계시를 받은 “영안”이 열린 자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사도들도 계시를 받은 “영안”이 열린 자들입니다.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은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을 보는 눈 즉 "영안"이 열렸느냐 안 열렸느냐의 따라서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배운 목사들의 지식은 배설물과 같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목사들의 말씀으로는 "혼"의 생명인 죽은 자의 생명을 살릴 수가 없고 오히려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드는 것이 오늘날 신학교를 나온 목사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 23:15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를 "죽은자"(마8: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거듭난 자가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이지 생명이 없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강하게 욕을 하십니다.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 하겠느냐, 독사에게 물리면 그 “독”이 퍼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로 낳고 낳으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이지 "신학"을 배워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비유”하기 때문에 “씨”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의 말씀을 먹는 자는 “혼의 생명”인 죽은 자가 다시 “영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혈통(씨)으로 “영안”이 열린 자들만이 볼 수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육”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는 “영”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안팎(계5:1)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밖으로 쓴 문자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안쪽"으로 기록된 말씀은 “영안”이 열린 자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안쪽"으로 기록된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막 4: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니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비밀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고전2:9-10)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거듭나 “영안”이 열렸기 때문에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가르치는 것이지 사람이 가르치는 신학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 16:13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니라,
"신학"이란 신(神)에 관한 학문연구인데 신학교란 곳에서는 신(神)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그 신학교에 속한 교단의 교리를 벗어나지 못한 교단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며, 사실과 다른 교회사를 가르치고 배우게 됩니다. 신학교를 나온 목회자들의 후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땐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뜨거운 “금”같은 믿음으로 입학을 하고 2학년이 되면 “은”같은 믿음으로 변화되고 3학년 때에는 “동”같은 믿음으로 처지다가 4학년 땐 녹슨 “철”같은 믿음으로 변하다가 그리고 졸업을 할 때에는 무신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학교란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목회를 하는 “화술”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교단의 교리 때문에 성경 속에 있는 “진리”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단의 교리가 서로 다른 것은 창시자의 교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을 따르고 감리교는 요한 웨슬러의 신학을 가르치고 루터교단은 루터의 신학을 따릅니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종파가 있는데 성경이 아니라 각 교단의 창시자의 말을 따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교단마다 진리가 조금씩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신데 말씀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교단마다 섬기는 하나님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목회자들은 99.9% 이상의 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곳은 성경 진리에서 직접적으로 이탈된 “구원론”을 교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진리인 유일하신 참신(神)과 구원관과 직결되는 거듭남의 교리로부터 직접적으로 거부되고 있으니 성경 진리를 그들은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거짓을 진리인양 포장해서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에게 떠넘깁니다.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을 문자로 보고 예수님은 육신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입니다. 그뿐인가 예수가 성령으로 태어난 분이라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몸은 성령하나님이신데 하나님도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며 그분은 성령 하나님인데 성령 하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성령 하나님도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가 앞뒤가 맞지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이 모두가 “형이상학”의 말씀을 “비유와 비사”로 기록된 말씀을 어떻게 문자로 “형이하학”의 말씀으로 수박 겉핥기만 하고 성경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것은 “비유와 비사”로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30세에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다른 복음을 주입시키고 무엇이 “복음”인지 모르도록 혼미케하며, 사람이 죽으면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등등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등 십일조의 뜻도 모르면서 온전한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협박 등 강요하는 등등 일일이 다 열거가 불가능한 거짓 가르침들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거짓을 무더기로 배운 신학교라는 곳의 출신들이 세상에 나와 십자가 교회를 세우고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그들에게 돈을 주지 않고, 자비로 일하여 스스로 먹고 살라면 누가 목사 노릇을 하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니 “먹사”라 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